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백옥쌀 씨름단 윤문노 감독

▲ 용인백옥쌀 씨름단 윤문노 감독
지난 14일 강원도 횡성. 이곳에서는 12일부터 ‘대통령배 2005 전국씨름왕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용인에서 고속도로로 1시간 거리를 달려 도착한 횡성에서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이번호 삶의 주인공 윤문노씨(52·국민생활체육 용인시 씨름연합회 회장, 용인시 씨름협회 전무)를 찾아 나선 길이다. 20년 용인씨름 역사를 통째로 집어삼킨 산증인 윤씨. 지금도 그가 있는 곳은 모래판이다. 윤씨는 세월의 풍파와 무관하게 여느 때 같이 한 치 양보 없는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모래판에 서 있다.

윤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횡성군이 인상적이다. 중앙고속도로 횡성 나들목에서 한적한 시골도로 따라 횡성군 시내까지 가는 길에 섬강을 둘러싼 경관이 일품이다. 횡성공설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이 함께 있는 시가지는 아마도 ‘용인군’ 시절 모습을 기억하게 해줬다.

전국에 장사들이 횡성에 모여 들었으니, 군민들 모두가 모여든 품새다. 중앙에 모래판이 세워진 실내체육관이 떠드는 아이들부터 지팡이 짚은 노인들까지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뚝심 있게 딛고 선 당당한 풍채의 윤씨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래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선수를 꼼꼼히 살피고 있는 윤씨에게서 일가를 이뤄낸 용인씨름계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니 낯선 횡성에서의 만난 윤씨가 자랑스러웠다.

윤씨는 생활체육 용인시 씨름연합회 회장이고 용인시 씨름협회 전무이사다. 지금은 용인시 백옥쌀씨름단 감독직도 맡고 있다. 윤씨는 “백옥쌀씨름단을 전국 최고 씨름단으로 만들어서 용인백옥쌀 브랜드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하며 감독직을 씨름계에서 그가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소임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씨름단 운영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으니, 다른 직함보다 백옥쌀씨름단 감독으로 불리길 바란다.

윤감독은 양지면 제일리가 고향이다. 제일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수원중학교와 영등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시절 윤 감독의 집은 양지에서 스무마지기 농사를 지었을 정도로 촌에서도 부유한 편이었으니, 윤 감독을 용인 밖으로 유학을 보냈다.

윤 감독은 어릴적부터 힘이 장사였다. 체계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니 학교에서 씨름도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가르쳐 주던 시절 이야기다. 또 마을 장이 서면 씨름대회가 열려 동네 장사들이 힘겨루기 하고 잔치가 벌어지던 시절 이야기다. 윤감독은 무엇보다 운동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과 타지에서 생활한 유학시절 윤감독는 한시도 운동과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다. 장남에게 공부하기를 기대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길이었지만, 타고난 장사였던 윤감독은 씨름을 하고 유도를 배우는 일에 더 깊은 애정을 느꼈다.

#용인씨름의 산증인 「뚝심의 사나이」

윤감독의 삶을 서술하는 것은 또 용인시 씨름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감독이 본격적으로 씨름을 시작한 것이 용인시 씨름의 역사적 출발과 함께 였으니 그 자체가 산증인이고 그 역사를 통째로 담고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윤 감독이 씨름을 시작한 것은 89년도다. 당시는 한창 민속씨름의 인기가 높을 때로, 이만기 이준희 강호동 등 걸출한 스타들도 즐비했던 시절이다. 윤감독은 89년 대통령배씨름대회 용인시 장년부 대표로 출전해 경기도 대표로 본선경기를 한 것을 본격적인 씨름계 활동이라고 말했다.

“당시 시/군 별로 예선하고 경기도 대표까지 뽑아서 전국대회 출전하는 겁니다. 그 때 생각하면 용인도 대표선수 선발하는 체계가 있지도 않았지. 각 마을마다 그저 민속놀이로 씨름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보면 이만기, 이준희도 다 우리 후배예요. 우리야 말로 농사지으며 민속씨름을 하던 토속 씨름인들 이었으니까”

91년 윤감독과 동네 씨름꾼들이 모여서 용인시 씨름협회를 만들었다. 누가 만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후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씨름을 좋아하는 동네 씨름꾼들이 자발적인 회비를 모아 협회를 만든 것인데, 그 목적은 꿈나무를 만드는 것이었다.

