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표 편집인의 개성 방문기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은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다.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그의 당시 방북은 금강산 관광개발과 개성공단 개발 사업 추진 등 남북경제협력의 물꼬를 민간차원에서 트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동시에 고향과 집안재산을 의미하는 소떼를 몰고 고향으로 향하는 그 모습은 많은 실향민들과 통일을 열망하는 모든 민족 구성원들에겐 대단한 감동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오늘. 민간경제협력을 통해 남북화해와 공동번영에 이바지하고자 추진됐던 두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일시적인 변화에 따라 다소 우여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금강산 관광은 이미 안착 단계에, 개성공단 사업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듯하다.

지난 29일, 한국언론재단의 주선으로 개성을 방문했다. 남북 경협 현장을 살펴보고, 그 실제모습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진행중인 실제 경협 현장은 기분좋은 충격이었다. 동시에 진정 남북 공동번영의 새로운 희망을 느끼는 벅찬 순간이기도 했다.

“오픈 더 도어(open the door). 개성은 성문을 연다는 뜻이죠. 바로 통일의 문을 여는 곳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김동근 위원장의 확신에 찬 말처럼 개성은 이미 문이 열리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남북을 잇는 열차가 시범운행한 역사 옆으로 시원한 도로가 뚫려 있었다.

복잡한 통관 절차, 낯선 복장의 군인들, 하늘 높이 솟아있는 인공기, 칙칙한 선전마을 그리고 겹겹이 설치된 군사철책 등 외부환경만 아니라면 현대화된 여느 공단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 현대아산 직원인 북측여성 홍설경(23)씨가 1단계 공사 현장과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장면 1  속옷 만드는 ‘좋은 사람들’ 공장의 북측 노동자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인 공장 내부는 깨끗하다. 1, 2층으로 구성된 공장 안에서는 수 백대의 재봉틀 앞에 앉은 북측 여성들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총 직원 수가 440여명에 달하는 큰 공장이다. 속옷 브랜드를 생산하는 「좋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사 총 생산량의 30%를 소화한다. 그런데 남쪽에서 간 직원들은 8명에 불과하다. 관리자조차 북측 사람들이 대부분 맡고 있다. 제품 박스를 보니 ‘MADE IN KOREA’다.

많은 남쪽사람들이 방문하다보니, 일에 지장을 받을 텐데도 질문에 싫은 기색이 없다. 30대 말로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의 한 여성은 근무환경을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다 좋습네다”
최윤구 생산부장에게는 개성 진출의 장점을 물었다. “봉제 가공업은 3D업종에 속하잖아요. 인력난이 심각하죠. 개성에 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니 현실적으로도 실속있는 편입니다.”약  80%가 잔업을 자청하며, 생산성은 남쪽의 70~90% 수준이란다. 이미 중국을 넘어선 단계라는 것이 공단 관계자의 부연 설명이기도 하다.

#장면 2 개성공단엔 없는것이 없다?

개성에는 은행도 진출해 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 영업소다. 은행 내부 규모는 적고 직원은 단 5명 뿐이다. 그 중 창구부서는 2명의 북측 여성이 맡고 있다. 흰색 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은 여성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민간은행 근무모습은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 다른 익숙한 공간은 편의점인 훼밀리 마트다. 남쪽과 다를 바 없는 물건이 진열돼 있고, 판매원은 역시 북쪽 여성이다. 다만 낯선 것이 있다면 달러로 구매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 방문한 곳은 협력 병원. ‘그린 닥터스 개성병원’으로 명명된 이곳에는 남쪽 진료진 7명이 자원봉사로 근무하고 있다.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개성공업지구 종합진료소 림흥배 소장은 9명의 북쪽 직원까지를 포함해 이곳 총책임자로서 하루 150여명의 환자들을 돌본다. 주로 여성들이 근무하는 공단이다보니, 부인과 질병 환자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소방대와 한전 등 생활기반시설과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각 기관이 줄줄이 빠짐없이 들어서 있는 곳이 개성공단 안의 모습이었다.

