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탐사가 시작되는 첫날, 31일 아침.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높은 호응으로 당초 50명으로 제한했던 대원모집을 80여명으로 늘려잡았기에 미쳐 1대밖에 준비하지 못한 수송차량 걱정이 앞섰다. 분산 이동 덕에 대장정이 시작되는 처인구 양지면 용화산 도착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용화산에서 치르기로 예정했던 발대식과 시산제는 비로 인해 불가피하게 한터캠프를 빌려야만 했다. 국민의례와 자연보호 낭독, 단기수여, 단장 인사말, 탐사수칙 선서 순으로 진행된 발대식과 시산제는 매끄럽게 끝이 나고, 마침내 탐사 대열이 줄지어 용화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새 비는 그치고, 시원한 안개가 온 몸을 감쌌다. 가파른 산길은 가랑잎이 수북하여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등산로를 따라 설치된 동아줄과 능숙한 등반전문가들의 길 안내에 따라 대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첫 시련…방향착오와 낙오

30여분 걸었을까. 첫 능선이 나타났다. 용화산(굴암산) 제2정상이다. 용인시 양지면 대대리와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 경계로서 본격적인 경계 탐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시작부터 발생했다. 간격이 벌어졌던 중간대열이 정반대편 방향으로 길을 들었던 것이다.

더군다가 이동 중 숲해설가 양춘모 식생조사팀장의 설명을 듣느라 대열이 흩어지고 말았다. 첫 시행착오는 금방 수습돼 말치고개를 넘어 임도와 옛길이 만나는곳 산마루를 자른 길에 이르니 소목재다.

한터와 추곡리를 잇는 고개다. 소목재에서 능선에 오르니 유림동 고림동에서 이어진 능선과 만나며 마루금 시경계길은 계속 북쪽으로 이어진다. 한참 후 말아가리산 입구 쇠내실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포곡면 금어리 쇠내실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길에는 아름다운 작은 연못과 용인의 상징인 시목, 아름드리 전나무가 많은 곳이다. 나무를 자르면 하얀 젖 같은 나무 액이 나와서 젖나무라고 부르다가 젓나무 혹은 전나무로 이름이 바뀐 나무다. 용인에서 제일높은 말아가리산(마고산)에 오르는 길은 자욱한 안개가 끼어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정상에는 광주시에서 만든 이정표는 세워져 있었다. 광주 백마산에서 태화산까지의 이정표는 대개 광주시에서 제작해 설치한 것이어서 마치 용인의 제일봉을 빼앗긴듯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용인의 최고봉,
말아가리산 정상에 서다


595m에 달하는 정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치 산령이 있는듯, 일순간 안개가 걷혔다가도 이내 세찬바람과 함께 밀려들기도 한다. 돌을 하나 둘 쌓아 만든 탑형 기둥에 꽂힌 태극기가 쉴새없이 휘날려 온전하지 못하다. 사진팀 대원이 나서 주위 모습을 담은 후 발걸음을 재촉해 하산하는 가파른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산행 대열이 너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도착한 고개가 성황당고개다. 10년 전쯤에는 이곳에 오면 사금파리 옹기조각 등이 있었다. 지금은 돌무덤만이 남아 있다. 임도로 내려선 대열은 길게 난 임도를 따라 내려와 하산 집결지인 금어리 퉁점으로 향했다.

◆ 1차 탐사코스의 식생 =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몇 그루 눈에 띈다. 하늘거리는 연한 분홍색 꽃을 피우는 올괴불나무가 제법 보인다. 괴불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름에 '올'이란 단어가 붙었다. 3월 중순경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다. 아직 채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산에서 봄을 인도하는 선구자 같은 나무다. 산 여기저기에 진분홍의 진달래가 갈색 산을 수놓고 있다. 먹을 수 없는 철쭉과 달리 꽃잎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참꽃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다.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나무라고 불린다. 생강나무도 노란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마을 주변에서 자라는 산수유와 혼동하는 나무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나무껍질이다. 산수유는 너덜너덜하게 껍질이 벗겨지지만 생강나무는 매끈하다. 그리고 산수유는 산속에는 없다. 마을 주변에만 핀다. 이맘 때 산에서 보이는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는 생강나무라고 보면 된다. 잔가지를 자르면 생강냄새가 나기 때문에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쓰기 때문에 산동백나무라고도 불린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동백이 바로 이 생강나무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차이
“아하, 그렇구나”


산 중간 지대부터 노간주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소의 코뚜레를 만들 때 사용하던 나무라서 '코뚜레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다. 노간주나무는 숲이 침엽수림에서 활엽수림으로 바뀌는 중간단계에 나타나는 나무다. 나무가 곧고 가벼워서 산꾼들의 지팡이로 쓰이기도 한다. 청가시덩굴의 연한 순도 보이기 시작한다. 억센 가시에 비해 사마귀 얼굴 같은 삼각형의 어린 새순이 무척 귀여운 나무다.

