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민족혼 발자취를 찾아서
제2기 용인시 소년· 소녀고구려 역사탐방기1

▲ 백두산 천지에서 정기를 마시며.
▲ 장군총 앞에서 가져간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려했으나 중국 공안들의 저지로 바닥에 떨구어야만 했다.

러시아서 훈춘 거쳐 집안으로 곳곳에 우리 민족의 강건한 기상

지난 해에 이어 지난 21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제2기 용인시 소년· 소녀 고구려 역사탐방」의 탐방기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북한 땅을 밟지 않고 러시아, 중국의 2개국을 거치며 장도의 길에 올라 옛 고구려의 역사가 산재해 있는 만주벌판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넓은 대륙의 평원에 펼쳐져 있는 고구려의 혼은 멀리 길게 내다봐야만 했다. 2천년전 압록강 이북 대륙에 찬란히 꽃피웠던 고구려, 발해 문화를 갈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과 한국전쟁 후 반도사관에 젖어 잊고 지냈던 우리는 웅대하게 펼쳐져 있는 옛 고구려 유적지에 감탄하며 고구려를 봤다. 경이로움과 감격 뒤에는 중국의 역사왜곡과 관리소홀로 무너져가는 고구려의 혼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고구려 역사유적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봤다.

고구려 옛 땅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길은 멀고 험했다. 속초항에서 동해의 푸른 바다를 건너 밤새 배를 타고 다음날 정오가 되어 러시아 남단 자루비노항에 닿은 후 낡은 버스를 타고 중국으로 입국해 훈춘을 지나 밤새 기차를 타고 달려서야 옛 고구려의 수도 집안에 당도했다. 

통화에서 집안으로 가는 길은 코스모스가 길 양쪽에 펼쳐져 있어 마치 우리나라 시골길을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만강을 따라 달리는 내내 강 건너 북한 땅이 눈에 들어와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것에 낯설기까지 했다.

드디어 집안의 국내성 동쪽 4킬로미터에 광개토태왕의 비가 있는 중국식 비각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태왕의 시호가 비에 적혀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광활한 영토를 개척했고 백성을 편안케 보살핀 국강상에 묻히신 하늘같은 왕이라는 뜻)

태왕은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에 맞는 자주적 호칭이라고 한다. 이러한 웅대한 태왕의 비는 플라스틱 중국식 좁은 비각에 갇혀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한 채 부식되고 깍인 채 규모의 위용만이 높이 서 있다. 
조선족 사업가의 말에 의하면 중국은 지난 해 집안시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을 신청하면서 집안시를 철저히 통제해 외국기자를 오지 못하게 하고 급속히 빌딩을 짓는 등 낡은 마을을 새로운 도시로 변모했다고 한다. 거기에 비와 태왕릉 사이 초원위에 있던 400여호의 가옥을 철거하고 정비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문화재 자체의 관리는 소홀히 하여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굴된 무덤떼의 열린 내부는 습기와 곰팡이로 부식되고 있었다. 태왕릉의 없어진 돌층 사이로 풀들이 자라나고 층계가 뒤틀려 무너져 내릴 듯했다. 동아시아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의 거대한 모습도 검은 이끼가 점점 늘어가고 내부의 시신을 모셔둔 석대는 유리 아래 깔려 습기가 가득했다. 

1층 돌하나의 길이가 5.5m나 되는 엄청난 돌 1100개를 쌓아올린 장수왕릉은 1500년 세월을 끄떡없이 버티는 수준높은 공법으로 축조되어 지금도 그위를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으나 장군총 석대 아래는 중국 화폐가 잔뜩 널려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5회분 고분의 사신도 벽화는 고구려의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알 수 있는 매우 가치있는 유물인데 지금은 습기와 훼손이 심해 일반 관람이 안되고 CC TV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고구려연구회의 서길수 교수는 “그의 저서 <고구려 유적 답사>에서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고분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마치 현대의 매스컴과 같다고 볼 수 있다”며 “현대 미술의 족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복 받은 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외국학자는 벽화를 보유한 민족은 핵무기를 보유한 민족보다 훨씬 위대하고 강하다고 말했다.
 고분벽화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까지만 해도 오회분5호묘가 일반에 공개 됐는데 이 과정에서 벽화가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무덤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이로 이슬맺힘 현상이 생겨 습기로 인해 벽화가 망가지고 있는데다 조명을 밝혀놓고 360도 회전하는 CC TV는 벽화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친다는 것이다.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공개를 막고 훼손을 자행하고 있는 중국 당국의 행태가 한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아름다운 벽화의 색채와 문양이 바래고 변색되어 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풀만 무성한 환도산성과 아파트 단지에 파묻혀 담벼락 같이 구분이 안되는 국내성의 남아있는 성벽은 일부러 애써 찾아야만 알 수 있었다.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오녀산성(졸본성)은 그냥 걷기에도 숨이차고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올라야만 했다. 비가 와서 산 정상의 성까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천연의 요새인 옹성으로 고구려 축성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채석장에서는 돌을 다루는 고구려인들의 수준높은 기술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과 환인 등지에 펼쳐져 있는 고구려 유적의 흔적은 고구려문화의 우수성과 고구려 민족의 웅장한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감탄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고구려의 옛발자취를 찾아가는 궤적은 우리역사의 뿌리를 찾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기본이 될 것이다. 중국의 은밀한 역사왜곡의 실체를 파악하고 중국뿐 아니라 북한땅과 우리 남한땅에 남아있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우리모두의 몫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 탐방대원들이 광개토태왕비를 살펴보고 있다.
▲ 일송정에서 다같이 선구자를 부르며 감회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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