여의도 면적 23개 업체에 북근로자 1만5000명… 향후 수도권 연계 개발 계획 포함

천지개벽 중인 개성의 오늘

현대아산측이 마련한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총 3단계에 걸쳐 무려 2000만평을 조성한다는 야침찬 계획이다. 여의도 20배 면적의 대규모 사업이지만, 이미 북측과는 개발협의서를 체결한 상태다. 더구나 개성일대가 북측으로는 결코 양보하기 어려웠을 군사적 핵심 요충지이자, 바로 남쪽과 맞닿아있는 땅임을 고려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북한 지도부의 파격적 용단이 아닐 수 없다. 그곳에서 건설현장의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물자 실은 화물차가 분단철책을 분주히 오간다. 잘 지어진 공장 안에선 북측 노동자들이 구슬 땀을 흘리며 남측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해 6월, 한국토지공사가 1단계 부지조성을 마친 후 올 상반기 완공 목표로 기반시설을 다지고 있었다. 공업용수를 비롯한 상수 시설과 도로망, 전력 등이다. 특히 공업단지 내에는 이미 23개 업체가 입주해 가동 중이다. 섬유·봉재업이 10개 업체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기계·금속, 전기·전자, 화학 등이다. 아파트형 공장도 오는 8월 초면 32개 업체가 입주를 예정하고 있다.

2004년 말부터 올 4월까지 총 생산량은 1억 4천만달러로 그 중 섬유가 40%, 기계금속 28%, 전기·전자 18% 등을 각각 차지했다. 그 가운데 수출량은 23.8%로 총 3천만달러였는데, 수출형태는 개성에서 반 가공한 후 국내 완성제품으로 수출하는 식이다. 1만 5천명의 북측 노동자와 남측 근로자 800명이 근무하고 있는 개성의 오늘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 개성공단 입주 업체인 「좋은 사람들」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이 공장에는 430여명의 북측 사람들이 고용돼 있다.

개성 경쟁력, 어디에서 나오나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과연 기존 업체의 만족도와 향후 계속 확대되는 공업단지에 입주할 업체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선 일단 매우 희망적이라는 것이 정부 당국자는 물론 관계 업체들의 대체적인 판단인 듯 보였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파트형 공장 업체 신청을 받은 결과 76개사 이상이 신청해 2:1을 넘어서는 경쟁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미 분양한 시범단지 2만 8천평에도 15개 기업 분양에 136개 업체가 참여해 무려 9: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바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첫째는 엄청나게 싼 단지 분양가 경쟁력이라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개성공단 분양가는 평당 14만 9천원에 불과하다. 시화공단이 조성될 당시 분양가의 딱 10분의 1 수준이란다. 눈독을 들일 만하다. 다음으론 품질 생산성과 북쪽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이다.

“품질 생산성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국내와 비교해 70~90%정도인데, 이는 중국과 맞먹는 정도지요. 특히 노동생산성은 타국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데, 이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높은 학력 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는 열의와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개성공업지구 종합진료소. 모두 15명의 의료진 가운데 북측이 9명이며, 소장도 북측사람이다.

불안정성 남아 있는 개성 공단
 
김동근 위원장의 설명대로 대부분 80%가 연장근무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고졸 이상의 학력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도 20~30대가 주류를 이뤘다. 이 밖에도 중국과의 물류비 비교에서 10분의 1에 불과한 점, 거의 평생 직장으로 생각할 정도로 이직율이 낮은 점, 국내 1인 비용이면 20~30명을 고용할 수 있는 낮은 임금, 노동쟁의가 없는 점 등이 남쪽 기업인으로선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개성공업지구가 장밋빛 기회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다른 체제의 국가인데다가 한반도 안팎의 정치· 군사적 불확실성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근한 위험요인의 실례가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국제관계 악화로 빚어진 소위‘북핵 위기’다.

