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마을, 그리고 어부사시사의 고향 보길도. 얼마나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가. 전날 무리하게 몸을 혹사하여 천근만근 힘들었지만, 그 그리움의 대상을 향해 차에 몸을 실었다.

무박여행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첫 번째 도착한 곳은 새벽 3시의 미황사. 소나무 가시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따라 대웅전과 부도 숲을 보았다. 가슴 시리도록 차갑던 이 달빛을 느껴본 지가 얼마 만이던가. 문풍지 틈새로 내비치던 산사의 불빛과 은은하던 예불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최남단 땅끝마을로 향했다.

땅끝마을! 얼마나 그리워했던 이름이던가.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며 몇 가지 소원을 빌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구름에 가려 장엄한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똑같은 상호들과 건축물을 보며 가슴속에 늘 품었던 고즈넉하게 자리잡았던 마음 속 땅끝마을을 조금은 수정해야만 했다.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당혹감을 뒤로하고 아침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1시간 여만에 도착한 곳은 보길도.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 세연정을 들렀고 거기서 연못 속에 비친 소나무와 동백꽃을 보며 고산이 즐겼을 풍류를 조금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산이 차를 마시며 노후의 휴식을 취했다는 동천석실에 올라 신선이 된 듯한 황홀감을 다시 맛보았다.

예송리 해수욕장의 까만 깻돌을 맨발로 느끼며 무박여행의 피곤함을 씻을 수 있었고 깻돌을 침대삼아 누워 바라 본 바다와 산과 하늘은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답던지.

칼칼한 매운탕과 해산물이 곁들어진 점심으로 섬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귀가 길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생동하는 봄의 전령사들. 흐드러진 매화꽃과 산수유, 소나무 사이에서 수줍게 고개 내민 진달래꽃, 파란 보리밭.

그랬다.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해설을 곁들인 이번 남도여행은 어디론가 떠돌고 싶어 안달하던 내 영혼을 한동안 잠재울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그리움의 대상이 생길 때까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안병렬(공무원·김량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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