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수지구 죽전동)
용인시 최북단 죽전동에는 대지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이 평야지대도 아닌데 왜 큰 땅이라는 이름의 대지(大地)가 되었을까?  본지 제492호(6월3일자) OPINION난에 '대지산이 문패를 달다'라는 제목의 독자 투고를 실은 이후 대지가 왜 못 지(池)자가 아니고 땅 지(地)자냐는 문의를 더러 받았기에 내 생각을 정리하여 밝혀보고자 한다.

혹자는 옛날 이곳에 큰 연못이 있다가 매몰되어 못 지(池)자를 써서 대지(大池)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기라고 본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많은 문중의 족보에는 조상의 묘의 위치가 대부분 大地山 선영이라고 땅지(地)자로 기록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도 그렇다.

옛날에는 서울에서 임금님이나 관리들이 지방 나들이를 할 때 주로 사용하던 큰 길 중의 하나가 서울 양재와 판교를 거쳐 신갈로 이어지는 지금의 23번 국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님이 경복궁에서 아침을 먹고 행차를 하면 남산을 지나 서빙고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오면 점심때가 되어 말에게도 말죽을 먹였다하여 그 곳의 이름을 '말죽거리'(지금의 양재동)라 부르게 되었으며, 점심 후에 다시 발길을 재촉해 달래내 고개(지금 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 판교에 이르니 소나기가 쏟아져 운중천이 범람하여 길이 막히자 마을 주민이 널빤지를 가져다 임시가교를 설치하여 임금님을 무난히 건너게 하였다하여 그곳을 '널다리' 즉 판교(坂橋)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모처럼만에 그래도 다소 넓은 들이 나타나자 "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 백성이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조달하는 군량뜰(지금의 수지 레스피아 일원)이라"고 말하니 임금님이 대지고개 쪽을 바라보며 그래도 "이곳은 꽤 큰 땅 이구먼!"하였다고 하여 그 때부터 이곳을 큰 땅 즉 대지(大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금님의 행렬은 계속되어 양고개(현 운전면허 시험장)를 너머 신갈 역말(지금 기흥구 신역동)로 이어진다. 역말이란 공무로 지방에 출장을 갈 때 하루 쉬어 가며 말에게도 저녁을 먹이고 재우던 곳이라고 한다. 특히 암행어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패에 그려져 있는 말의 수에 따라 이곳에서  말을 갈아타거나 재우고 먹일 수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서울에서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약 1백여 리 길목에는 역말이라는 지명을 지닌 곳이 더러 남아 있다. 그 예가 경기도 광주시 역동에도 남아있다. 

이렇게 해서 임금님의 하루 행차는 역말에서 마무리되며, 임금님의 발 길 따라 수많은 지명이 지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명이란 고유 명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유로 바뀌기도 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인구가 늘고 행정이 복잡해지면서 수많은 지명이 새로 생기기도하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지와 같이 그 이름을 오래 보존하고 있는 지명은 잘못 와전되는 일이 없이 본래의 의미를 지녔으면 한다. 또한 대지란 원래 커서 대지라고 하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임금님이 체구가 커서 대군(大君)이 아니며,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국토가 커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아니듯이 작지만 크고 강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큰 대(大)자를 붙인다고 본다. 그래서 그 신하나 국민은 왕과 국가를 큰 어른, 큰 나라로 알고 아끼고 사랑하듯, 이제 대지(大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대지인 모두는 큰 땅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