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키워드로본용인 줌인3] 분쟁

지난 달 22일 죽전-구미동간 7미터 접속 도로가 개통됐다.

개통전 5개월 동안 7미터 구간 도로예정부지는 죽전과 구미동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로를 노려보던 전쟁터였다. 양측 주민들은 차가운 황무지에서 한치에 양보도 없는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구미동 주민들의 공사현장 점거농성이 불법이었는지 합법이었는지, 혹은 도로 접속이 불법인지 합법인지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진실 여부를 떠나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이 많은 상처와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사실 역시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앙금으로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7미터 공간 속 그들만의 전쟁. 수도권 과밀화, 난개발, 지방자치, 교통문제 등 국가적 문제를 안고 싸웠던 그들만의 전쟁이었다. 그 7미터 좁은 공간에는 거대한 두 도시가 맞닿아 있었고, 중앙정부와 서울시 경기도가 연관되어 있었으며, 거대한 공기업 한국토지공사가 당사자였다.

용인이 해결해야 할 광역도로망 문제는 죽전-구미동 접속도로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줄기인 동백-죽전, 영덕-양재간 도로는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비단 교통문제 뿐이 아니다. 다른 도시와의 분쟁이 아니더라도 내 집 앞 환경문제가 또 새로운 그들만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전쟁이 용인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새롭게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 집값. 껄끄러운 거부감

얼마 전 신봉동에서는 신설 고등학교 옹벽 문제로 주민과 교육청 직원의 간담회가 열렸다. 인도 변에 높이 10미터 수직으로 쌓아 올린 옹벽이 흉물스럽고 위험하니 설계를 변경하라는 주민들과 옹벽이 있어야만 고등학교 부지가 확보될 수 있다며 물러서지 않는 교육청 직원이 열띤 공방을 주고받았다.

논쟁이 끝날 무렵 한 주민이 ‘집값’문제를 제기했다. 흉물스럽고 위험한 옹벽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자 다른 주민들이 도리어 제지하고 나섰다. 교육청 직원도 혼잣말로 “결국 집값이 문제였다”며 씁쓸해 했다. 집값이라는 주제는 정당성이 없는 나쁜 이기주의라는 공감대가 작동한 것일까.

하지만 집값과 관련된 불안정한 소비심리나 그에 따른 문제점에 공감한다 해도 집값을 위해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무시될 수 없다. 집값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탈바꿈시키는 정책적·정서적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집값이 민감한 개인의 이익이고 보장되어야 할 소수의 권리인 것은 현실이다.

△ 지역이기주의. 과연 나쁘다 매도만 할 것인가?

죽전-구미동간 도로 분쟁에서 양측 주민들의 행동은 지역이기주의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의 지역이기주의 행동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지역이기주의가 이제 중요한 정책문제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설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성대 권해수 교수는 자신의 논문‘주민의 집단행동과 지역이기주의 극복방안’(복지행정연구 13권)에서 공식적인 주민 참여제도와 비공식적인 지역이기주의 행동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밝혔다.

지방자치제에서 주민 참여방식은 반상회, 공청회, 위원회, 민원처리제도, 국정 모니터링제도 등이 실시되고 있지만 이런 제도권 내의 참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불신을 받을 경우 필연적으로 비제도화된 행동, 즉 지역이기주의적 집단행동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중앙에 집중됐던 권력이 분권화 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혼란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역이기주의가 정당하고 보편적 현상이라는 틀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용어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지역이기주의보다 지역주의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부정적 이미지의 지역감정과 대비되는 용어로 지역의식을 정의하는데, 이는 ‘자신이 속한 지역과 지역민, 그리고 지역연고에 대한 긍정적 판단’으로 규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도 ‘지역의식에 근거해 지역이나 지연을 선호하는 합리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 정책결정과정에 불참 혹은 소외되었거나 과정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집단의 지역주의를 정책추진의 걸림돌로 볼 수만 없다. 두 집단의 지역이기주의가 충돌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느 한 쪽이 환경문제와 같은 뚜렷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대편의 현실적인 지역주의를 나쁜 님비(NIMBY)라며 매도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만큼 문제 해결은 힘들어졌다. 아무리 다수가 인정하는 가치라도 소수의 이익과 배척된다면 타협 없이 합리적 정책으로 실현될 수 없다. 소수의 가치든 다수의 가치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돕는 관용과 협상력이 필요해 졌다.

