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라의 흥망과 천명과 인심의 향배하는 바가 반드시 징조가 나타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다 하였고 또 천지간 일사일물(一事一物)의 생사성패와 무릇 행하는 바가 전정(前定)되지 않음이 없으므로 오직 현미(玄微)한 이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야 현인달사(賢人達士)라 할 수 있다” 하였다.

일사일물이 전정된대로 나타난다는 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참응설(讖應設)이라 하는데 예를들면 ‘장다리는 한 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는 동요가 나돌더니 장희빈이 몰락하고 민비가 복위되었다거나, 유비가 서촉을 칠대 군사로 출진한 봉추 방통이 낙봉파(落鳳坡)에서 죽었다던가 고종의 아관파천때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용인의 어비울(魚悲鬱)에서 관군에게 잡혀 쇠도리깨로 타살되었는데 어비울은 물고기가 갇혀서 슬프게 되는 곳이라 풀이가 되기 때문이므로 이 또한 기연이었다.

후에 어비울 방묵동에 제방이 생겼고 수역(水域)마을이 물의 경계가 되는 여수로가 생겨난후 어비울은 어비리(魚肥里)가 되었다. 그뿐이랴 구성면 법화산(法華山) 아래에는 법무연수원과 경찰대학이 들어서서 사법기관원들을 양성하는 곳이 되었으니 이또한 기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용인의 서부지역 난개발이 문제가 되어 준농림지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만드는 동기가 된 모양인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전정된 일이다. 수지(水枝)는 주택업자들이 수지맞은 곳이 되었고 구성의 구(駒)는 본래 클구로 풀이되니 커지게 되어 있으며 기흥, 역시 그릇기(器) 흥할흥(興)이니 자연 가만둬도 커지게 되어 있다.

이처럼 참응설에 오늘의 현상들을 대입해 보면서 그것은 난개발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순개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혹 <난개발저지투쟁위원회>로부터 매맞을 소리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미니향토사 designtimesp=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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