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눈으로만 보라고 할 수 없었다. 생태체험을 하며 직접 만져보고 느껴봐야 더 기억에 남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필자에겐 너무 사랑스러운 무당거미
필자에겐 너무 사랑스러운 무당거미

그러나 낯선 인간의 손길이 좋을 리 없는, 오히려 큰 두려움을 느낄 자연의 생명들에겐 너무나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고 했다. 그래서 잘 만지는 방법으로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덜 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도롱뇽, 개구리, 지렁이, 달팽이는 피부로 호흡하기에 몸에서 끈적한 액체를 내뿜어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다. 그래야 피부세포도 보호하고 공기 중 산소가 피부를 감싸고 있는 물에 녹아 호흡이 수월해진다.

온도에 민감하기에 사람 손의 온기가 그들에겐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만져야 할 땐 꼭 손을 차갑게 하고, 물기 있는 손으로 만지도록 한다. 그럴 수 없을 땐 관찰통에 넣거나, 나뭇잎을 이용해 감싸거나 자연 상태로 두고 관찰하도록 한다.

나비나 나방, 잠자리 같은 날개가 연약한 곤충은 잡을 때 날개를 조심하도록 하고, 메뚜기, 방아깨비, 사마귀 같은 곤충을 잡을 땐 다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들의 다리는 너무나 잘 떼어진다. 다리가 떨어진 메뚜기는 잘 뛰어다닐 수 없어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촉촉한 산민달팽이
촉촉한 산민달팽이

독거미, 독버섯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거미와 버섯 앞에 ‘독’이란 말을 붙이고 두려워해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독거미가 없다. 그저 자신들이 잡아먹는 작은 곤충들을 잠시 마비시키고 꼼짝 못하게 하는 정도의 약한 독을 갖고 있을 뿐이다. 물려도 살짝 따갑기만 할 뿐, 그 독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미를 보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독거미에요?”라고 묻는다.

요즘 무당거미가 눈에 잘 띄다 보니 거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거미줄로 만들어진 거미집에 있는 무당거미를 떼어내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집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한 것이 거미에게 살짝 자극을 주는 것이다. 가장자리로 피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뭇가지로 유인해 오르게 하면 쉽게 거미를 데려올 수 있다.

거미를 가까이에서 본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떤다. 눈에 익어 익숙해지면 손에 올려준다. 이때 절대 손가락을 구부리지 않도록 조심시킨다. 손가락 사이에 다리가 끼거나 아이가 놀라 손가락을 접으면 거미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손등에 올려주면 이 문제가 해결되고, 거미의 다리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끝나면 다시 거미줄 집으로 무사히 보내준다. 미안하다. 긴장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까이 거미를 보여주고, 살짝 손에라도 올려주면 반응은 뜨겁다.

거미와 교감을 나눈 친구들은 이후로 거미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거미가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친구까지 생긴다. 아이들은 독거미란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먹지도 않고 독도 없는 그러나 너무 예쁜 노랑망태버섯.
먹지도 않고 독도 없는 그러나 너무 예쁜 노랑망태버섯.

버섯을 대하는 태도는 어른과 아이가 좀 다르다. 숲에서 버섯을 만나면 어른들은 “먹는 버섯인가요?”라고 묻고, 아이들은 자기네가 먼저 독버섯이라며 발로 짓밟아버리기 일쑤다. 그럴 땐 버섯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태계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고마움을 느끼도록 해준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만나는 버섯마다 “고맙다” 인사한다.

대부분의 버섯은 먹을 수 없는 버섯들이다. 독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먹을 수 있다고 확인된 버섯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버섯은 되도록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본다. 독이 있건 없건, 먹을 수 있건 없건 상관없이 버섯 자체를 생명으로 봐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색감과 모양이 얼마나 다양하고 예쁜지 필자는 버섯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가끔 숲이나 들에 가면 양적으로 만족을 느끼며 채집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옆에 부모로 보이는 보호자 어른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미 채집통엔 한가득 들어있는데 채집행위의 재미를 위해 가만히 놔두거나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러는 사이 작은 채집통 안에서 생명을 잃은 개체까지 생겨나고, 간신히 살아 있는 개체는 집으로 가져간다. 키우다가 싫증나거나 죽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마치 쓰레기처럼. 그저 아이들의 호기심이나 학구열을 채워주는 재료일 뿐이다. 그러나 마치 길 가다가 주운 주인 없는 물건인 듯, 장난감처럼 소유물처럼 함부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적인 생명이다.

생태체험은 관찰하며 더 자세히 알고 친밀감을 쌓게 되어 결국 사랑하고 보호하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게 목적이다. 가깝되 조심스럽게 오래오래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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