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마을문화 만들기 '다들'

요즘 시대는 마을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이라고 한 까닭은, 한동안 마을이라는 이름은 도시에서 추방당하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논밭과 함께, 당산나무와 마당이나 골목, 그 골목 어귀에 어김없이 놓였던 평상과 구멍가게, 바닥에 그려진 오징어달구지 놀이의 흔적 등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없이 우리는 어딘가 모자란 것 같고, 어쩐지 온전하게 살 수 없었던 거여서, 결국 마을은 끊임없이 자꾸 소환되고 있습니다. 마을은 때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쓰면서, 작은도서관을 같이 드나들면서, 주민자치센터에서 같이 줌바 춤을 추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늘 같은 시간에 마주하면서, 아이를 같은 학교에 보내면서, 우리 밀과 식물성 재료를 쓰며 위장과 지구를 덜 괴롭히는 빵집 단골이 되면서, 프랜차이즈 매장 말고 동네 가게를 이용하면서 만들어집니다.

그 이름과 모습이 이토록 크고 또 작게 변주되면서, 도시에 사는 우리 곁에 안전망으로, 온기로, 다정함으로, 숨구멍으로 슬그머니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그 경험이 좋으면 좋을수록,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사람들은 마을 일을 기꺼이 하게 됩니다. 너른 디지털 세상에서 한껏 구석진 곳으로 클릭을 거듭해 들어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필자는 마을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직도 마을보다 한 사람이라는 감각이 더 많이 발달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좋고 소중한 마을 일이 늘어나고 잦아지고 밀도를 더해가는 시절에, 마을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 또한 잘 진행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가 하는 일은 기록관리입니다. 한 사람이, 한 마을이 기록을 잘 생산하고, 관리하고, 보존·활용하고, 또 잘 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지요. 수지구 동천동에서 핑계부엌이라는 동네자립경제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핑계부엌은 서울로 혹은 더 먼 데로 돈 벌러 가지 않고 동네 안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그 일로 빚고 짓고 만든 작품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돕는 경제지원 플랫폼입니다.

아키비스트이자 핑계대장으로서, 어쩌다 보니 기록과 마을에 대한 감각이 동시에 생겨 버린 덕분에 ‘마을 일’보다 ‘마을을 기록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립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8월 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주관하는 ‘마을아카이브의 발견과 상상-내가 사는 곳의 목격자가 되는 법’이라는 강의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마을 기록 활동에 진심인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기흥구 신갈동에서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 개선할 것들을 찾아 기록하려고 하는 송인아씨, 동백동에 있는 저수지 둘레를 산책로로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만난 갈등을 잘 해결하고 싶어진 김현주씨, 영덕동에서 고운 우리 옷을 지으면서 마을에 전통을 알리고 싶은 배성주씨, 고기동에서 어린이들이 마을 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고 그 과정을 잡지로 잘 엮어 주고 싶은 김미선씨, 동천동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편집자로 일하다 잠시 쉬면서 두 경험을 접목해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는 박형영씨,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마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에 힘쓰고 있는 유증종씨, 상하동에서 마을교사로 활동하면서 교육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는 한유경씨, 기록을 좋아하고 처인구 마평동에서 기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고영신씨, 역북동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려는데, 그전에 기록에 대해서 공부해 두고 싶은 임수미씨 등 하나같이 마을에서 신나게 일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일하면서 마을기록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마을 일을 그냥 하기만 하는 것은, 마치 내 생각과 마음을 머릿속과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하는 일과 같습니다. 마을 일을 하면서 썼던 기획서, 회의록, 찍은 사진을 컴퓨터 하드, 내 폰에만 저장해 두는 것은 마치 내 이야기를 일기장에만 써두는 일과 같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 그리고 그것들을 일기장에 꾹 눌러쓰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거나, 내 뜻을 관철시키고 싶거나, 내 말에 대답을 듣고 싶거나, 내 행동에 참여를 끌어내고 싶다면 내 안에 묻어두거나 일기장에만 끄적일 것이 아니라 생각을 끄집어내 언어로 발화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잘 기록하고 공유해서, 누가 결합해도, 언제 결합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같은 양의 정보와 같은 크기의 열정, 같은 수준의 역량을 공유하며 함께 하는 일에서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기록은 그 과제를 잘해낼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늘 숨가쁘게 돌아가고, 사람이 모자라고, 예상했던 범위를 웃도는 마을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잘 기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딱 세 가지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마을 일의 범위 안에 ‘기록하는 일’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송추향(한사람연구소 소장·핑계부엌 핑계대장)
송추향(한사람연구소 소장·핑계부엌 핑계대장)

마을 일을 하는 시간 안에 ‘기록하는 시간’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마을 일을 펼치는 예산 안에 기록하는 돈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어떤 일을 도모하든, 그 일과 일을 기록하는 일을 동시에 설계해 가는 것. 이런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귀한 일들이 사라지지 않고 널리 또 길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을에 ‘일’과 ‘기록하는 일’이 고르게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