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시계탐사 제10구간 식생

▲ 쑥부쟁이
야생화

본격적인 가을 들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주로 국화과의 꽃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녀석은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쑥부쟁이다.(비슷한 종류의 국화과 꽃들을 들국화라고 하기도 한다) 보라색과 노란색 그리고 초록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꽃이다. 보라색은 곤충을 불러 모으는 일을 한다. 우리가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보라색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혀꽃이라고 부르는 가짜 꽃이다. 진짜 꽃은 가운데 있는 노란부분이다. 이를 통꽃이라고 하는데 이게 진짜 꽃이다. 가짜 꽃에 유혹된 곤충들이 꽃에 날아들어 진짜 꽃의 수정을 도와주는 것이다. 쑥부쟁이는 쑥을 캐던 불쟁이(대장장이) 딸의 아름다운 사랑을 전설로 하여 피어난 꽃이라 더 애잔하고 아름답다.

쑥부쟁이와 함께 미국쑥부쟁이도 많이 보인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식물로 쑥부쟁이의 혀꽃이 보라색인 반면 미국쑥부쟁의 혀꽃은 하얀색이다. 같은 국화과의 식물로 노란색 꽃을 피우고 있는 이고들빼기도 보인다. 이 녀석은 노란색 꽃잎 끝이 아기 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고들빼기란 이름이 붙은 녀석이다. 붉은서나물도 보인다. 이름에는 ‘붉은’이 들어갔지만 사실은 노란색에 가깝다. 이 녀석은 꽃을 활짝 피우지 않는다. 봉오리처럼 보이는 게 전부 다 핀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하얀색 솜사탕 같은 씨앗을 퍼트릴 것이다. 참취도 아름다운 흰색 꽃을 피우고 있다.(사실은 혀꽃이 흰색이고 가운데 통꽃은 노란색이다) 초록의 물결 속에서 만난 순백의 아름다운 꽃, 참 매력적인 꽃이다.

▲ 이고들빼기
노란색 이고들빼기와 더불어 같은 국화과로 노란색 꽃을 피우는 ‘사데풀’이란 특이한 이름의 꽃도 산 초입에 많이 피어있다. 아직 완전히 봉오리를 열지 않았지만 조밥나물도 보인다. 조만간 노란 조밥 같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왕고들빼기도 보인다. 역시 국화과인 이 녀석은 이름 그대로 키가 ‘왕’이다. 삽주도 보인다. 등산객에게 밟혔는지 허리가 부러졌다. 부러진 허리 위에 순백의 아름다운 가시 송이 같은 꽃이 달려있다. 역시 국화과의 꽃이다.     

▲ 삽주
산 여기 저기 눈길 주는 곳에 마타리과의 흰색 꽃인 ‘뚝갈’이 많이 보인다. 이름도 특이하고 잎과 꽃도 특이한 녀석이다. 이맘때 산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녀석이다. 연한 보라색 종  같이 생긴 잔대도 피어있다. 암술이 유난히 길어 종 밖으로 나와 있는데 꼭 종 안에 달린 동그란 쇠뭉치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종소리가 들릴 것 같다.

 마음씨가 고약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며느리가 하는 일마다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굴었다. 어느 날 제사를 앞두고 며느리가 밥을 하고 있었다. 밥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밥알 두어 개를 먹어 본다. 이 광경을 시어머니가 본다. 안 그래도 트집거리를 찾는 시어머니한테 제대로 걸린 것이다. 시어머니는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조상이 먹기도 전에 버릇없이 밥에 먼저 손을 댄다고 며느리를 구박한다. 시어머니로부터 모진 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그길로 산에 들어가 목을 맨다. 이듬해 며느리가 죽은 그 곳에서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피어난다.

신기하게도 꽃 안쪽에는 하얀 쌀알 두개가 들어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은 같은 집안에 여러 식구가 있다. 털며느리밥풀꽃, 알며느리밥풀꽃, 수염며느리밥풀꽃, 등등. 이번 구간에서 만난 것은 꽃며느리밥풀꽃이라는 녀석이다. 주로 등산로 주변이나 산 입구에 많이 피는 녀석은 전설 그대로 짙은 자주색 꽃잎 안에 흰 쌀알을 두 개 머금고 있다. 처량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꽃이다.

▲ 꽃며느리밥풀꽃
이 밖에도 이번 구간에서 만난 들꽃들은 주름조개풀, 닭의장풀, 개여뀌, 등골나물, 큰벼룩아재비 등 여름과 가을 사이를 살아가는 아름다운 녀석들이다.

곤충

역시 잠자리들이 많이 보인다. 온 몸이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자신이 결혼할 때가 됐음을 알리는 깃동잠자리 수컷이 가장 많이 보인다. 수컷의 몸이 붉게 물들고 있는 날개띠좀잠자리도 여럿 보인다. 된장 빛을 닮은 된장잠자리도 보인다.

