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으로만 여겨졌던 평양방문 길은 여느 여행과는 달리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평양의 거리와 사람들에 대해서 남측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소개가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가 남긴 결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따른 갈등의 여파는 평양거리에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곳곳마다 북측 안내원들의 남측 방문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통제가 이를 반증한다.
남측 주최 측에서도 지나칠 만큼 북측에 대한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비유컨대 남· 북측 모두가 달(통일)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데올로기)에 머무르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필자를 비롯한 100여명에 이르는 방문자들은 3대의 버스로 나눠타고 평양 곳곳을 이동할 때, 각 버스마다 맨 앞좌석과 뒷좌석에 북측 안내원들이 각각 동승했다. 이들의 임무는 남측 방문자들의 통제를 위함이었다. 마침 필자는 뒷자리에 북측 안내원과 함께 자리할 수 있었다. 첫 동행은 다소 서먹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간 통성명과 나이를 주고받으면서 분위기는 곧바로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어릴적 반공교육을 통해 머리에 뿔달린 도깨비로만 상상되었던 북측사람에 대한 기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필자는 특별히 북측 안내원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오래될수록 ‘대화’는 그야말로 ‘수다’를 떠는 분위기로까지 전환되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둘만의 수다속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음담패설이었다.
심지어 필자의 음담패설을 들으며 북측 안내원이 뱉은 말이 “‘X라’웃기느만… 정식 선생‘짱’입니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배꼽이 목젖에 달라붙을 만큼 박장대소를 했다. 경로야 어찌되었든 남측의 네티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조차도 적절하게 구사하며 방문 일행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북측 안내원 동무의 재치와 넉넉한 웃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라도 평양을 다녀올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가기 전 우리측 정부에서도 통일부로부터 의무적으로 사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달리 생각할 것도 없다. 혹시 평양을 가게 되면 이웃집에 수다떨러 마실간다고 생각하며 편히 다녀오기 바란다.
“정치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문화이다.”라고 말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새삼 온몸으로 확인된 평양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