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고쟁이 고미술갤러리

 


#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던 어머니와 옹기
용인 8경의 하나인 어비리 이동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고쟁이 입구. ‘옹기의 귀환’이란 문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무슨 뜻일까.

“무시되고 널브러진 채 있는 것이 옹기의 현실이죠. 전 괜히 그게 싫었어요. 왠지 모를 끌림에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죠. 그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옹기를‘귀환’시킨 유효철(55·사진) 대표는 본래 충청도 청양이 고향이다.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겐 선천적 장애가 있었다. 어린 시절엔 세상을 비관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상경한 유 대표는 밑바닥(?)생활을 거쳐 제조업에도 손을 대 봤다.

그러나 IMF 파고와 중국산 제품에 밀려 사업마저 제대로 풀리질 않았다. 평택으로 삶터를 옮겼다. 야생화에 눈이 갔다. 화분을 구하다가 옹기를 접하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안수 한 그릇 떠 놓고 기도하는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세상과 삶을 원망했으니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죠. 어느 날부터 옹기를 보면 어머니가 오버랩 됐어요.”헌신적인 자식사랑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늘 그 곁을 지키던 옹기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분신이란 생각이 미친 것이다.

10여 년간 어머니와 고향 생각을 떠올리며 하나둘 수집한 것이 어느덧 5천여 점이다. ‘고쟁이’에는 옹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속품 1천여 점, 근대사 물품이 1천여 점 있다.

 

# 장물로 곤욕…도둑으로 몰리기도

옹기저금통

평택에서 시작한 옹기와 민속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유효철 대표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도둑으로 몰린 적도 많지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에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빠진 적도 있고요.

저는 인상도 곱지 않은 편이라 가을철엔 혼자 시골길을 다니는 것조차 피했어요. 허허.” 뿐만이 아니다. 분묘를 지키는 비석 등 민속유물을 샀다가 장물로 확인 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가짜나 수리품을 잘못 알고 사 큰 손해를 입기도 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누볐다. 섬도 예외가 아니다. 생활용기나 민속품은 섬처럼 생활권이 외부와 차단된 지역에서 독창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전화 오는 곳이 많다. 물건을 중계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달려가던 그였지만 지금은 눈을 딱 감고 전화도 안 받으려한다.

“그 유혹을 견디기 힘들죠. 좋는 것이 있다는데 수집가가 어찌 욕심이 없겠습니까만 요즘 같은 불경기엔 능사가 아니거든요.”


#박물관 수준의 5천여 점 전시 눈길

#박물관 수준의 5천여 점 전시 눈길유효철 대표가 직접 설계한 300여 평의 공간에는 전통 옹기는 물론 민속품과 근대사 물품이 가득하다.

야외 전시는 물론 실내 전시관과 안방까지 채우고도 모자란다. 옹기란 규격대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서 그 하나하나가 다르다. 장항아리 150여 점도 그 크기와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만든 도공과 지역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5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모양의 젓갈 항아리도 당시 젓갈의 쓰임새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짐작케 하기도 한다.

일반 소품에 해당하는 연적이나 주병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취향을 읽어내는 것은 물론 독창성과 해학까지도 느끼게 해준다. 옹기로 만든 저금통도 눈에 띄고 태극기나 버선 등이 그려진 옹기도 만나볼 수 있다.

지방의 생활과 풍속을 보여 주는 다양한 민속품과 한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근대사 생활용품도 전시돼 있다. 어른들에겐 추억을, 아이들에겐 과거를 이해하고 배우는데 그만한 공간이 없을 듯하다. 거기에 더해 조용하고 깨끗한 전원에서 전통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이동호수를 바라보는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가능하다.

 

# 체험관까지 갖춰 테마코스 연결 꿈
그가 평택에서 용인으로 지난 해 이전 해 온 것은 낚시가 인연이 됐다. 낚시광이기도 한 그가 자주 찾은 곳이 이동저수지였다. 뛰어난 경치가 마음에 들었고 마침 적당한 터도 매물로 나와 고미술 갤러리가 용인에 안착할 수 있었다.

웬만한 옹기박물관에 버금갈 정도의 소장품을 갖춘 ‘고쟁이’ 고미술 갤러리. 유 대표의 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옹기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테마공간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흙으로 옹기를 직접 구어 완성해 나가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구상 하고있다. 옹기와 꽃이 어우러진 작은 산책로도 만들 계획이다. 옹기와 민속품 그리고 근대사물품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전시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평택시절 그는 좋은 제안을 받기도 했다. 시에서 예산을 들여 옹기박물관을 짓고 소장물품을 기증한 후 관리운영을 맡는 방식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성사되진 않았지만 용인이야말로 적지라는 판단엔 변함이 없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이동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인근엔 동도사가 있으니 문화콘텐츠를 이용한 패키지 코스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古쟁이’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장인이란 뜻이다. 유효철 대표는 그런 마음으로 오래도록 이곳을 지키고 싶어한다. 우리들 마음이 조금씩 보태진다면 용인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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