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되어 투표할 나이가 되면 사람보는 눈도 제법 생겨서 이후보는 이렇고 저 후보는 저렇고 비교하게 되고, 이것은 바로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가치판단의 기준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준은 분명히 자기 자신이고 그 결과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의 지배를 벗어 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가 행사하는 투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우리가 일단 못된 정치인을 잘못 뽑으면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고 선출한 대표의 임기가 끝날때까지 울분을 참으며 기다려야 한다.
한때 부산 앞바다에는 절단한 손가락이 동동 떠다닌다는 섬뜩한 농담이 오간 적이 있었다. 잘못 찍은 대통령에 대한 참담한 후회인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국민들은 짧지 않은 우리의 정치사에서 잘못 선택한 지도자들 때문에 무진 고생을 했고 넓게는 대통령에서부터 좁게는 군.구의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도자는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며 삶의 질에는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도 당연히 포함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것과 같다"는 외국인의 조롱은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를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우리는 솔직히 할 말도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모욕을 반박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피아노표' '올빼미표' '환표' '사사오입개헌'이며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망언은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이제 50년만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이며 4.19라는 민주혁명을 성공시킨 국민이며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로부터 6.29선언을 이끌어 낸 나라의 국민이다. 그러니 이제 투표행위로서 우리가 선출하는 대표만은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구의원이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종 선거를 통해서 입후보자들이 내놓는 무지개빛 공약을 귀가 아프게 많이 들어왔고 그 공약이 당선된 다음에는 허망한 공약으로 변질된 것을 눈이 아프게 보아왔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깨끗한 청백리로 국가와 국민과 주민만을 위해서 일하겠다던 사람이 더러운 독직 사건과 관련이 되어 쇠고랑을 차고 표를 찍어 준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한 사실 또한 지겹도록 보아왔다.

그들은 자신이 표적 사정을 당했느니 모함을 받았느니 별의별 변명을 하지만 주민들은 그저 창피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생선을 훔친 고양인가, 고양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주인인가. 고양이는 누구며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잇다. 고양이를 나무라기 전에 주인인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 냉정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고양이의 실체를 몰랐던가. 실체를 알면서도 학연 지역 혈연 등 각종 인연 때문에 애써 그 자질을 외면 하고 표를 찍은 것은 아니었던가. 언론은 고양이의 실체를 알몸으로 벗겨놓고 철저하게 검증했던가.

현명치 못한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의 발등을 도끼로 찍는 비극으로 나타나고 그 책임을 누구한테 물을 수 조차 없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그같은 바보짓을 한 번도 아니고 몇번씩 반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유권자를 누가 무서워 하겠는가.
생각해 보자. 주위에 온갖 비리로 쇠고랑을 찾던 자들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공직에 취임하고 의정단상을 더립히는 꼴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다른 것은 모라도 비리에 관련되어 처벌을 받은 자가 비록 사면과 복권이란 절차를 거쳤다 해도 다시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유권자의 잘못이다. 유권자의 그런 잘못 때문에 정치꾼들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겁을 안낸다.
이제 선거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자.
잘못된 선거는 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불행으로 빠뜨리고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앗아가 버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명예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