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용인시 끝자락 백암면 옥산리 비봉산 기슭. 20여만평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야생 식물원이 추위가 채 풀리기도 전인 1월의 끝자락, 휴게시설과 전시관, 시청각실 등 방문객을 맞을 준비에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강추위가 한풀 꺾인 뒤 찾은 겨울의 한택식물원은 멀리서 언뜻 보기에 일반 야산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이곳에 한국의 수목류 1200여종과 자생화 1000종 등 2400여종의 자생식물과 3800여종의 외국종 등 6000여종의 식물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까.

동양 최대의 식물원 4월 개원

잎 모양이 노루귀를 닮았다는 ‘노루귀’, 하얀 꽃잎을 가진 ‘흰깽깽이풀’, 꽃과 잎이 같이 피어나는 ‘홀아비 꽃대’, 시원스레 뻗은 홍자색의 꽃대가 장관인 ‘털 부처꽃’
4월 봄은 1979년 한택식물원을 설립한 이택주(63) 원장의 24년 야생화 외곬사랑이 드디어 열매를 맺는 계절인 동시에 잘못 알려진 식물원의 개념이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될 것이다. 이 곳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국내 대부분의 열대 식물원과는 달리 실외 식물원이지만 단지 실외 식물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처럼 화려하고 잘 꾸며지진 않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가장 동양적인 식물원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더욱이 야생식물원으로는 국내는 물론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 2001년에는 민간 식물원으로는 처음으로 개병풍과 고란초, 고추냉이 등 야생식물 12종 등 멸종위기 야생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희귀식물 보전지구’로 지정받았다. 국가에서 이 원장의 자생식물 보존 노력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생식물의 보고 한택식물원

한택식물원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원장은 일단 20여만평 중 6만평의 동원과 서원쪽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수생식물원을 일반에 개방할 예정이다. 동원은 규모가 서원보다는 작지만 6000여종의 식물을 모두 볼 수 있다.
종 보호 차원도 있지만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연생태원을 비롯해 암석원, 숙근초원, 관목원, 유리온실, 억새원, 다목적 광장, 나리원 등 주제원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2만평 규모의 자생식물원을 비롯해 구절초 층꽃나무 등 절벽에 사는 식물 400여종이 자라는 절벽가든, 바위솔 솜다리 등 해발 2000m 이상에서 자라는 고산식물을 모아놓은 암석원, 창포 연꽃이 자라는 수생식물원이 갖춰져 있다. 여기에 옥잠화 140여종을 모은 비비추원과 모란작약원, 원추리원, 백합원, 고사리원 등 주제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식물원 내 식물을 교배하고 번식시키기 위한 공간도 마련해 놓고 있어 체험학습의 산실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래도 한택식물원의 자랑은 특화식물원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자연생태원. 여기에는 자연생태계와 같은 환경을 조성해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과 법정보호식물, 희귀멸종식물 등 2000여종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다른 곳은 가시연꽃이나 어리연꽃, 수련 등의 식물과 물방개 등의 곤충이 공생하며 살고 있는 수생식물원. 이 두 곳에서 피는 식물은 도감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식물이 한껏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연중 축제가 펼쳐지는 곳

무엇보다 이 곳은 연중 축제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아무 때나 식물원을 찾으면 축제가 펼쳐지는 한택식물원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봄에는 매화 축제와 모란 축제를 볼 수 있고 어둠이 짙게 깔린 여름이 오는 길목에는 반딧불이 축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여름도 마찬가지지요. 연분홍의 백합과 한국 특산식물인 벌 개미취는 어떻고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구절초 축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굳이 이벤트를 마련하지 않아도 계절마다 피어나는 게 모두 축제의 테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을 뚫고 발광하는 반딧불이와 형형색색의 꽃이 어우러지는 한 여름밤의 축제는 상상만으로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개원을 2개월 여 앞둔 현재 한택식물원에서는 전세계에서 수집한 희귀한 식충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식충식물원과 표본실을 포함한 연구동, 시청각 교육실의 건립이 한창이다. 4월 20만평의 식물원이 24년간 굳게 닫았던 빗장을 여는 순간 상상속 세계는 현실이 된다.
(문의 333-3558)


[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

한택식물원이 동양 최대의 식물원이 되기까지 결실의 밑바탕에는 이 원장이 24년 간 흘린 땀과 남다른 노력이 숨어있다. 지난해에는 외국을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 1년 365일 중 300여일 이상 외부와 단절된 채 식물원에서 꽃과 함께 살았을 정도.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현장을 누비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1977년 고향인 이곳에 목장을 운영하며 정착한 것이 식물원 설립의 계기가 됐다.

그는 축산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조경용 나무들을 키우다가 식물에 매료돼 79년 한택식물원을 설립했다. 이후 전국을 돌며 자생식물을 찾아 나서 한라산에서 휴전선까지, 티베트에서 중국까지 식물종 확보를 위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길고 긴 식물종 확보를 위한 순례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의 식물에 대한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그 동안 모은 재산은 식물종 구입과 채집에 모두 쏟아 부었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식물에 빠져들면 들수록 두려움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정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7∼8년간의 그런 생활 속에서 한 식물공부가 오늘의 이 원장과 한택식물원을 있게 했다.

이 원장은 “한국에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물원이 단 한 곳도 없다”며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식물원 연구원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특히 식물원이 기초학문이라 할 수 있는 생물학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식물원을 그 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듯 서원은 체계적인 생태연구와 함께 자원화 연구사업을 할 수 있도록 당분간 생태 보전지역으로 남겨둘 예정이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학자나 관계자에게는 언제든지 열어놓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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