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의 가나안으로 가는데 40년의 세월이 걸린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는 아무리 늦춰 잡아도 열흘 남짓이면 족한 거리라고한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메마르고 거친 광야를 40년이란 긴 세월동안 헤매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성서의 내용을 토대로 해석하자면 불신에 대한 죄의 결과라고 표현할 수 있으나 같은 거리의 길에 대해 40년과 열흘 남짓의 차이는 하늘과 땅일 수밖에 없다.

일일생활권이라는 것이 정보화 시대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먼저는 도로, 즉 교통의 발달을 근본으로 둔 것이라 싶다.

우리생활에서 도로의 발달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행태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데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실크로드를 비롯해 중세 로마의 부흥으로 인하여 파생된 어원 중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길의 쓰임새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들어 시내 구간의 교통체증의 현상으로 인하여 운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도로의 기능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한 경로를 통해 주어진 시간 내에 도착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인 관내의 도로는 일상적이고 편안한 교통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다고 여겨진다.

관내 주변도로뿐 아니라 시내 간선도로 그리고 주택가 이면도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면도로 주변은 상가의 상품진열로 인하여 인도가 없어진지 오래고 심지어는 김량천 주차장 마저도 포장마차와 주변 상가의 물품을 아무렇게나 쌓아놓는 바람에 주차공간 조차 여의치 않는 실정이다.

간혹 주차 단속원과 운전자 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주차공간과 주차단속 문제간 어느 것이 선결과제인가 궁금하다.

새로운 길을 닦고 개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개설돼 있는 길에 대한 보행자의 신의를 쌓는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용인에 거주하면서 운전을 하다보니 어떤 때는 열흘 길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빙빙 돌아 40년 걸려 가는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어서 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수필가·꽁트작가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