여기서 관용이 사라지면 함께 망하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된다. 관용이 빠진 협상테이블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전쟁터가 되고 결국 모두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긴다.

△  지역주의. 갈등의 목표는 윈-윈

극단적 이기주의로 서로 피해를 보는 사례는 몇몇 환경보상 문제에서 나타났었다. 아파트 안에서 두 개 단지가 피해보상 내용으로 입장 차이를 보이며 대립한 경우다.

유림동의 ㄱ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은 주변 10미터 내에 인접한 ㄴ아파트 단지와 ㄷ빌라 등이 있는 상태에서 올해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시작과 동시에 ㄴ아파트와 ㄷ빌라에서 소음과 분진의 피해를 호소했다.

이러한 환경 피해사례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매월 발행하는 보고서를 통해 유사 사례의 보상협의 내용을 공개해서 건설사와 주민들 사이의 협상 자료로 사용되게끔 하거나 위원회가 직접 유권해석으로 보상안을 결정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문제는 ㄱ아파트 건설 시행사가 인접한 ㄴ아파트의 동별·단지별로 보상협의를 진행하면서 최초 보상협의때 ㄴ아파트의 B단지를 A단지 보다 약간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보상에 제외하면서 발생했다. 시행사가 A단지만 개인보상과 공공보상을 해주자 뒤늦게 B단지가 A단지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도리어 A단지에서 B단지 보상 수준이 자신들과 동일할 경우 기존 협의를 무효화 하고 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행사가 애초부터 B단지 보상을 피하려고 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내분이 일어난 ㄴ아파트의 A단지와 B단지간 다툼을 느긋하게 지켜보면 되게 됐다.

주민들의 분열을 조장해 이득을 보려한 시행사도 괘씸하지만, 최초부터 서로 연대해 보상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분열을 자초한 주민들 역시 갈등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 시민 간 연대 필요

죽전-구미동간 도로 문제 역시 윈-윈의 분쟁을 위한 시민 간 연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용인시민연대 신진순 대표는 죽전과 구미동 주민들 사이에서 극심한 대결과 반목이 발생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용인시와 경기도, 성남시, 토지공사의 안일한 행정에 있다고 밝혔다.

성남시민단체 연대회의 이재명 운영위원장 역시 성남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도로 접속문제를 건교부 중재에 따르기로 합의함으로써 건교부의 결정에 따라 도로접속을 합법화하고 주민들의 저지활동을 불법으로 만든 것은 이대엽 성남시장이다”라고 전했다. 또 “자신의 손으로 시민들의 물리적 저지활동을 불법으로 만든 후에도 성남시장은 여전히 도로 접속이 불법이라며 ‘시장직을 걸고’, 또는 ‘칼을 들고라도’도로 접속을 막겠다고 공언했고, 주민들은 이에 고무되어 ‘시장님 힘내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며 공사를 방해하다가 결국 수십 명이 입건되고 수십 억 원이 가압류를 당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성남시의 전시행정을 비판한 것이다.

용인시민연대 신진순 대표는 이 위원장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미 지난 2003년 5월에 당시 본인이 대표로 있던 서북부시민연대가 죽전-동백간 도로의 부당성을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통해 공증 받고 용인시와 토지공사 측에 우회도로 대안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오히려 시가 시민단체에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등 무능한 행정력만 보여줬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죽전-동백간 도로가 확정되면서 죽전과 함께 동백입주예정자들에게도 구미동 접속도로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으로 전개됐다”면서 “구미동 주민은 선대안 후접속을 주장했고 죽전 주민은 선접속 후대안을 주장해 입장 차가 존재했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또 “구미동 주민들의 입장 역시 구미동 만이 아니라 분당 전체의 입장을 담고 있었다”면서 “죽전-동백간 도로가 분당에 접속될 경우 동백뿐만 아니라 용인동부권과 구성지구, 화성 신도시 주민들까지 분당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주민들 간의 입장차를 용인시나 성남시 심지어 경기도마저 책임 있게 조정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들어난 사실만 나열해도 오히려 입장차를 이용해 극한의 민-민 갈등을 조장한 의혹마저 받고 있다.

