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김밥가게 부부 이두성·왕안숙씨

▲ 이두성, 왕안숙 부부가 김밥을 말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장단을 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총각과 소리꾼 아버지 손에 큰 처녀가 정읍에서 만났다. 서로에게 반한 둘은 가슴 설레는 나날을 보내며 그렇게 부부가 돼 알콩달콩 살고 있다.

20년 후, 이두성(49) 왕안숙(46)씨 부부(구성읍 청덕리)는 같이 민요를 부르고 매일 김밥을 싼다. 그리고 매번 이들 가족은 용인의 소외시설을 다니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씨는 10년 전, 용인에 와 한우리풍물단을 조직하고 민예총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을 활발하게 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부인 왕씨도 거들었다. 용인가무악단 단장으로 있는 왕씨도 남편과 함께 노인병원을 비롯해 연꽃마을, 세광정신요양원 등을 찾았다.

“매월 다녀요. 같이 다니면 다들 부러워하죠.” 이들 부부 사랑엔 국악이 실린다.

지치고 서로 티격태격 다투었을 때, 남편 장단에 맞춰 아내가 노랫가락 한번 뽑으면 쌓인 감정이 싹 사라진다.

두 아들도 이씨 부부의 활력소다. 큰애 정민(21)이는 중앙대 국악대서 아쟁을 전공하고 막내 정호는 올해 국악예고에 들어간다.

“부모가 하니까 가까이서 접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이들은 두 아들 얼굴만 봐도 든든한지 지긋이 웃는다.

“우리는 전공자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얘들이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국가에서 필요한 예술인이 되면 좋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지 않지만 기대는 가져본다.

▲ 왕안숙씨
이씨 가족이 봉사활동을 나가면 ‘가족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고…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이씨 가족의 중요한 사랑법이다.

“하루 꼬박 장사하느라 보고 싶어도 제대로 못 보지만 서로 눈 마주치고 국악얘기 나누면 저절로 대화가 되죠.” 공연할 때 미리 프로그램을 짜서 조언을 하고 마지막에 평가까지 한다.

봉사를 하면서 가족이 정을 나눈다는 이씨 가족은 어디든 필요해서 불러주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모두 좋아하는 국악을 한 무대에서 할 수 있어 그저 행복하다. 그래서 왕씨는 몸이 고단해도 기쁘다.

이씨 부부는 지난 해 4월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 집. 처음엔 손님이 많았지만 요즈음 비슷한 업종이 곳곳에 들어서 이들이 직접 뛰지 않으면 돈 벌기가 쉽지 않다.

“불경기에 장사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죠.” 부부는 서로 다독인다.

이씨와 왕씨는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한다. 캄캄한 새벽에 얼굴 한 번 보고 집에 들어가기 바쁘다. 왕씨는 연애시절 애틋했던 마음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나. “20년 넘게 산 남편이 보고 싶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이씨는 아내에게 요즈음처럼 일을 시키는 게 안타깝고 미안하다.

“목이 안 풀리는 것 보면 마음이 아프죠.”이씨는 아내의 노랫가락이 좋다. 집안, 일터 분위기가 밝아진다. 지친 삶의 고단함을 아내가 씻어준다.

왕씨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 늘 변함없는 남편 모습이 불만이었지만 이제는 ‘그래서 산다’는 것.

“서로 다른 둘이 맞춰가면서 채워주면 되죠. 부부가 별건가요.”

국악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꿈을 일궈가는 이씨 부부.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희망인 두 사람이다.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웃고 울며 살아갈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새끼들과 함께 노래하고 장사하고.…

▲ 이두성씨
#아내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내 아내, 안숙아.

얼마 만에 당신 이름을 불러보는지.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조연으로 살아준 내 마누라 안숙아!

우리가 인연을 맺은 지 햇수로 20년이 지났군요. 당신을 만나 결혼을 해서 정민이 정호를 낳고… 우리가 함께 걸어오면서 숱한 일들을 같이 겪었네요.

참 많이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생생하오.

좋아도 좋다 표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따뜻하게 안아준 적 없었으니. 무뚝뚝한 놈 만나 옆에서 말없이 그저 챙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내 자신이 더 없이 나쁜놈이구만.

그런데 내가 요즈음 당신한테 더 나쁜 짓만 하는 것 같아 할 말이 없네. 남들 다 자는 시간 김밥집에 내보내 일만 시키고, 곱디고운 손 거칠어져도 로션하나 못 챙겨줬으니 얼굴을 못 들겠소. 그리고 좋아하는 국악도 맘 놓고 못하니 참…

저녁에 내가 김밥집에 가면 힘들어도 내색 않고 환하게 웃는 당신 보면 힘이나지만 여태껏 난, 나가 웃으며 당신을 대한 경우는 드문 것 같으오.

앞으로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리라.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함께 할거라는 약속도 함께 적어 보내오.

2005년 1월13일
안숙이 남편 두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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