당시 개성 진출 기업들은 정상가동을 했으나, 내심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술회다. 물론 지난 ‘2.13 핵 합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긴 했으나, 이같은 정치·군사적 민감한 사안이 언제 다시 반복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북쪽은 선군정치를 하고 있다. 체제를 지탱하는 축으로서 군대를 앞세우고 있어, 군부의 입장을 강력한 지도자의 리더십만으로 제어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음으론 개성경협이 정부보단 정주영으로 상징되는 현대그룹에 의해 민간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000년 체결된 개성공단 사업 개발합의서가 ‘현대아산-북측 아태’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물론 북측이 <북남 개성공업지구법>(2002년)을 발표하고, 이어 남북간에 통신, 통관, 검역, 출입 및 체류 등에 관한 각종 합의서가 체결됨으로써, 양 정부간 법적 뒷받침을 해 주었다. 국회도 뒤늦긴 했지만, 지난 4월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킴으로써 공단의 안정적 발전의 토대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민간이 앞서 나가고 정부당국자간에 이를 받쳐주는 방식 자체가 어쩌면 남북경협의 불안정한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과 함께 개성공업지구를 방문한 진출 희망 일부 기업인들도 나름의 우려를 갖고 있었다. “좋은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자체 상품을 만드는 데는 문제 없지만, 협력업체가 많은 업종은 통관절차나 납기맞추기가 어렵겠는데요.” 이름 밝히길 꺼려한 화장품 제조업체 사장은 자신없다는 표정이었다. 

▲ 개성공업지구 종합 모형도. 3단계까지 2천만평 규모로 추진되는 이 사업이 완료되면 여의도의 20배로, 창원시와 창원공단이 합친 크기와 맞먹는다.

3단계 사업은 2천만평 규모

이 같은 우려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이 민족 공동번영의 희망이라는 기대감을 버리는 사람을 적어도 개성 현지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확정된 1단계 사업만 완료돼도 최대 500여개 기업이 입주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북측 근로자만 7만~10만명 고용이 예상된다. 연간 20억 달러 생산전망을 가지고 있다. 현재 개성시 인구가 16만명임을 감안하면, 노동가능한 시민이 다 일을 해도 모자란다는 얘기다.

공단측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북측 근로자 기술연수센터 준공을 서두르는 한편, 변전소를 올 6월 완공할 예정이다. 안정적인 용수 확보를 위해 정·배수장도 건설하고 있다. 종합적인 지원을 위해 행정 서비스타운이 2009년말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향후 2단계 사업은 무려 250만평의 용지에 공장, 생활구역, 사업단지, 관광구역 등이 추진된다. 1단계 사업이 노동집약적 사업이라면 2단계에는 수출중심기지를 늘려나가면서 첨단 산업체도 입주시킨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는 전략물자에 대한 국제 규제를 뚫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수도권에 위치한 전략적 업체를 유치하는 한편 연계개발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한 규제를 받고 있는 용인 등 수도권 기업들로선 외국이전의 새로운 대안으로 충분히 검토해볼 만 하다. 이와 같은 2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입주기업은 700여개가 들어서며, 남쪽 경제효과는 무려 2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3단계는 무려 2천만평을 계획하고 있다. 창원시와 창원공단이 합쳐진 면적에 맞먹는 규모다. 이 계획에는 각종 레포츠 시설과 개성관광까지가 포함돼 있어, 금강산 관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목적 사업계획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 둘러본 현장이지만 개성공단 경협사업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하고 국내중소기업의 활로를 개척한다는 의의를 충분히 살려나가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남북 공동번영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하는 계기였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다시금 어딘가에서 본 대목이 떠올라 고개를 혼자 끄덕였다. “개성이 열리면 한반도 평화가 열린다” 그랬다. 이미 개성은 열렸다. 열차가 남북을 오갔다. 통일이 저만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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