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게 좋은거죠”
지난 10일 가락동 시장에 적지 않은 파란을 일으킨 오이박사 허수회(37)씨는 그저 덤덤하게 말한다.

가락동 경매에서 그가 재배해서 출하한 오이가 일반오이보다 박스당(15㎏) 1만원이 높은 3만5천원의 최고가격을 받았지만 단지 좋은 가격을 받았다고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좀더 좋은 오이를 재배하기 위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재투자하는 그는 아직은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은 듯 오이재배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태극마크와 KOR이 음각 재배돼 시중에서 ‘태극오이’로 잘 알려진 그의 오이는 소비자의 높은 신뢰도를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향이 좋고 육질이 단단하다는 것이 특징.

환경 친화적 유기농법으로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의 오이는 태극마크와 ‘ KOR’이 새겨진 캡을 어린 오이에 씌워 재배한다.

이처럼 캡을 씌워 재배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농약 살포를 방지할 수 있어 농약 잔류량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며 방금 수확한 오이를 씻지도 않고 먹어보라며 건넨다.

병충해가 많아 농약을 많이 칠 수밖에 없는 오이농사의 특성을 잘아는 가락동 시장 상인들은 절대 오이를 껍질까지 않고 먹지 않는다는 데 그는 자신 있게 자신이 재배한 오이는 먹어도 된다며 이렇게 건네는 것이다.

농대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농사일을 하지 않겠다며 건축업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을 갖아 보았다는 그는 이제 자신있게 자신의 직업을 농부라고 말한다.
“농사일 만큼 정직한 일이 어디있겠냐”며 최고 품질의 오이 생산을 위해 하루종일 하우스 일
을 해도 그는 힘들지만은 않다.

“캡을 씌우고 포장하는 데 노동력이 배로 들지만 그 정도 노력은 감수해야죠”
단순히 경영적인 측면만을 보면 그는 분명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두 세배의 노동력에 남들보다 배가 드는 시설투자를 해 놓고 가격 면에서 별 큰 차이를 기대할 수 없는 오이를 재배하는 까닭이 있을까.

사실 일반 채소 중 오이의 가격변동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허 씨가 유독 오이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다하는 까닭은 오이재배를 통해 환경 친화적 유기농법을 나름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다.
소비자의 기호나 시장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오이를 선택한 이유도 그 탓이다.

모든 소비자가 농약을 조금도 쓰지 않은 유기농 재배 식품만을 원하고 보기 좋은 채소만을 고르지만 실질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것이 농사짓는 사람들의 실정이라며, 현실에서 모든 농부들이 농약을 쓰지 않겠다고 나선다면 굶어죽는 사람 많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이박사라는 말이 아직은 멋쩍지만 소비자나 생산자인 농사꾼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선진 농법 연구에 자신이 조금은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는 그에게서 우리농업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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