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국제라이온스 클럽 354-B지구 제3지역과 (주)용인시민신문, (주)화인투어가 공동주최 및 주관하는 ‘2007년도 용인시 청소년 고구려역사 탐방대’의 일원으로 5박 6일간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봤다.

평소 국내여행도 다녀보질 않았던 나는 타국 여행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였던 고구려 유적지를 볼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배에 올랐다. 저녁 5시 40분에 출발한 배는 내가 잠든 사이에도 쉬지 않고 물살을 헤쳐 아침 9시경 중국 단동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해 통화로 향하던 중 오녀산성을 지나게 되었다. 관광 가이드는 ‘다섯 선녀가 내려와 성을 지켜 오녀산성이라 불린다’는 중국의 설화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오녀산성은 동명성왕이 건국한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성으로도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이 졸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우리 땅이었던 곳이 이젠 남의 땅이 되어 우리의 역사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는 현실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버스로 7시간을 이동해 통화에 도착한 우리는 침대열차를 이용하여 밤사이 백두산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일정에 차질이 생겨 통화에 위치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송강하를 거쳐 기차로 이도백하까지 갔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 백두산에 다다르니 그곳엔 우리를 정상까지 안내할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차에서 내려 100미터 쯤 올라가면 백두산 정상이다.

우리민족의 건국신화가 깃든 곳이며 고구려,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도 우리 가슴속에 민족의 영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서니 무어라고 말하기 어려운 가슴 뭉클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백두산 천지의 장관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장백폭포로 갔다. 30m 정도 높이에서 흰 천을 길게 늘인 듯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작은 천지 같다’하여 소천지라고 불린다는 연못을 둘러보고 백두산을 내려왔다.

이도백하에서 사우나로 피로를 푼 후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다시 통화로 돌아왔다. 통화에서 아침을 먹고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물이 있는 집안으로 향했다. 집안은 국내성으로 불리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이다. 고구려 2대 왕이었던 유리왕이 졸본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20대 장수왕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 동안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곳이었으며 고구려의 부흥과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한 곳이기도 하였다.

국내성 일대엔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환도산성, 5회분5호묘 등 많은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물들의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광개토왕릉은 무너져 있었고 5회분5호묘의 벽화는 상당부분 훼손되고 희미해져 알아보기 힘들었고 국내성 성벽은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며 주변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프랑스나 일본 같은 경우 다른 나라의 유물일지라도 매우 귀중하게 다루고 보관하는 것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중국은 이들 나라와 달리 너무 대조적이다. 또한 귀중한 고구려의 문화유산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한시바삐 좋은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동으로 돌아와 이번 고구려 유적지 탐방의 마지막 일정을 남겨두고 호텔에 들었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는 반가움 때문인지 혹은 탐방일정을 모두 뒤로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인지 나를 비롯한 많은 탐방대원들이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이튿날 단동항으로 가는 도중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호산장성을 보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압록강 유람선에 탑승했다. 유람선에서 우리는 강 건너 북한 땅을 보며 북한 주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문득 ‘우리는 한 민족인데 어째서 가까운 곳을 두고 다른 나라를 통해 멀리 반대편으로 와서 손을 흔들어야 할까’ 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그것이 혹시나 고구려인의 호연지기를 잃어버려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배에서 침상에 지친 몸을 누였다. 고구려 역사 탐방일정을 되돌아보며 강대국 중국과 숱한 주변 외세의 침략을 모두 물리치고, 기차로 하룻밤을 달리고도 끝이 안 보이는 넓은 영토를 호령한 고구려인의 기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 김건우 태성중학교 2학년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