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음력1월1일)이란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고 몸과 마음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문헌에는 조선시대에 의정대신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과 표리(거친무명 또는 흰명주)를 바치고 정전의 뜰로 나가 조하(조정에 나가 임금께 하례함)을 올렸다.

설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옷을 새장이라 하며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날 대접하는 시절음식을 세찬이라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라 한다. 종손집 장손인지라 제주수축(題主修祝)이라 하여 족보를 보아가며 지방을 쓰는데만 족히 1시간 정도 걸린다. 지방은 조상내외분씩 따로 쓰고 차례대상은 웃조상부터 차례로 쓴다. 설날과 추석은 5대조까지 지내는데 이제는 옛날의 어릴적 추억이 멀리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례를 다 마치고 나면 서울에 있는 동생내외와 조카들이 들이 닥치는데 자기집에서 두발, 복장검사를 거쳐 시골에 내려온다. 삼촌이 군기반장이니 말이다. 머리에 염색을 했으면 다시 검정머리로 되돌리고 바지가 땅에 끌려 방바닥 청소를 할 정도라면 바지를 걷어 올려 깔끔하게 처리하고서 삼촌집을 방문한다.

한번은 동생 아들놈이 삼촌에게 세배를 한답시고 내려왔는데 정말 가관이다. 힙합바지인지 뭔지를 입고 방을 쓸고 다니기에 세배를 받고 몇 번 꿀밤을 줬더니 이것이 발단이 되어 자기아들 꿀밤 줬다고 야단법석을 떨어 다음 설이고 추석이고 오지말라고 야단을 친적도 있다. 정말 보고싶지 않고 생각하기도 싫은 삼촌이지만 안보면 용돈이 아쉽고 보면 불호령이 떨어질 판이니 어떡하겠는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던가? 이것이 돈의 위력이니 말이다. 세배한번 끄떡이면 주머니에 그득찰 판인데 이판사판 공사판이다하고 얼른 절하고 보기싫은 삼촌 안보면 되니까 말이다. 이제는 조카놈들도 시집갈 나이가 찬 과년한 숙녀가 있는가 하면 대학에 들어가는 놈, 고등학생, 초등학생 등 각양각색이다. 이놈들에게 지급되는 세배돈은 천정부수라 감당하기가 끔찍하다. 제일 큰놈부터 차례차례 용돈을 주는데 아랫놈들이 아우성이다. 누구는 얼마주고 누구는 적게 줬다고…

일년에 한번이거늘 정말 그자리에서 피하고 싶다. 설날에도 차례가 끝나면 곧바로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조금늦게 도착한 놈은 사업장까지 쫓아와 용돈을 달라고 바닥에 신문지까지 깔고 세배를 해대는데는 정말 귀여운 하이에나 같다. 정말 못말리는 놈이다. 그래도 조카들이 커 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행동이 건실하기 때문이다. 설날이나 추석때면 나는 꼭 새돈을 준비해 두는데 이것이 주는 사람과 받는사람 사이에 마음을 통하게 하는 그것이 좋다. 몇날 몇일 새돈을 지갑속에 넣어가지고 다닐것이라는 생각에…

매년 되풀이 되는 설날이지만 21세기의 설날은 동장군이 전국을 동파시키고 눈의 피해까지 겹쳐 서민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만 옛날의 동심으로 잠시 돌아가 보면 그리 편안할 수 없다. 우리집은 종손집안이라 설날과 추석 기일제사(忌日祭祀)까지 합하면 1년에 12번 제사를 지낸다. 이제는 우리 안사람과 제수씨도 척척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 세상이 그렇하게 만들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날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떨어져 있는 친지나, 선배, 후배 동료들을 만나 한잔의 술로 덕담이나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설날은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 깃들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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