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 고택
옛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택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 매력적이다. 24절기 중 봄이 왔음을 알리는 ‘우수’이기도 한 설날, 주말까지 이어지는 긴 설 연휴에 가족이 함께 고택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고요하고 아늑한 풍경 속에 배어든 선조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경기도의 고택,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종부의 손길이 느껴지는 ‘서계 박세당 고택’

수백 년 세월 자리를 지켜온 웅장한 은행나무가 고택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의정부에 있는 박세당 고택 풍경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기거하며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던 곳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학서 ‘색경’을 저술하는 등 집필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규모를 갖춘 고택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돼 지금은 바깥사랑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는 앞면 5칸·옆면 2칸 반으로 누마루가 덧붙어 있는 乙자형 구조로, 사랑채 문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이 절경이다. 눈앞에 펼쳐진 도봉산이 손에 잡힐 듯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곳은 반남 박씨 서계파 후손들이 사는 종택으로, 경기도 전통종가 1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12대 종부가 집안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드넓은 집터와 고택 어느 곳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유서 깊고 운치 있는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듯하다. 박세당 고택에서는 사랑채를 독채로 빌려주는 고택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겨울에는 숙박이 불가능해 아쉬움이 남는다.

주소 : 의정부시 동일로128번길 36
문의·예약 : 031-836-8600
숙박료 : 30만원(사랑채 전체 / 취사와 식사 불가)


수려한 전망과 꽃담이 있는 ‘여경구 가옥’

마을을 가로질러 펼쳐지는 전망 때문에 사랑채에 앉아 있자면 가슴이 탁 트인다. 여경구 가옥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멀리 천마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을 자랑한다.

전망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랑채와 안채로 나뉜 남녀의 영역과 상하 구분이 명확하게 구분된 가옥 배치가 조선 후기 상류계층 사대부의 가옥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옥은 약 250여 년 전에 지은 연안 이씨 고택으로 안채·사랑채·문간채·사당채가 각기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문이 있는 서쪽 문간채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고 좌우에 외양간과 행랑방이 붙어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랑채가 있고 앞쪽으로 광채가 보인다. 광채 오른쪽 끝에 있는 중문을 통해 들어가면 안채가 자리한다. 안채는 ‘ㄱ’자로 구성되었고, 안방 옆으로 골방과 뒷방, 광을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고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사당이다. 사랑채 뒤편 언덕에 있는 사당의 측면 벽을 화려한 모습의 꽃담으로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복원하는 과정에서 본디 꽃담의 모습과 많이 달라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고택 구조와 기능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소 : 남양주시 진접읍 금강로 961번길 25-14
관람시간 : 상시 개방
관람요금 : 무료


고매한 선비의 숨결 깃든 ‘화서 이항로 생가’

양평의 조용한 산골 마을. 그곳에 이항로 생가가 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이항로 선생은 독학으로 학문의 경지를 이룬 인물이다. 1808년 과거에 합격했으나 벼슬도 마다한 채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며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해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선생의 고조부 때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으며, 200여 년 전 부친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근래 다시 복원해 깔끔하게 정돈된 생가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채 뒤편으로 안채가 자리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대문을 중심으로 좌측이 안채, 오른쪽이 사랑채다. 역 ‘ㄱ’자형 안채와 역 ‘ㄷ’자형 사랑채가 가운데 낮은 담과 중문을 두고 마주하며, 전체적으로 가로로 긴 ‘ㅁ’자 형태를 보인다. 사랑채에 방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문하에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방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리라.

생가 앞 기념관에는 선생의 영정과 친필 시 등 유물과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기념관 맞은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던 벽계 강당이 있고, 생가 뒤 언덕에는 사당과 묘소가 있다.
주소 :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39

문의 : 031-770-2473(화서기념관)
관람시간 : 3~10월 오전 9시30분~오후 6시
               11~2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
관람요금 : 무료


화가의 그림 같은 집 용인 ‘장욱진 고택’

장욱진 화백은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로 순수한 감성을 담은 한국적 추상화로 근현대 화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장욱진 가옥은 그가 198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집이다. 처음 이주한 한옥과 이후 화가가 직접 건축한 양옥 각 한 채씩으로 구성돼 있다. 한옥은 아담한 크기에 경기도 전통적인 민가 형태인 ‘ㅁ’자 모양으로 안채와 사랑채, 광으로 구성돼 있고 전체적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장욱진 선생은 이곳을 직접 수리해 작업실과 거주공간으로 삼았다. 한옥 위쪽으로 자리한 양옥은 선생의 1953년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 속 빨간 벽돌집을 모티브로 직접 구상해 지었다. 붉은 벽돌에 검은 지붕, 가운데 현관문과 양옆 창문 등 선생이 오랜 세월 꿈꿔온 집인 듯, 그림 속의 집 그대로 모습이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404호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장욱진 가옥 입구에는 딸이 고택찻집 ‘집운헌’을 운영하는데, 바람이 찬 겨울에는 이곳의 대추차 향이 더욱 짙어진다.

주소 :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119-8
문의 : 031-283-1911 www.ucchinchang.org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
               (평일·동절기 예약 후 관람 가능)
관람요금 : 2000원


분당 토박이의 전통가옥 ‘수내동 가옥’

수내동 가옥은 분당 중앙공원 안에 위치한 경기도 전통가옥이다. 이 부근은 약 70호가 모여 살던 마을이었으나 분당신도시 건설과 함께 철거되고 이 가옥만 남았다. 꽤 큰 규모의 초가로 문간채 중앙에 대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있다. 뒤로 ‘ㄱ’자형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는데 안방과 건넛방이 일렬로 위치하며 안방 앞쪽이 꺾여 부엌과 광이 위치한다. 안채 뒤편에는 널찍한 뒷마당이 흙담에 둘러싸여 있다. 가옥의 안방, 사랑방, 부엌에는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기구와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원래 수내동 부근 전답과 임야 대부분이 한산 이씨 소유였다. 고려 말 성리학의 태두인 목은 이색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마을이었으며,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조성된 가문 묘역으로 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린 사패지이다. 1989년 분당 신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이곳 전체가 수용되기 직전에 학계를 중심으로 지역민들과 문중 원로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문화재 보존지구로 지정되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됐다. 더불어 분당중앙공원은 전통문화의 보존과 신도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시민공원으로 조성됐다.

주소 :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84
문의 : 031-711-8278
         http://seongnam.grandculture.net/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30분
관람요금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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