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 한수남 시민기자(번역가)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지 그나마도 한적한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다가 가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서울에 나가보면 어제가 옛날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볼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연탄 냄새가 정겹게 풍기는 내 둥지로 화급하게 돌아온다.

내나라 사정도 이런데 몇 년 만에 가보는 외국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지지난 주간(11/11~11/15) 4박5일 일정으로 중요한 취재차 일본으로 출장 가는 본지 기자의 통역으로 동행한 일이 있었다.

간사이(關西)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리무진을 타는데 벌써 눈이 돌기 시작한다. 그 동안에 너무 변한 주위 풍경에 이곳이 과연 내가 살았던 곳이었나? 싶을 정도로…

호텔에 짐만 풀고는 곧 목표하는 취재현장으로 뛰었다. 나는 오직 취재관계자의 충실한 입과 귀가 되면 되니까.

아직은 다리가 말을 들으니 쫓아다니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역시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조금은 힘겨웠다. 4일 동안에 시가현청(滋賀縣廳) 관계자 인터뷰-. 비와코(琵琶湖)의 나가하마(長병)현장 견학 (낙후된 거리를 전통재래시장으로 복구하여 구로가베(黑壁)라는 이름으로(유리공예) 세계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성공한 고장). 고배시청(神戶市廳)담당자 인터뷰-. 도오쿄(東京)미나토구청(港區廳) 담당자 인터뷰-. 록폰기 힐즈(六本木)모리(森)타워- 관리책임자 인터뷰- 등. 물론 사전에 전화연락은 되어있었지만 우리를 대하는 공무원들의 성실하고 친절한 그 태도와 최선을 다한 자료준비에 새삼 감사했다.

고배(神戶)시청의 하세가와(長谷川)계장은 그날 교육이 있었는데도 취재를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주기도 했다.

JR로, 사철(私鐵)로, 신칸센(新幹線)으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도시고 시골이고 물관리가 잘되어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인류의 문명은 강을 따라서 발달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참으로 실감할 수가 있었다. 남쪽에 있는 시코쿠(四國)같은 곳은 옛날에도 서민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에도 집 앞에 50cm가량의 시천 같은 물(하수도?)이 흐르고 있는데 주부들이 아침마다 그 바닥을 솔로 닦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본 기억이 난다.

밥 먹는 시간도 아끼면서 일을 마치고 14일 저녁 마지막 숙소인 니시신쥬쿠(西新宿)로 가는데 가는 길이 좀 복잡했다. 그럴 때는 입이 안내자라 환승 전철역에서 내 나이 비슷한 후덕하게 생긴 부인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나를 일본인인줄 알았는지 “저 쪽 2번 선으로 가시면 됩니다” 한다.
“미안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인데 자세히 좀 알려주셨으면…” 그러자 그 부인은 깜짝 놀라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우리가 갈아탈 홈에 와서도 그 부인은 가지 않고 있다가 열차가 들어오자 같이 타면서 다음 역에서 내리자고 한다. 내가 의아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 부인은 사이타마(崎玉)라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완전히 정 반대 방향이 아닌가.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주소와 이름을 묻자 굳이 사양을 하다가 나의 간청에 못 이겨서 휴대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준다. 시간이 없어서 친정식구들과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이 부인의 따뜻한 친절에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

일본사람은 개개인을 대하면 더 없이 좋은 사람들인데 뭉쳐서 민족이 되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 같다. 누가 그랬다. 한국인은 모래와 같고 일본인은 점토와 같다고…

그러나 우리는 지구촌의 누구에게서든지 본 받을만한 것은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이 부인의 작은 친절이 그 나라의 관광자원이 되고 국가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 아닐까?

/한수남 시민기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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