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고향은 대한민국 용인시 입니다”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3년만 일하다 가야겠다’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월급을 받지 못해 사장님 쫓아다니기 일쑤, 다행히 받기도 했지만 받지 못한 친구들도 많습니다. 쳐다보는 시선도 따가웠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거쳐 용인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주노동자센터 식구들, 집주인 아주머니…
용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용인이 고향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아지스도 태어났습니다.  2007년, 한 해만 더 고생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고향에 가면 밀가루 공장을 차릴 생각입니다.
용인은 잊지 못할 우리 가족의 두 번째 고향입니다. 다시 와서 살고 싶습니다…
용인시민 여러분 “양기 일린기즈 꾸들룩 불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날, 이주노동자센터 소개로 용인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부부를 만나러 갔다.
마중 나온 구멕씨를 뒤쫓아 양지면 어느 마을, 좁고 굽은 골목길을 지나 한 주택 앞에 섰다. 처음 만난 사람을 선뜻 집으로 초대한 구멕씨 배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의 가족을 만났다.
마침 이천, 여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놀러와 새해 첫날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영화가 재미있다며 TV에서 방영되는 한국영화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3평이 채 안되는 작은 방에 모인 우리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 고향에서 지냈던 구멕씨와 그의 친구들은 어려울 때마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주는 사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구멕씨가 ‘최고참’. 모여서 고향 얘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른 서 너 명이 앉기에도 비좁은 작은 방은 이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방안에서 새록새록 희망의 꿈이 싹트고 있었다.

# 6년전 ‘코리아 드림’

우즈베키스탄에서 운전을 가르쳤던 구멕(33)씨와 카자흐스탄에서 교직에 몸담았던 아르닥(36)씨 부부는 6년 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들어왔다.

구멕씨는 대구에서, 아르닥씨는 인천에서 일자리를 잡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어딘가 다른 이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기고 없는 몸까지 아프면 의지할 곳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곳을 ‘코리안 드림’이 있는 희망의 땅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일할 곳을 찾아 용인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인천에서 일하던 아르닥씨도 남편 구멕씨가 있는 용인으로 옮겼다. 둘은 한 지붕 아래 작은 방을 얻고 구멕씨는 백암의 한 공장에서 현장 노동자로, 아르닥씨는 식당에서 돈을 벌었다.
작은 부엌이 딸린 단칸방은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14만원 짜리다. 마치 80~90년대의 주거환경 그대로다. 어쨌든 둘이 사니 생활비도 아낄 수 있고 열심히 일해서 월급만 제때 타면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보다 5~6배 더 벌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르닥씨는 “돈 벌어 잘 살고 싶어 한국에 왔는데 처음에 많이 울었다”며 “가구공장에서 일할 때 3년 치 월급을 못 받아 간신히 받았지만 아직 못 받은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돈을 벌기는커녕 임금 체불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도 많다고 전했다.

더욱이 몸까지 아프면 어렵게 모은 돈은 하루아침에 병원비로 쏟아 부어야 한다. 구멕씨 역시 다리 수술을 2번이나 받았고 앞으로 한 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다. 뜻하지 않은 다리 수술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한번 수술 할 때 500만원씩 들었는데 다행히 고향에서 온 친구들이 5만원, 10만원씩 도와주고 (이주노동자)센터에서도 도움을 많이 줬다”며 그들이 보낸 사랑의 손길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너무 외로워서 술로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이 많아 한국에 온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부부도 꽤 있었다.

“외국인도 살아가는 건 다 똑같아요. 가정이 있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죠. 남자들 혼자 있으면 술 많이 먹고 힘든데 부인 있고 아이 있으면 변하죠.”

구멕씨 부부 사이에 5개월 전 아들 아지스가 태어났다. 요즈음은 아들 보는 재미에 살 정도다. 고향에 있는 부모들도 전화 할 때마다 손자가 보고 싶다며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한다고 했다. 아르닥씨도 식당일을 쉬고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아이 낳을 때 고향 생각 많이 했어요. 엄마 생각 많이 났어요.” 아르닥씨는 아이 낳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아르닥씨는 냄새 때문에 먹지 못했던 미역국을 지금은 아주 잘 먹는다. 아이 낳고 집주인 아주머니가 끓여준 미역국 맛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 고향가면 밀가루 공장

6년 동안 알뜰살뜰 돈을 모아 고향에 집 한 채를 마련한 구멕씨 부부는 “언제 붙잡힐까 하는 생각만하면 스트레스 받고 무섭다”며 “있을 때까지 열심히 살면서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멕씨 부부는 아들 아지스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아지스 고향은 대한민국 용인 양지면입니다. 용인에서 세상의 가장 큰 선물인 복덩이를 얻어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그러나 이름도 올리지 못해 아직은 세상에 없는 아이 아지스를 위해 구멕씨 부부는 내년에 고향으로 들어갈 계획을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밀가루 공장을 세워 장사를 할 꿈에 벌써부터 설렌다.
2007년은 이들 부부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더 열심히 일해야 계획대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이들 세 식구가 사는 양지면 방 한 칸에서는 또 다른 행복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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