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가 파릇파릇해지면서 야외로 가족 나들이를 나서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늘어나는 차량 행렬로 도로마다 북새통이 되곤 한다. 요즘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게 된 세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재미있는 놀이문화 쪽으로 집중되고 있는데다가,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면서 주말이 되면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 맘 때면 먹고사는 것이 당면문제가 되었던 20여 년 전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였다. 끼니를 걱정하면서 망태기를 등에 메고 들로 산으로 달래와 냉이, 산나물을 캐러 다니던 광경들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몸에 좋은 건강식의 하나라고 해서 나물에 보리밥을 비벼 먹으려고 차를 타고 일부러 음식점을 찾아다니지만,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용인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날이 갈수록 용인의 지도가 달라져서 나들이 할 때마다 놀라곤 하는데 정감어린 옛 모습을 보고 싶어도 마땅히 가볼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용인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고 바쁘게 주변 환경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용인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문제이고 하나의 추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급격하게 달라져 가고 있는 그 변화의 중심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변화를 별로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발과 함께 주변 환경이 현대식으로 변하면서 생활은 점점 편리해져 가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얻는 것만큼 잃어버리는 것도 상대적으로 많아져 가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던 사람들은 곧 다시 ‘삶의 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즉, 현대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질수록 상대적으로 문화적인 욕구와 수요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이제 우리 용인도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개발 일변도의 수직적이고 평면적인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문화적인 욕구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도시 조성에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만약, 시 정부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향토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일 것이다. 이미 수지와 구성, 기흥지역은 옛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구제발굴을 통하여 몇몇 유적들에 대한 자료들이 발굴기관에 보관되고 있는 것과, 지역을 아끼는 몇몇 향토사학자들과 언론기관 등에서 사라져 버린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연구자료로 활용하려 하거나 시민들이 보고 싶어 해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다면, 쉽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시정부에게 있는 것이다.

‘향토역사박물관’을 만들면 이런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서리 ‘백자도요지’를 보존하기 위해 ‘백자도요지박물관’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문예회관에 보관된 향토유물과 구제발굴을 담당했던 기관에서 보관 중인 유물들을 회수하여 함께 전시한다면 정말 용인의 역사를 잘 알릴 수 있는 그럴 듯한 향토역사박물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박물관 건립을 위해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향토역사 관련자료를 기증하는 범시민 캠페인을 전개한다면, 모처럼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향토역사박물관’은 마땅히 건립되어야 하며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것은 이 용인 땅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부여된 역사적인 의무이기도 하다.

장원섭/세중옛돌박물관 학예연구실장·본지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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