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20구간 생태

이른 아침엔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하지만 해님이 조금만 떠오르면 대지에 온기가 넘친다.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늘진 계곡엔 아직 눈이 남아있지만 산은 이미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봄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해바라기 중이다. 산 중턱까지 오르면 두꺼운 겨울 등산복을 벗어버려야만 한다. 바야흐로 봄이 시작되는 중이다.

야생화(풀꽃)

야생화(풀꽃)는 겨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녀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녀석을 같이 볼 수 있다. 가장 멋지게 겨울의 흔적을 간직한 녀석은 단연 삽주다. 지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라있는 삽주는 세월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이번 구간에서는 삽주를 많이 만났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아름답게 말라있는 삽주를 볼 수 있었다.

연한 갈색의 날렵한 잎은 잔 톱니가 가장자리에 있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잎들을 생기 있게 만들어 준다. 순백의 꽃이 지고 난 흔적은 고스란히 말라 어느 드라이플라워 전문가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개체들이 다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 처한 환경과 여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송장풀

큰까치수영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연한 갈색의 삽주가 부드러움이라면 구릿빛 큰까치수영은 강인함이다. 조그만 꽃들이 모여 끝이 날렵하게 휜 카이젤 수염 같은 모습의 꽃차례를 가진 녀석은 이 계절에 보여주는 탄탄한 구릿빛 꽃받침이 순백의 꽃으로 장식했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

요상한 모양의 씨앗주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녀석도 만났다. 무시무시한 도깨비 뿔 같이 생긴 가시를 삐죽삐죽 내밀고 그 안에 검은색 석탄 같은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송장풀이란 녀석이다. 꽃에서 송장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아름다운 분홍빛 꽃 보다는 차라리 이 계절에 만나는 무시무시한 씨앗주머니가 더 송장처럼 보이는 녀석이다.

뱀처럼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씨앗주머니가 여럿 보인다. 형태로 봐선 나리 종류 인 것 같다. 밑을 보니 긴 잎이 굵은 머리카락처럼 말라있는 게 보인다. 원추리다. 봄나물의 최고 중 하나인 원추리다. 부들부들한 녀석을 넣고 고추장에 밥을 썩썩 비벼 먹으면,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지난 흔적으로 키 자랑을 하는 녀석들도 있다. 주로 마을 입구에서 본 녀석들이다. 익모초가 한껏 자신의 키를 자랑하지만 단풍잎돼지풀에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단풍잎돼지풀도 돼지감자라고 불리는 뚱딴지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단풍잎돼지풀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해식물 6종 중 한 녀석인데 전원주택이 즐비한 산 입구에 녀석이 버젓이 고개를 세우고 있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된다. 워낙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녀석이라 쉽게 제거하기도 힘들고 건들면 건들수록 점점 퍼져나가는 무서운 녀석이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산을 파헤친 결과가 조만간 큰 두려움으로 나타날 것 같은 조짐이 보여 안타깝다.



▲ 나무발발이
이번 구간에선 제법 새들을 많이 봤다. 처음 산을 오를 땐 새들이 보이지 않아서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산의 8부 능선을 오를 때부터 새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가장 우리의 관심을 많이 끈 녀석은 나무발발이다. 곧 먼 길을 떠나야할 겨울 철새인 녀석은 먹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배를 보니 통통한 게 말아가리산(마구산으로도 불리는 용인에서 제일 높은 산)만하다. 나무를 빙빙 돌며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다. 주로 산 밑에서 많이 봤던 오목눈이(눈이 털 때문에 오목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가 산 정상부까지 올라왔다.

여러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부지런히 먹이 활동 중이다. 새색시의 연지곤지 같은 예쁜 색을 가진 곤줄박이가 멋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특이한 색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녀석이다. 녀석은 무척 호기심이 많은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호기심 많은 까만 눈을 빛내며 쳐다보기 일쑤다.

깃털 하나가 떨어져 있다. 안쪽에 있는 연한 하늘색으로 봐서 어치의 깃털 같아 보였다. 이런 추측을 하며 깃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캬악’하는 비명을 질러대며 어치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숲의 포도대장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어치는 낯선 사람의 출현을 숲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임무를 맡고 있다.

딱따구리도 여럿 보인다. 가장 작은 쇠딱다구리가 특유의 무늬를 자랑하며 우리를 반긴다. ‘딱딱딱딱’ 목탁 치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신갈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조금 다가가자 휘~ 하고 날아가 버린다. 앞가슴에 줄무늬가 있는 것을 보니 큰오색딱따구리다. 오색딱따구리는 앞가슴이 하얀색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멀리 날아 간 큰오색딱따구리를 아쉬워하고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새 한 마리가 휘~ 하고 날아오른다. 연둣빛 깃과 회색 몸이 보인다. 청딱따구리다. 머리 위가 빨간 것을 보니 수컷이다. 녀석은 저 만치 신갈나무 위로 날아가더니 나무 위를 빙빙 돌며 약을 올린다. 아쉽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좋을 텐데.

나무, 곤충…

유난히 커다란 전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일부러 가꾼듯한 전나무는 산 입구에서부터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양버즘나무가 우리를 압도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사열 받는 군인들처럼 도열해 있다.

산 중턱은 산림변경을 하는지 커다란 나무들을 다 베 버리고 조그만 물오리나무들을 잔뜩 심어 놓았다.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을 조금 오르자 리기다소나무들 사이에 커다란 노간주나무가 보인다. 용인에서 저렇게 크고 곧게 자란 노간주나무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당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멋진 녀석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썩 좋질 않아 장래가 불투명해 보여 안타깝다.

붉은 겨울눈과 일년생 가지로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층층나무가 많이 보인다. 커다란 어미나무들은 주로 계곡 경사면에 많이 보이고 어린 녀석들은 산길 주변에 고만고만 키재기를 하며 자라고 있다. 산의 8부 능선 쯤 오르자 커다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 단풍나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산을 조금 더 오르자 고사한 소나무들과 쓰러진 침엽수들의 잔재가 많이 보이는 것이다. 예전에 큰 산불이 났었는지 밑동이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들도 여럿 보인다. 크게 자란 굴참나무를 제외하곤 산초나무나 쪽동백나무, 개암나무, 자귀나무 등 나무들의 키가 대체로 작은 것을 봐서 숲이 새로 만들어 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산을 넘어가면서 보니 반대편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곤충의 흔적들도 보인다. 참나무순혹벌의 둥근 벌레혹이 지나치게 많이 보인다. 많은 나무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연두색의 유리산누에나방의 고치도 보인다. 선명한 것도 보이고 빛바랜 한지 같은 것도 보인다. 특이한 모양의 고치도 봤는데 가중나무고치나방이 만들어 놓은 고치 같았다.

나무 가지에 매달린 채 그네를 타고 있는 머리왕거미의 알집이 보인다. 머리왕거미는 아주 작은 거미지만 다른 거미들이 쳐 놓은 거미줄에 몰래 침투해 텃거미를 잡아먹는 무서운 녀석이다.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 늑대거미 종류 한 마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3000여종이나 되는 녀석이기 때문에 정확한 이름을 알기 어려운 녀석이다. 이 계절에 살아 움직이는 거미를 만난다는 게 너무 좋아 녀석을 한창이나 쫓아다녔다. 이제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곤충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가 많이 기다려진다.

/글·사진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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