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13구간 식생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물색도 변하고 바람 끝도 변한다. 낙엽 사이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는 풀들도 숨죽인 채 깊어가는 가을을 온 몸으로 견디고 있다. 나무들은 겨울 준비를 하느라 저마다 본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새들도 먹이 활동에 여념이 없다. 하늘빛도 가을이고 사람들의 말 빛도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무눈을 사로잡는 나무들, 가을빛 유혹이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녀석은 생강나무다. 새 봄에 온통 노란빛으로 산을 물들이던 녀석이다. 잔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나기도 하는 이 녀석은 또 다른 ‘노랑’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여기저기서 노란 빛으로 산을 불태우고 있다. 앞선 녀석들은 이미 갈색으로 말라간다. 콩알만 한 열매들도 노란 가을빛으로 익어 간다. 바닥에는 어린 생강나무가 보인다. 새잎을 낸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이 어미 생강나무 밑에서 노란빛으로 새잎을 물들이고 있다.

▲ 개옻나무잎

안쓰럽다. 겨울을 나기 힘들 것 같다. 야들야들한 잎들은 겨울 준비를 하는 곤충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자세히 보니 어린 생강나무 잎에 날카로운 가위로 오린듯 한 동그란 흔적이 남아 있다. 기가 막힌 솜씨다. 누가 저 어린잎을 오려갔을까? 가위벌들이 한 짓이다. 가위벌들은 나뭇잎을 오려서 애벌레들이 살 집에 깔아놓아 부화한 애벌레들의 양식으로 삼는다. 조그만 잎에 가위벌의 흔적까지, 이 가을은 어린 생강나무에겐 너무 혹독한 계절이다.

▲ 참죽나무

마을 입구에 커다란 참죽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어비저수지를 배경으로 노랗게 물들고 있는 참죽나무는 위용이 당당하다. 가까이 다가가 녀석과 눈 맞춤을 한다. 겨울 준비를 하느라 노랗게 뜬 얼굴로 반겨 준다. 넉넉한 품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커다란 일본잎갈나무도 보인다. 침엽수이면서 가을에 잎을 갈기 때문에 잎갈이란 이름이 붙은 녀석이다.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밑동에 푸른 새잎이 매달려 있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붉은 갈색으로 타오를 것이다. 일본잎갈나무 밑동에서부터 칡이 올라가고 있다. 하늘로, 하늘로, 담쟁이 덩굴과 경쟁하듯 파란 가을 하늘로 치솟고 있다.

도깨비처럼 뿔까지 달린 아까시나무, 커다란 하트처럼 생긴 가죽나무, 저마다 표정이 다르다, 하지만 칡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산에 가면 꼭 칡 줄기를 살펴보시길, 쏠쏠한 재미가 있다.

굴참나무가 참 많다. 특유의 울퉁불퉁한 코르크 나무껍질도 멋지고, 노란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잎도 멋지다. 그러나 진짜 재미는 녀석의 열매인 도토리를 찾는 일이다. 굴참나무를 보면 밑을 잘 살펴보시길, 털모자를 쓴 굴참나무 열매를 발견할 것이다. 알맹이를 빼고 깍정이부분만 손가락에 끼우면 멋진 모자가 된다. 펜이 있다면 손가락에 재미있는 표정을 그려 넣어 보라. 멋진 작품이 된다.

▲ 노간주나무겨울눈

노간주나무도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이 녀석을 보면 바늘 같은 잎을 헤치고 열매를 찾아보시길, 동그란 열매가 보일 것이다. 초록으로 달려 있다가 점차 검게 변한다. 겨울눈 찾는 재미도 있다. 너무 작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쉽게 겨울눈을 보여주지 않는다. 너무나 앙증맞은 겨울눈에 깜짝 놀랄 것이다.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팥배나무가 눈부시다. 그 동안 보아왔던 팥배나무와 다른 모습이다. 팥배나무에는 가지가 떨어진 곳을 스스로 치료한 흔적이 무시무시한 눈처럼 보이는데, 째려보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에 보는 녀석의 인상은 완전히 다르다. 산행 중 커다란 팥배나무를 만나면 밑에서 녀석을 쳐다보시길, 그것도 역광으로. 눈부신 황금빛 나뭇잎을 배경으로 로맨티스트의 우수에 젓은 눈을 발견할 것이다.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녀석들. 이 가을, 녀석들이 있어 참 좋다.

▲ 자주쓴풀

야생화이번 구간에서 가장 우리를 흥분시킨 것은 ‘자주쓴풀’이라는 녀석이다. 이 계절에도 활짝 핀 녀석을 만날 수 있다니. 사기막골 뒷산에 있는 작은 무덤가에서였는데, 무덤가가 온통 이 녀석들 천지여서 발을 떼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동안 녀석과 인연이 없었는지 용인에서는 처음 보는 녀석이다.

