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부자 윤석근·도환씨

▲ 이동면 송전리에 사는 집배원 부자 윤석근(왼쪽)·도환씨
“아버지가 하던 우편배달 할래?”

아버지 윤석근(70·이동면 송전리)씨 말 한 마디에 막내아들 도환(42)씨는 99년 12월, 일자리 구하기 가장 힘든 시기에 빨간 헬멧을 쓰고 큰 가방을 둘러맨 채 오토바이를 탔다. 청년실업자였던 도환씨가 송전우체국에서 당당히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 놀고 그러는데 잘 된 거지. 나가서 일하는 게 좋은 거야.”

아버지 석근씨는 막내아들 하는 일을 꼼꼼하게 챙긴다. 그 역시 27년4개월을 우체국에 몸담았던 ‘집배원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천호동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이동면 송전으로 내려와 93년 12월 송전우체국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누구보다 이 일에 있어선 전문가다. 그러니 아들 일 챙기는 것은 당연히 아버지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한 번 본 사람한테도 그저 ‘안녕하세요’하고 꼭 인사해라. 아버지도 집배원이었는데 네가 못하면 부자가 같이 욕먹는 거야.”

아버지 말이 ‘잔소리’처럼 들려서 일까. “아버지는…”도환씨는 말끝을 흐린다.

그래도 아버지 잔소리 덕에 도환씨는 이 일을 천직으로 삼았다.

“아버지 말씀 들을 때 마다 잘 했다는 생각을 해요. 이 일이 피곤하다거나 전혀 힘들지 않거든요.”

아버지 또한 직업을 잇는 막내아들이 남다르다. 칭찬 대신 충고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집배원 부자지간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이 직업은 돈을 벌어서 맛이 아니라 이웃과 만나는 정이 더 큰 것이야.”

아버지는 과거 집배원 시절을 떠올렸다.

“편지 한통 배달하려고 무릎까지 차는 눈 속을 헤치고 다녔지.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면 힘들지도 않아. 추위 녹이러 다방에 들어가면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마음이 흐뭇했거든. 지금 사람 그렇게 일시키면 못할 거야.”

“그때는 편지도 읽어주고 대신 편지도 써주고 방죽에 빠진 사람도 구해주고… 동네사람 인정에 끌려서 일하느라 할일이 많았지.”

▲ 송전우체국직원들과 함께 자리한 부자. 오른쪽부터 오현택 국장, 박영미, 윤도환, 윤석근, 신명숙, 박승관씨.
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던 그 일은 고스란히 아들 가슴으로 전해졌고 도환씨도 아버지만큼 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지금은 편지 배달 업무가 줄고 택배나 보험 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 예전처럼 사람 만날 일이 많지 않죠. 그래도 등기 등을 전달할 때 대부분이 돈 내라는 고지서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요.”

하지만 항상 밝게 인사하며 남사면 일대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도환씨. 벌써 횟수로 6년째다. 이제 동네사람들도 누구 아들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끼니 때 되면 밥을 꼭 챙겨주는 회사나 집이 있어요. 특히 전궁리 노인회관에 가면 꼭 점심을 챙겨주세요.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지요.”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기원 할 테니까 성심껏 잘하라”고 당부를 하자 도환씨는 멋쩍은 듯 헬멧만 만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며 ‘행복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는 집배원 부자 윤석근·도환씨.

“쌩~쌩”

칼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눈앞을 흐려도 도환씨 오토바이가 마을 구석구석을 힘차게 달린다.

오토바이 소리가 멀어져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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