“91년 씨름협회 만들 때는 장평초하고 백암중에 씨름부가 있었어요. 또 90년에 창단시킨 양지초도 있었고. 나 어릴 때처럼 운동 좋아해도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없었던 시절은 이미 아니었거든. 이제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운동 수업 받고 운동선수로 성공도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니까, 운동 좋아하는 우리는 그네들 지원해주면 되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당시 행정기관이나 학교가 아이들 운동시키고 지원해줄 수 있을 만큼 여유있던 시절도 아니였고”

그래서 동네 씨름꾼들이 모이고 힘을 모아서 꿈나무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는 최초의 초교 씨름부인 정평초 씨름부가 없어졌지만, 양지초를 비롯해 용인초와 왕산초, 백암초에 씨름부를 창단시켰다. 중학교는 백암중이 있었고, 고등학교는 용인정보산업고에 씨름부가 창단됐다. 용인정보산업고 씨름부는 이후 용인고로 이전했다.

현재 용인에는 4개 초교 씨름부와 중고교에 각 1개 씨름부, 용인대 씨름학과가 있고, 용인백옥쌀 씨름단이라는 실업팀이 있다. 명실상부 완벽한 씨름 체계를 갖춘 것이다. 지금은 용인시와 교육청, 각급 학교와 학부모, 용인시 씨름협회가 씨름 꿈나무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체계를 만들기까지 씨름협회의 역할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름협회 만들고, 누가 지원을 해주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십시일반 정성 모아서 아이들 지원하고 씨름부 창단시키려고 학교일일이 찾아다니는 일을 했습니다. 씨름협회 회원들이 학생들하고 함께 전지훈려도 갔어요. 초창기 백암중 학생들과 함께 강원도로 전지훈련을 가서 함께 뒹굴던 기억도 납니다.”

지난해 1월 1일 창단된 백옥쌀씨름단은 윤감독과 용인시 씨름인들의 숙원이었다. 윤감독은 백옥쌀씨름단 창단에 대해 시민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윤감독은 백옥쌀씨름단이 씨름인들의 숙원만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목적이 용인에서 생산된 백옥쌀을 전국에 널리 홍보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백옥쌀씨름단 선수들이 경기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하더라도 반드시 용인백옥쌀 마크가 새겨진 운동복을 입게 한다.

#아들도 대이어 용인대서 씨름전공

윤감독의 성품은 뚝심의 사나이와 같다. 윤감독은 ‘씨름에 미친 사람’이다. 그의 부인도 그를 씨름에 빼앗겼다고 생각할 정도다. “가족한테는 0점 남편이고 아버지인 셈이죠. 온통 씨름을 위해 몸을 바치고, 시간을 바쳤으니까.. 그만큼 가족에게 잘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내가 농사꾼인데 부모가 농사지으라고 물려준 땅도 씨름을 위해서 팔아야할 때 팔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도 씨름과 함께한 나의 삶을 깊이 이해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줍니다.”
윤 감독은 양지 향교 청년회장이자 장의다. 89년에 양지면에서 양지면 씨름협회를 만들고 양지초등학교에 씨름부를 만든 것도 윤감독이다. 그의 아들 윤동진군은 아버지를 이어 용인대에서 씨름을 전공하고 있다. 윤 감독은 최근에 용인백옥쌀씨름단 소속 김진우 선수 결혼식에 주례를 섰다. 김 선수는 장평초 출신으로 백암중과 용인고를 나온 용인이 길러낸, 또 윤감독이 길러낸 선수다. 스승이 제자 결혹식 주례를 선 것이니 그만큼 감회도 남달랐다고 한다.

“김 선수는 용인이 자랑할 수 있는 씨름 선수입니다. 앞으로 김 선수 같은 씨름선수가 용인에서 많이 배출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 윤감독, 2006년은 윤감독이 백옥쌀씨름단을 명실상부 전국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도약시킬 해다. 농민들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농사꾼인 윤감독이 씨름단을 통해 용인백옥쌀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윤감독은 오늘도 인생이라는 모래판 위에 타고난 뚝심으로 뒤돌아 후회 없는 한 판 승부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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