이렇게 새로운 녀석과의 눈 맞춤. 시계탐사의 또 다른 묘미다. 일행은 녀석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꽃잎을 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도감을 뒤적이며 학구열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온 힘을 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좋은 각도를 잡기 위해 벌렁 누어 버린 사람도 있다.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입에서 나온 말, “어디가 쓰데?” 그렇지 이름이 ‘쓴풀’이니까 어딘가가 쓸 거야. 줄기, 잎, 꽃잎, 저마다 맛을 본다. “도감에 보니 뿌리가 쓰다고 하네.” 그래? 그렇다면. 시든 녀석을 한 송이 찍어(?) 뿌리를 캐어 본다. 저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맛을 본다. 윽~ 입에 넣자마자 퉤퉤퉤, 정말 쓰다. 이렇게 쓸 수가. 황급히 껌을 찾아 씹는다. 좀 낫다. 하지만 쓴 맛은 계속 혀를 괴롭힌다. 달리 쓴풀이 아니었구나. 혀를 통해 녀석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무덤가에는 자주쓴풀 말고도 순백의 꽃잎을 십자 모양으로 달고 있는 큰벼록아재비도 지천이다. 이름에 ‘큰’ 자가 들어가서 녀석이 큰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녀석을 보면(아니 몸을 낮추고 엎드려야 겨우 녀석을 볼 수 있다) 그냥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엎드리면, 낮추면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녀석 앞에선 낮추고 엎드릴 것이다.

길가에 집단으로 자라는 모시물통이라는 녀석은 아직 계절을 모르는가 보다. 싱싱한 초록의 잎이 그대로다. 줄기 사이에는 연둣빛 꽃이 바글바글 소리를 낸다. 노란 산국은 제 할 일을 다 한 듯, 점차 시들어 간다. 솜나물의 가을형 열매는 솜사탕처럼 가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기세다.

산 입구에 공사장이 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싱싱함을 자랑하는 들풀이 있다. 미국자리공, 토양을 산성화시킨다고 미움을 받고 있는 귀화식물이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는 녀석은 척박한 환경에 잘 적응해 사는 녀석이다. 모든 사물은 부정적인 면이 있으면 긍정적인 면도 있는 법이다. 미국자리공이 토양을 점점 산성화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토종 들풀들이 살기 힘든 척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다른 식물들이 들어 올 자리를 미리 마련해 주는 순기능도 있다.

근처에 보니 이상한 모양의 버섯이 군락으로 피어있는 것이 보인다. 밝은 주황빛을 한, 접시 모양의 버섯이다. 들주발버섯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말뚝버섯도 봤다. 민자주방망이버섯도 보인다. 영지버섯도 있다.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에는 치마버섯과 구름버섯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숲의 분해자인 버섯들, 녀석들이 있어 숲은 더 깨끗해질 것이다.

▲ 들주발버섯

새, 곤충배고픈 쇠딱따구리가 여러 마리 몰려 와 정신없이 나무를 쪼아 댄다. 우리가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까치들은 조폭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사수한다. 멧비둘기도 보인다. 녀석들은 새끼 키우는 게 좀 남다르다. 녀석들은 새끼가 스스로 딱딱한 먹이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젖으로 키운다. 이것을 ‘피죤 밀크’라고 부른다. 포유류처럼 진짜 젖은 아니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어미 비둘기의 모성애가 느껴진다.

쇠박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들도 보인다. 이 녀석들처럼 텃새로 살아가면서 겨울을 나야 하는 우리 주변의 작은 새들은 겨울에는 위장에 변화가 생긴다. 애벌레나 부드러운 열매를 먹을 수 없는 겨울이 되면 딱딱한 열매나 씨앗도 소화시킬 수 있도록 위장이 더 튼튼해진다. 놀라운 적응력이다.

▲ 날개띠좀잠자리

곤충들도 몇 마리 보인다. 신성봉 정상에 키 작은 개암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잎을 다 떨구고 겨울눈만 보이는 녀석이다. 추위에 대비해 겨울눈과 잔가지를 털로 덮고 있다. 그 겨울눈 위에 날개띠좀잠자리 한 마리가 애처롭게 앉아있다. 날씨가 더 추어지면 녀석은 생의 끈을 놓을 것이다. 자연의 순리지만 애처롭다. 녀석 옆에 조그만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간다. 실잠자리다. 소나무 잎에 앉아 있는 녀석을 자세히 본다. 온통 갈색인 게 나뭇가지를 닮았다. 묵은실잠자리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녀석은 성충인 상태로 겨울을 나는 녀석이다. 묵은실잠자리란 이름도 그래서 붙은 것이다. 가냘프게 보이지만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다. 가을이 깊어 가면 갈수록 곤충들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 녀석들이 참 많이 보고 싶어질 것이다.

/글·사진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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