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맞으며 아버지 약으로 쓰일 천마 캐러 다녀왔습니다

어제, 친구가 "위암으로 투병 중이신 이장님(우리 아버지, 20년 넘게 이장을 하셔서 그렇게 부른다)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며, "천마 몇 뿌리를 산에서 캤는데 항암효과가 탁월하다니 가져가라"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다시 전화를 해 미안하다며 "집에 남편이 꼭 자기가 먹어야 한다고 하니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않냐,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했더니 다시 '천마'를 캐오자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소풍날이면 자주 비가 내리곤 했었다. 그리고 서울 살다 친정집에만 갈라치면 꼭 비가 내린다. 어머니는 "너는 비를 몰고 다니냐"며 장대비와 함께 찾아오는 딸이 반가우면서도 엉뚱한 핀잔까지 보태어 하시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항암효과가 탁월하다는 그 한마디에 '천마'를 캐러가기로 했는데 새벽부터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린다.

▲ 천마 줄기입니다. 제 앉은 키보다 훨씬 크고 잎사귀는 없었습니다.
ⓒ 권용숙
내리는 비가 갑자기 발동한 효심을 막을수 있을까, 김밥 몇 줄 배낭에 넣고 빗속을 달려 친구가 사진 찍다 천마를 캤다는 그야말로 가시덤불이 우거진 컴컴한 야산에 도착했다. 우중에 산삼도 아닌, 마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천마를 캐겠노라고 달려온 효심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사진에서 미리 본 천마 줄기를 발견했다. 마와 비슷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꼿꼿한 꽃대에 꽃이 지고 씨앗이 여물어가고 있다.

▲ 생각보다 얕게 묻혀 있어 캐기가 수월했습니다.
ⓒ 권용숙
알고 보니 천마는 마과가 아닌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로,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며 한때 중국에선 천마를 이용해 난치병을 고치는 종교가 생긴 적도 있다고 한다. 대도회 교주는 신도들이 병이 나면 천마를 달여 먹게 하였는데 어떤 병이든 잘 나아 소문이 퍼져 한때는 신도수가 200만을 넘기도 하였다는 기록도 있었다.

줄기를 잡고 주위에서 주운 모종삽으로 살살 파니 타원형 작은 고구마 같은 뿌리가 한 덩이 얼굴을 내민다. 한 뿌리만 덜렁 나오는 것이 그리 오래 되진 않은 듯싶다.

▲ 천마(天麻), 수자해좃·적전(赤箭)이라고도 한다. 부식질이 많은 산지의 숲 속에서 식물의 뿌리에 활물기생한다. 높이 60∼100cm이며 잎이 없고 감자 모양의 덩이줄기가 있다.
ⓒ 권용숙
산삼보다 더 귀한 보물처럼 '천마' 한 뿌리를 가져간 봉지에 넣어 한손에 들고 온 산을 비 묻은 솔잎에 미끄러지며 뒤졌지만 더 이상의 '천마'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군데군데 빈 구덩이만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만 아는 곳은 아닌 듯싶다. 땀과 빗물이 범벅이 된 채 심마니라도 된 양 의기양양했지만 정성만으론 부족한 듯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망태버섯, 이 버섯의 특징은 갓의 내면과 자루 위쪽 사이에서 순백색 또는 노란색 의 망사 모양의 망태가 퍼져 내려와 밑부분은 땅 위까지 내려와 화려한 레이스를 쓴 것 같이 되는 점이다. 주머니에서 자루가 솟아나와 망태가 퍼지는 속도는 급속히 이루어진다.
ⓒ 권용숙
귀한 식물들은 귀한 것끼리 모여 사는가보다. 작년부터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게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던 '망태버섯'이 '천마'가 있던 가까운 곳에 노란 망사옷를 펼쳐 입고 하얀 속살을 살며시 감추고 환하게 솟아 있다. 마치 버섯이 망사 원피스를 입고 산새도 숨어버린 비 오는 컴컴한 산에 몰래 패션쇼를 하다 들켜버린 것이 너무 잘 됐다는 듯이 노랗게 노랗게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 자루는 주머니에서 곧게 10∼20cm의 높이로 뻗어 나오고 순백색이며 속이 비어 있고 수많은 다각형의 소실(小室)이 만들어 진다. 갓은 주름잡힌 삿갓 모양을 이루고 강한 냄새가 나는 올리브색·암갈색의 점액 포자로 뒤덮인다.
ⓒ 권용숙
어릴 때 흙벽에 걸어두었던 짚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망태기 닮은 망태버섯의 자태에 반해 '천마'가 닮긴 까만봉지를 옆에 내려놓은 것을 잊어버렸다. 한뼘도 넘을 만치 큰 망태버섯, 독버섯인 줄 알고 노란 망사를 한번 살짝 만져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망태버섯은 식용으로 중국에선 고급요리에 쓰인다고 하는데, 화려하고 예쁜 버섯은 다 독버섯이려니 한 나는 따지 않고 보기만 했다.

▲ 장마철에서 가을에 걸쳐 주로 대나무 숲이나 잡목림 등의 지상에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땅속에 지름 3∼5cm의 백색 뱀알 모양의 덩어리가 생기고 밑부분에 균사속이 뿌리같이 붙어 있으며 점차 위쪽 부분이 터지면서 버섯이 솟아 나온다.
ⓒ 권용숙
망토에 감싸인 버섯처럼 내 마음도 잠시 망토에 가려졌었나보다. 산을 내려와 손을 보니 '천마'를 넣어 덜렁덜렁 들고 다녔던 까만 봉지가 보이지 않는다. "친구야~ '천마'를 잃어버렸다. 아마도 망태버섯 사진을 찍으며 놓고 온 것 같다"고 했더니 다시 산에 가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한 뿌리든 두 뿌리든 '천마'를 캐러 왔으니 찾아가야겠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내려온 길 그대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올라갔다. 내려왔다 올라가는 산행은 두 배로 힘이 든다. 내 예감대로 노란 망태버섯 옆에 천마가 든 까만 봉지가 놓여 있었다. 그만큼 망태버섯의 노란 망토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고도 남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다시 찾은 '천마' 한 뿌리를 꼭 쥐고 산을 내려왔다. 오늘만큼은 아버지에게 이 큰딸의 정성이 전해졌겠지. 가끔은 내리는 비를 맞아도 싫지가 않아, 후련하고 시원함까지 느껴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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