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하나동물병원 원장

“한 번, 두 번, 백 번을 생각해보고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있으면 키우세요. 금방 쓰고 버리는 물건도 고심해서 구입하는데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충동적으로 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애완견을 키울 자격이 있는 거예요.”

▲ 김기영 하나동물병원 원장
김기영 원장(56·하나동물병원)은 갈수록 버려진 개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애완견을 키우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책임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시청의 위탁으로 유기견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했나” 종종 후회를 한다.

“하루 종일 저렇게 짖어대니 일단 시끄럽잖아요. 계속 돌봐야하고 손이 많이 가니까 신경쓰이구요.”

유기견을 돌보는 일이 번거롭다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깊숙이 대화를 하다보니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주인에게 버려진 것도 불쌍한데 유기견은 대부분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 유기견을 책임져야 하는 시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유도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한 개들만이라도 분양을 시켜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작자가 나타나지 않아 이마저 쉽지가 않다.

한때는 버려진 개들을 모아 ‘고아원’을 차리려 했던 김 원장이었으나 이제는 유기견을 대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파 그 일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2년 전 처인구 남동에 병원을 열면서 유기견을 맡기 시작했다는 그는 작년 한 해 동안만 180마리의 유기견을 돌봤다. 같은 시기에 이 병원을 포함, 용인시 3개 동물병원에 보내진 유기견만 600여 마리. 시설이 포화상태여서 올해는 유기견을 책임지는 곳이 8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버려진 개들은 그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 오는 개들은 다리를 절룩거리든지 병에 걸렸든지 대부분 온전치 못해요. 그리고 건강한 개라 할지라도 늙어서 귀여운 맛이 없고 밥 많이 먹는다고 버림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뿐 아니에요. 유기견을 키우겠다고 해서 줬는데 그 개가 또 버려져 병원에 다시 들어오는 사례도 있어요.”

이유야 어찌됐든 몇 달이고 돌보다 정든 개를 안락사 시킬 때만큼 그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일도 없다.

정을 모질게 떼지 못해 여러 마리의 유기견을 집에 데려다 키우기도 했다.

“그 중에 시추 종류인데 아주 못생긴 개가 있었어요. 1년 넘게 집에서 키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가버렸더라구. 한 번 버림받은 애들은 쉽게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아요. 그 마루 놈이 지금도 눈에 밟히네요.”

▲ 하나동물병원에서 돌보고 있는 유기견들. 현재 10마리가 보호되고 있다.
# 작년 한해 180마리 유기견 돌봐

김기영 원장은 애견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맞는 애견문화와 제도 역시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법제화가 논의되고 있는 애완견 사육자 실명제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개의 몸속에 주인의 실명이 새겨진 전자칩을 부착하도록 의무화해야 돼요. 단순히 귀엽다고, 애완견 키우기가 유행한다고 무턱대고 키웠다가 버리면 결국 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꼴이 되고 마는 거예요.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들 생각하는지…”

그는 경기침체와 유기견의 수가 비례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개 키우는 것이 부담이 돼 몰래 내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최근 들어 유기견이 급증하는 현실을 보며 경기침체를 체감하게 된단다.

그는 먼저 개 소유자의 책임의식이 강화되는 애견문화 정착과 함께 늘어나는 유기견에 대해 시에서 개별 동물병원에 위탁할 게 아니라 유기견보호시설을 마련,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기견보호센터가 세워지면 내가 거기 들어가 일해야 할 거 같아요. 내가 맡아야지 뭐. 누가 그걸 하려고 하겠어.”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증(?)을 지니고 있는 김기영 원장, 그는 어쩌면 수의사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 구제역 최초 발견, 피해 최소화

78년부터 수의사의 길에 접어든 그는 주로 소와 돼지 같은 덩치가 큰 가축을 상대해 왔다.

지금도 가축방역 질병예방 치료 등 축사를 방문하는 외래진료가 잦다.

그는 사실 용인의 크고 작은 가축질병 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산증인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00년 발생한 구제역은 김 원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남사의 한 농가에서 그가 구제역을 최초로 발견, 발 빠르게 대처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 다행히 발생농가 한 곳만 피해를 입었을 뿐 구제역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만약 조기발견하지 못해 방치해 두었거나 미비하게 대처했더라면 인근 농가에까지 전염돼 최소 100억원 이상 손실을 가져올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2년 후 안성에서부터 확산된 구제역은 상황이 달랐다. 백암 원삼지역으로 까지 번진 구제역으로 돼지만 5만마리 이상 살처분, 축사농가에 큰 손실을 입히며 전국을 전염병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김 원장을 비롯한 수의사들은 몇 달간 밤낮 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수습에 나서야 했다.

“소 말 개 돼지 사슴 등 웬만한 가축은 다 손대봤지요. 구제역뿐만 아니라 콜레라 오제스키 등 아무튼 용인에서 발병한 가축병에 거의 다 관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가 최근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방과 진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광우병. 선진국의 축산법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선진국 가축병인 광우병 발생이 크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이 가축질병만 다루는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염병 예방의 첨병자라 보시면 돼요. 가축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전염병을 수의사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수의사들이 생명공학 분야에도 많이 진출하게 됐구요. 파스퇴르도 수의사 출신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수의사를 생명을 다루는 종합예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병원에서 하루 종일 짖어대고 있는 버려진 개들이나 소나 사람이나 그에겐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생명이 있는 한 돌봐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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