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다른 이름 ‘이웃사촌’ 정영화·배춘옥 부부

이웃이 먼 친척보다 가깝다고 했나?

그래서 일까? 혼자 사는 송모 할머니와 이웃해 사는 정영화(72)·배춘옥(70) 부부를 보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물론 아파트에 사는 비율이 높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게 요즘 세상이긴 하지만. 굳이 농촌이 아니어도 자연마을에는 시골 인심이 있었고, ‘이웃’이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송 할머니를 인터뷰 하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이틀 뒤 다시 찾은 지난 18일. 몇 차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득 이웃집에 자주 놀러간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때 창문 밖으로 한 노인이 “아랫집 할머니를 찾아왔느냐”고 묻더니 이내 송 할머니를 부르니 송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틀 전 창문 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던 할아버지가 송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던 모양이다.

이튿날 정영화·배춘옥 부부를 다시 찾았다. 37년째 삼가동에 살고 있는 정씨 할아버지 부부는 듣던 대로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었다.

“아파트에 살면 옆집 사람도 모른다고 하지만 시골 어느 곳을 가도 시골인심은 남아 있지.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고, 서로 기댈 곳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지.”

당연한 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별걸 다 궁금해 한다는 듯 한 표정의 배춘옥 할머니의 말이다. 송 할머니를 거의 매일 볼 정도로 가깝게 지내면서도 병석에 누워있던 송 할머니 아들이 죽은 것조차 몰랐던 적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이사와 궁금해 집에 가봤는데 어찌나 안쓰럽던지. 몇 년 전 아들이 죽은 걸 전혀 몰랐어.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이웃에 얘기조차 하지 않았던 거야. 자기 일로 이웃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느냐고 하면서 울더라고.”

송 할머니나 이웃집 할머니로 통하는 배 할머니 모두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던 것이다. 자식농사를 잘 지어 5남1녀를 둔 정 할아버지 부부도 자식들과 따로 떨어져 살다보니 송 할머니나 원룸에서 혼자 사는 또다른 할머니가 찾아오면 적적하지 않아서 좋단다.

밖을 자주 나가지도 않으면서도 수년 째 만나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러다 출출하면 마당에 피워놓은 연탄불에 고구마를 구어 먹거나 과일을 나눠 먹곤 한다. 송 할머니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돼 집으로 찾아갈 정도로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정 할아버지 부부.

그렇다고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되도록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으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이웃과 서로 나누고 사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기름 값이 아까워 날이 춥거나 잠을 잘 때, 오전에만 잠깐 보일러를 돌리고, 외풍을 막기 위해 마당에 설치한 비닐로 천막에 피워놓은 연탄난로 옆 마루에서 지내곤 한다. 그러면서도 송 할머니에 대한 걱정은 빼놓지 않았다.

“자식 그늘이 700리 간다는 말처럼 누워 지내도 자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 어느 날 그러더군. 나보다 먼저 가면 안 된다고.”

손수 농사를 지어 겨우내 연탄불에 구워 이웃과 나눠먹는 고구마를 깊게 패인 주름 진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주름진 손으로 신문에 싸주던 정 할아버지와 배 할머니 부부의 모습은 가족의 또 다른 이름 ‘이웃’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싶다고 거듭 부탁했지만 끝끝내 사양해 빈 손으로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김장 담가 줄테니 여름에 또 와.” 배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에 눈시울 붉은 송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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