<싣는 순서>
1. 왜 다시 마을인가
2. 이야기가 있는 마을, 그리고 관광
3. 도시공동체 그곳엔 사람이 있다

# 차가운 콘크리트에 갇힌 것 같은 도시의 삶, 언제 헐릴지 모르는 지저분하고 비좁은 골목을 쫓기듯 걷는 일상.
# 세상을 확 바꿔주는 정겨운 인사 한마디 ‘안녕하세요!’, 기쁨을 나누면 2배, 슬픔을 나누면 절반 “나누면 행복해 집니다!”

대개 한 번 쯤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라는 고민을 해본다.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의 시작은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된다.

‘마을’은 사전적 의미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고, ‘공동체’는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풀이하자면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기반으로 이뤄진 가장 흔한 형식의 공동체이다.

지리적으로 특정 지역 안에 살고, 주민들 사이에 사회적·심리적 끈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마을공동체’인 것이다.

그런 마을공동체가 언제부터인가 ‘마을’만 남고 공동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윗집, 아랫집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굳이 아파트가 아니라 해도 현재 우리가 사는 마을이나 동네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집’은 잠자는 곳이 됐다. ‘이웃’도 그저 의미 없는 단어로만 남게 됐다.

물론 과거처럼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알던 정도로 밀착된 공동체는 아니어도 각자 생활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와 필요한 것들을 나누는 느슨한 공동체조차 많지 않은 현실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마을 만들기 또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주목한 이유다.

전국 최초로 마을 만들기 지원조례가 제정된 곳은 광주다. 이어 부산, 대구, 수원, 성남, 진안 등에서 마을 만들기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지자체가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마을공동체가 등장하고 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돌봄 공동체, 원전 하나 줄이기를 목표로 한 에너지 자립 공동체, 밀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닌 오래된 주거지역을 고치고 단장해서 쾌적한 삶을 영위하는 대안개발 공동체, 아파트에서 텃밭을 가꾸고 먹을거리를 나누는 아파트 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먹고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마을기업에 이르기까지.

100개의 마을이 각기 다른 100개의 모습, 100개의 이야기가 있는 공동체로 저마다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행복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서울마을박람회를 갖고 각 자치구 마을이 걸어온 길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가졌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용인의 모습은 어떤가. 1990년대 초반 10만 명이던 용인시 인구는 20여년이 지난 현재 98만 명을 넘어 100만에 육박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증가는 주택, 교통, 환경문제 등과 함께 농촌지역과 도시지역, 기존 아파트와 신규 건설된 아파트, 이질적인 주민집단 간 다양한 갈등을 불러왔다. ‘이웃’과 ‘공동체’라는 말은 사라지고 불신과 불안은 커지고 시민들의 삶의 질은 떨어졌다.

기존 주거지를 밀어버리는 개발로 마을은 해체됐다. 전통적인 도·농복합형태인 처인도 기흥·수지와 도시구조와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 서울, 부산, 수원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다. 각 지자체가 조례 제정을 통해 벌이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도시공동체와 농촌공동체, 나아가 마을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도시의 문제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도시정책인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마을에 필요한 일과 공동의 관심사를 찾아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도록 돕는 활동이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조례가 제정된 지 1년이 지났다.

‘마을’은 주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이고 휴식공간이다. 마을에서 자신들의 스토리를 통해 정체성을 갖고 나아가 이야기를 가진 마을이 어떻게 ‘관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심리적인 끈을 잇는 마을공동체

‘마을공동체’라는 말은 지리적 위치와 심리적인 끈, 그리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 또는 지리적으로 한정된 지역에 살면서 서로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끈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정의한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도심 주거지를 공유하는 ‘이웃’이다. 그 이웃들은 서로의 헌신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믿음 즉,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마을 사람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구성원들은 서로 협력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해 마을 공동체를 개발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개인과 조직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마을 만들기 사례를 보면 대개 지역의 문제를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높이는 과정을 거친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마을 만들기는 서울시 대부분 자치구의 주요 정책 중 하나다. ‘내 삶의 튼튼한 이웃, 행복공동체 노원’을 구호로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서울시 노원구도 그 중 한 곳이다.

노원구의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행복한 첫 걸음은 정겨운 인사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세상을 확 바꿔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두 번째 걸음은 ‘나눔’이다. 자원봉사를 통한 재능 나눔, 헌혈을 통한 사랑 나눔,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 나눔, 기부를 통한 희망 나눔이 그것이다.

세 번째는 ‘마을=학교’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마지막 큰 걸음은 ‘사람’이다.

2012년 9월 노원구 공릉동 30여개 공동체가 함께 채택한 ‘공릉동 꿈마을 선언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꿈마을 공동체들은 선언문에서 “이웃과 이웃이 반갑게 인사하고, 소통하며, 협동할 수 있는 마을,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마을로 공릉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아이들의 꿈을 함께 키워가는 공동체 마을 △배움과 가르침이 마을 곳곳에 넘쳐 나는 학습공동체마을 △마을 곳곳에 꿈꾸는 문화가 흐르는 문화공동체마을 △이웃을 돌보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행복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노원구의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방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벽화골목으로 명소가 된 수암골에서 이광진 수암골생활문화공동체 마실 사무국장이 마실 나온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원형을 잃어버린 피난민촌의 변화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계기로 생활문화공동체를 탄생시키며 마을이 지자체와 사업주관 단체의 힘에서 벗어나 자립적 구조를 구축한 곳도 있다. 충북 청주시 수암골이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촬영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 곳은 현재 부산 감천문화마을처럼 수암골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한 동네가 수암골이다. 경사진 도로, 좁은 골목, 소박한 집 모습에서 가난했던 과거를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촌으로 부상하면서 원형을 잃어버렸다. 수암골은 수동과 우암동에 걸려 있는 동네로 첫 글자를 따서 수암골로 불리고 있다.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불량 주거지구였던 수암골의 행정구역명은 수동. 1970년대 초반부터 건설업체와 정부 차원의 개발 시도가 있었지만 세입자가 전체 33%를 이루고 있다. 우암산과의 환경 조망권 문제로 인해 재개발이 무산됐던 이곳이 ‘문화’라는 옷을 입으면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벽화가 시작이었다. 수동 아카이브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2008년 수동 공공미술프로젝트 ‘추억의 골목길 투어’가 기폭제가 됐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짧지만 이야기가 있는 골목 여행길을 제공해 주민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당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했던 이광진 수암골생활문화공동체 마실 사무국장은 “지역의 문화주체인 지역주민과 동네라는 문화현장이 결합된, 문화예술과 일상을 통합하고 공동체 속에서 문화예술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형식의 문화적 실천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주민 스스로 마을의 문화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생활문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에서 드라마 촬영장으로 거듭난 수암골의 지속가능한 힘은 주민 공동체에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수암골 골목길에 벽화가 그려지고 주민을 대상으로 미술 매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수암골 생활문화공동체 ‘마실’이 탄생했다.

마을은 가장 작은 자치단위이다. 마을 만들기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목원대학교 장수찬 교수는 마을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마을은 주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이고 휴식 공간이다. 마을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복원해 자신들의 스토리를 갖게 함으로써 마을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해야 한다.

마을이 떠나야 할 비루한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박물관이고 최선의 놀이공간이며 휴식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민들이 마을에 대한 높은 정체성을 가질 때 마을이 새롭게 탄생한다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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