▲ 깃동잠자리
메뚜기네 집안 식구들도 많이 보인다. 줄베장이와 검은다리실베짱이가 먼저 보인다. 방아깨비를 닮은 섬서구메뚜기도 보인다.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쌕색이도 두어 마리 보인다. 등에 X자 무늬가 선명한 팥중이와 밑이 들린 팔공산 밑들이메뚜기도 보인다.

무시무시한 파리매도 보이고 귀여운 끝검은말매미충도 보인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잘라놓은 작은 참나무 종류의 가지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 섬서구메뚜기
나비네 식구들도 보인다. 매 구간 보았던 호랑나비가 눈에 띈다. 앙증맞은 부전나비들도 보인다. 멋진 주홍색 날개 빛을 가진 작은주홍부전나비가 샛노란 사데풀 꽃 위에서 돌돌 말린 긴 주둥이를 풀고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날개에 하얀색 점이 특징인 줄점팔랑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흰줄표범나비도 서너 마리가 보인다.

산길을 걷는데 뭔가가 ‘휙’하고 앞으로 날아간다. 눈으로 쫓아가니 착지 기술이 영 형편없다. 저렇게 서툰 착지 기술을 가진 녀석이라면 크기로 봐서 노린재일 것 같았다. 녀석이 내린 나무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역시 노린재 한 마리가 있었다. 선명한 녹색의 몸이 보인다. 배 뒤쪽으로 굵은 선이 창살처럼 쳐져있다. 황갈색의 앞가슴등판 양쪽은 가시처럼 뾰족하다. 수컷의 생식기가 가늘고 긴 거꾸로 된 V자 모양이라서 가위노린재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정확한 이름은 앞가슴등판에 뿔이 있으니 ‘뿔’자가 들어가고 몸이 선명한 녹색이니 ‘녹색’이 들어가고, 생식기가 가위처럼 생겼으니 ‘가위’가 들어가고. 정리하면 녹색가위뿔노린재라는 녀석이다. 녀석이 얌전히(?) 있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지만 날씨 때문인지 사진은 영 신통치가 않다.

▲ 남쪽날개매미충
회잎나무 잎 위에서 커다란 노린재를 한 마리 더 봤다. 주둥이가 특이하게 생겨서 ‘주둥이노린재’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크기도 크고 색도 아름답고 또 자주 보이지 않는 녀석이라 일행들의 카메라 세례를 톡톡히 받은 녀석이다.

남쪽날개매미충이란 긴 이름을 가진 곤충도 만났다. 전체 길이가 5mm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녀석이다. 눈과 머리는 매미를 닮았고 날개는 나방을 닮았다. 활잘 핀 날개에 두개의 선명한 줄무늬가 보인다. 너무 작은 녀석이라 녀석을 보기 위해선 최대한 몸을 낮추어야 한다. 야산 풀밭에 주로 서식하는 녀석은 우리 곁에 늘 있었겠지만 오늘에야 눈을 맞추었다. 좀더 많은 세계를 보기 위해선 더 많이 몸을 낮추어야 함을 일깨워 준 녀석이다.

나무

나무들은 이미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결실의 계절이 다가 온 것이다. 쥐똥나무 열매가 초록으로 숲을 물들이고 있다. 좀더 있으면 말 그대로 쥐똥처럼 까맣게 익을 것이다. 성급한 노린재나무는 특유의 코발트빛 열매를 달고 있다. 아직 제대로 익진 않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낼 것이다. 회잎나무도 연두색 열매를 달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빨간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 참싸리
도토리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길쭉한 갈참나무의 도토리, 털모자를 눌러 쓴 떡갈나무의 도토리, 총알처럼 매끄러운 졸참나무의 도토리, 참나무 식구들도 가을걷이 준비가 한창이다. 밤나무에도 연두색의 밤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짙은 갈색으로 익으면서 벌어질 밤송이를 생각하니 벌써 군침이 돈다. 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에 군밤 생각이 나다니.

개암나무는 여럿 보이는데 정작 개암은 보이지 않는다. 두 손으로 살포시 볼을 감싸며 하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개암나무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지난 여름 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던 땅비싸리들이 등산로 양편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참 많다. 녀석들은 어떻게 가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살짝 잎을 들춰보니 기다란 꼬투리가 여기 저기 매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같은 싸리나무 종류이지만 아직 청춘인 녀석이 있다. 꽃을 활짝 피우고 부지런히 곤충을 유혹하는 싸리나무가 있다. 동그란 잎 세장이 아름다운 ‘참싸리’다. 어리호박벌과 나나니, 줄점팔랑나비가 부지런히 꽃에 모여든다.

▲ 생강나무열매
이번 구간에서는 특이한 나무를 만나지는 못했다. 물박달나무의 군락지를 본 것과 활짝 핀 두릅나무의 꽃을 본 것, 그리고 오렌지 빛으로 익어가는 생강나무의 열매와 신비감을 풍기는 칡꽃을 본 것 정도. 하지만 항상 보아왔던 나무들이 많기에 반갑고 기분이 좋다.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상수리나무, 고로쇠나무,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붉나무. 어렸을 때 친구들처럼 친숙한 녀석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산을 내려왔다.
글. 사진 /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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