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눈이 내렸다. 첫눈의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벌써 12월이다. 일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기도 해야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럴 때 따뜻한 호빵에 커피 한잔이 더 간절하다.

길을 가다 우연히 사철나무의 열매를 봤다. 연둣빛 꽃이 피는 사철나무는 꽃피는 유월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잎이 푸르고 윤이 나지만 시기상 유월은 모든 식물들이 한창 자기만의 푸르름을 과시할 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엽이 지고 쓸쓸해진 거리에 잎을 달고 있는 사철나무는 특별하다. 침엽수이면서 항상 푸른 나무는 흔히 소나무, 잣나무 등을 알고 있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지방이 아닌 경기도에서 잎이 넓은 상록수로 흔히 알만한 나무는 사철나무가 유일하다. 거기에 노란 열매 껍질이 네 조각으로 벌어지고 빨간 씨앗이 드러나 있으니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열매와 줄기를 이용해 집을 꾸며도 멋지다.

한겨울 먹을 것이 부족한 새들에게도 좋은 먹이일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식물 중에 ‘노박덩굴’이란 나무가 있다. 이 나무도 잎은 지지만 사철나무와 비슷한 예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겨울에 참 볼만하다. 겨울에 열매로 시선을 잡는 식물들이 생각지도 않게 많다. 작살나무의 보랏빛 구슬열매, 모과나무의 노랗고 큰 열매, 산수유의 주렁주렁 빨간 열매, 마가목의 탐스러운 주황색 열매, 겨우살이의 빨갛거나 노란 열매다발, 생각해보면 많은 식물들이 겨울에도 동물들이 봐주길 기다린다. 열매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 벌써 겨울눈은 영글었다. 목련이나 동백의 꽃눈은 이미 꽃잎을 품고 있으니 계절이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독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철나무가 있다. 수령이 100년이라고 하니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수관(잎이 풍성한 부분) 둘레가 7m인 그 풍채를 감히 짐작해 본다. 2007년에 사철나무의 존재를 확인했고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당연하게 말하지만 실제로 독도에 어떤 식물이 살고 있는지를 2007년에서야 제대로 파악했다하니 많이 부끄럽다. 독도의 사철나무는 제주도, 여수에 있는 사철나무가 옮겨진 것이라 한다. 씨앗이 바다를 건넌 것인지, 새가 옮겨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자리를 잡고 살아있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철나무는 우리나라 바닷가를 따라 비교적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공해에도 무척 강해 도시의 조경수로 많이 심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지금 낙엽이 지지 않고, 잎의 길이가 5cm가량에 둥근 모양을 한 두꺼운 잎을 달고 있다면 사철나무이다. 가지치기를 할 때면 저렇게 막무가내로 잘라내도 될까 싶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튼튼하고 가죽질이라 잎의 쳐짐도 없고 낙엽도 쉽게 지지 않으니, 필자의 생각과 상관없이 잘린 모양 그대로 잘도 산다.

대부분의 식물은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춰주면 대부분 꺾꽂이가 된다. 사철나무는 꺾꽂이가 잘 되는 식물이다. 가지치기하고 남겨진 가지를 주워다가 잘 키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노란 열매 껍질이 네 조각으로 벌어지고 촛불 같은 빨간 씨앗이 드러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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