신 대표는 두 지역 주민이 각기 상반된 입장에서 지자체와 경기도만을 맹신한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자치단체라는 경계를 넘어 이웃들이 연대해서 적극적인 문제해결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해당 관청만을 쫓다가 서로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대안도로에 대해 용인과 성남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지만, 이웃 간에 높아진 마음의 벽이 정작 중요한 대안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다.

△ 연대와 상생. ‘대지산 살리기’의 교훈

지난 2001년 죽전‘대지산 살리기’ 운동은 3년간의 힘겨운 싸움을 승리로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첫 번째 성공사례로 남은 땅한평사기운동(National Trust, 자연신탁국민운동)이었다.

운동을 성공시킨 죽전 주민들의 행동은 지역이기주의의 한 형태인 명백한 루루(LULU, Locally Unwanted Land Use)였다. 하지만‘대지산 살리기’는 명확한 대상설정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운동, 나무 위 생활을 불사한 사람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평가된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환경정의시민연대는 LULU를 성공한 지역주의로 만들어냈다. 당시 택지개발을 원하던 죽전지역 원주민들과의 갈등도 슬기롭게 극복해 냈다.

당시 본지는 사설을 통해 이 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우선 어느 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상생의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중략)..., 결정의 번복이 마치 큰 행정혼란을 초래하고 행정판단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이해해 무조건 밀고 나가던 과거 당국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민들과 환경운동단체 역시 물리력을 동원한 집단시위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환경보존의 필요성을 보여줌으로서 많은 국민과 주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 갈등을 넘어 연대로

수도권 과밀화 해소는 모든 갈등 해결에 선결 대책이다. 난개발도, 반드시 서울을 가야하는 교통망 문제도 역시 서울에 집중된 경제, 사회, 문화 때문이다. 이것은 중앙정부와 국민이 해결할 몫이다.

용인 난개발의 책임을 용인시민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가능하다. 용인시민이 모든 책임을 지고 피해를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난개발의 사회적 비용을 용인 시민이 모두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주체라는 책임까지 회피할 순 없다.

영덕-양재간 도로는 제2의 7미터 분쟁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 공청회 장소에서 수지 주민과 수원·성남 주민 사이에서 마찰이 발생해 사고가 나기도 했다.

성복동에서는 취락지구 개발계획로부터 응봉산을 지켜내기 위해 주민들이 나섰고, 상현동에서는 토월약수터와 소실봉을 난개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오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정당한 지역주의다. 민과 민의 갈등이든지, 민과 관의 갈등이든지, 민과 기업간의 갈등이든지 서로의 이기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관용을 바탕으로 누가 더 많은 공감대를 설득해 내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목표는 상생이고 방법은 연대다.

용인시민연대 신진순 대표는 갈등의 해결 주체로서 시민단체의 몫에 대해“아직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 역시 민원해결을 주민 참여의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시민단체가 지역민들과 실제로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냉철하게 파악해서 합리적이고 성공 가능한 갈등해결을 제시해야 한다”말했다.

※ 지역이기주의 용어

님비 (NIMBIs, Not In My Backyard syndrome) :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이기주의적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한, 유해시설 설치를 기피하는 현상.

루루 (LULU, Locally Unwanted Land Use) : ‘지역이 원하지 않는 토지이용’님비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님비가 지역이기주의로 초래된 결과에 초점을 맞춰 부정적인 의미라면, 루루는 발생원인에 대한 이해로부터 소수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의미.

핌피 (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 핌피 현상이란 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것으로 지역이기주의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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