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칼럼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 현판을 떼어낸 양수철씨에 대한 구속 영장이 집행됐다. 떳떳하게 자신의 행위를 밝히는 사람이 도주할 리도 없거니와 현판을 떼낸 것이 사회적 논란은 있을지언정 중한 범죄 행위도 아닌데 구속을 시키고 보는 것은,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검찰이나 구속을 허가한 법원이나 둘 다 그 처사가 납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혹시 검찰이나 법원이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밝힌 청와대나 수백명이 모여 양씨의 구속을 요구했던 파평 윤씨 대종회 눈치를 보아 불구속에서 구속으로 선회한 것이라면, 검찰이나 법원은 국민적 믿음을 잃을 처사를 한 것이다.

납득되지 않는 구속 수감

파평 윤씨 대종회의 규탄 집회에서 나온 말들을 보니 양수철씨는 졸지에 ‘민족정기를 훼손한 야만적 테러범이며 악질분자’가 되었다. 하지만 민족정기를 훼손한 야만적 처사는 따로 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일제의 군인 우두머리 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사당 머리에 그 일제의 장교로서 일제에 충실히 봉사했던 박정희가 쓴 글씨가 걸려 있었던 가당찮은 처사가 진정 규탄 받아야 할 그것이었다.

이번 처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고 난 후 1932년 5월 1일 <조선일보 designtimesp=31791>에 보도된 ‘범인 윤봉길 현장에서 체포’라는 기사 제목이다. 그렇다. 윤봉길 의사는 ‘민족신문’에서조차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었던 것이다. 법의 이름이라는 것은 이렇듯 자의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제 군인의 장교로 복무한 대표적 친일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감히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사당 머리에 글씨를 쓴 것도 용납 못할 일이긴 하나 그가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26년, 광복 60년을 맞는 오늘날까지 대표적 친일파가 독립투사의 사당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은 야만의 역사 그 자체다.

양수철씨가 현판을 부숴버리기 전에 국가가 앞장서서 충의사에서 친일파의 글씨를 새긴 현판을 철거했어야 했으며, 윤봉길 의사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파평 윤씨 종친회가 앞장서서 현판 철거를 요구했어야 했다. 어찌 독립투사의 사당에서 친일파의 글씨를 지키고자 난리를 친단 말인가?

일제시대 때 대한독립을 위한 목숨을 건 의거를 성공했지만 일제에 의해 ‘범인’으로 지칭되어 총살 당해 순국한 윤봉길 의사는 자신의 사당에서 친일파의 현판을 떼어낸 양수철씨가 ‘야만적 악질분자'로 규탄 받고 흡사 중범죄자인 양 구속 수감된 현실을 보며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파평 윤씨 후예들은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이유가 친일파 박정희가 만들어준 사당 보존에 있는가, 일제에 항거한 그의 독립 투쟁의 의기에 있는가.

윤봉길 의사를 ‘범인'으로 만든 사람들이 광복 60년을 맞은 오늘날에도 우리 민족 속에 남아 있다. ‘일제의 지배가 우리 민족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하는 한승조씨나, 존재하지도 않은 ‘친북’을 들어 민족 반역 무리인 친일파를 옹호하는 조갑제씨 등은 아마도 민족정기를 세우려 했던 윤봉길 의사의 의거보다 박정희가 쓴 현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민족정기보다 박정희 현판이 더 중요

논의의 본질은 과연 친일파가 쓴 글씨의 현판이 독립투사의 사당에 걸려 있는 것이 타당한가에 모아져야 한다. 양수철씨는 현판 철거와 파손에 대해서는 처벌을 각오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조선일보 designtimesp=31804>처럼 “코드 광기의 끝은 과연 어디?”라던가 <동아일보 designtimesp=31805>가 ‘정권사관’의 ‘문화테러'라고 하는 것처럼 정치적 문제로 비약시켜 본질을 엉뚱하게 호도할 일은 아니다.

아직도 친일파 전직 대통령을 숭상하고, 친일했던 언론이나 권력자들이 오히려 행세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막대한 재산을 되찾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사당에서 친일파 현판을 떼어내고자 했던 양수철씨가 오히려 가중처벌 받는 처사를 보고 ‘범인’ 윤봉길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과거 윤봉길 의사를 ‘범인’으로 만들었던 그 사법부가 아니라면, 양수철씨를 단지 현판 하나 훼손한 그 행위 자체만으로 실정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랬더라도 과연 구속까지 시켰을까? 사당에서 친일파의 글씨를 없애준 사람을 ‘중죄인’으로 만들고 다시 친일파의 글씨를 복원하겠다니, 윤봉길 의사가 지하에서 통곡한다.

양수철씨를 즉각 구속에서 석방하고, 충의사 현판은 친일에서 깨끗한 사람의 글씨로 다시 달아야 한다. 그것이 윤봉길 의사의 민족혼에 합당한 일이다.

/고태진(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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