가시에 나이테가 새겨진 산초나무도 곳곳에서 보인다. 잎을 비비면 신 식초 같은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모기가 싫어하기 때문에 새잎을 몇 장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산에서 모기에 안 물린다. 봄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회잎나무 새순이 지천이다. 언 땅이 녹기 시작하면 이 회잎나무 새순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산행 중 갈증이 날 때 연한 새순을 몇 장 따서 씹으면 아주 좋다. 새로 자란 가지가 붉은색을 띄는 층층나무 때문에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붉은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다. 층층나무는 매년 자라는 가지가 층층으로 돌려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들은 아파트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화산에는 제법 큰 층층나무가 많다. 아름드리 층층나무 근처에는 작은 새끼 층층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앙증맞은 층층나무 어린 녀석들이 내 뿜는 소란스런 수다는 산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딱총나무도 제법 많다. 나무를 잘라 딱총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이 나무는 잎을 비벼 냄새를 맡으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 나무의 특징이다. 새 깃처럼 생긴 연한 연둣빛 새순이 생명을 느끼게 한다. 참나무과 6형제들도 보인다. 신발을 갈아 신을 때 신발 깔창 대용으로 이 나뭇잎을 썼던 신갈나무, 떡 쌀 때 유용하게 사용되던 떡갈나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상수리나무, 나무껍질에 코르크층이 발달해 인테리어 재료로 수난당하는 굴참나무,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드는 가을 참나무 갈참나무, 가장 작은 도토리가 열리지만 묵 맛은 최고인 졸참나무가 그들이다.

◆ 3말 4초의 산속 들풀 = 들풀들도 새싹이 한창이다. 뾰족한 가시 같은 날카로운 잎이 특징인 꿩의밥, 가을에 조알 같은 노란 열매가 달리는데 꿩이 좋아한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봄나물의 대명사인 원추리 새싹들이 갈색 대지를 뚫고 기세 좋게 올라오고 있다. 맛과 향이 좋기 때문에 이른 봄 수난을 당하는 대표적인 나물이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노란 양지꽃이 어린아이 같은 환한 꽃을 피우고 있다. 새 모양을 닮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현호색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털투성이 연한 잎을 올리고 있는 맑은대쑥도 등산로 주변에 많이 보인다. 둥근털제비꽃은 연한 보랏빛이 비치는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금붓꽃의 노랑 빛이 감도는 연둣빛 칼날 같은 새잎이 돋보인다. 엉겅퀴와 질경이, 짚신나물, 큰뱀무, 점나도나물, 황새냉이, 민들레, 나도냉이 들이 앞 다투어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자르면 노란 아기 똥 같은 즙이 나오는 애기똥풀도 지천이다. 약간 습한 곳에서는 바디나물과 개별꽃, 그늘돌쩌귀, 미나리냉이 들이 재잘재잘 봄맞이를 하느라 소란스럽다.

지난 가을의 열매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은대난초와 하늘말나리의 빛바랜 줄기와 잎이 세월을 느끼게 한다.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제비꽃들과 애기수영, 산거울사초, 고들빼기, 조개나물 새싹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꽃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새싹들의 향연에 취해 봄을 만끽한다.

◆ 산새 분포 = 새들도 제법 보인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녀석은 박새들이다.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검은색 넥타이를 맨 듯한 무늬가 있는 녀석이 박새고, 나비넥타이처럼 목 밑에만 검은 무늬가 있는 녀석은 쇠박새다. 박새보다 작기 때문에 이름에 작다는 뜻인 '쇠'자가 붙었다. '쯔쯔비비' 하고 멋진 노래를 부르는 곤줄박이도 먹이를 구하느라 나뭇가지 여기저기를 바쁘게 오간다.

고목 여기저기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것을 보니 딱따구리가 있는 게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린다. 언뜻 보이는 것이 오색딱따구리다. 멧비둘기와 까치도 보인다. 숲의 포도대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어치가 낯선 우리를 경계하느라 소란스럽다. 이 녀석은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줄곧 따라다니면서 숲의 친구들에게 침입자가 있음을 알리는 숲의 파수꾼 같은 녀석이다. 덤불 사이에선 뱁새라고 더 잘 알려진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열매를 먹느라 소란스럽다.

찍익 시끄럽게 울어대는 직박구리도 보인다. 커다란 까마귀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딱새 수컷은 보이지 않고 연한 갈색의 딱새 암컷이 외로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푸드드득' 날아오르는 꿩의 우수꽝스러운 비행술 때문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난다.

/ 이제학·손윤한 공동집필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