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고장, 김제를 추억하다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벽골제의 수문 흔적 |
ⓒ2004 서부원 |
호남 평야의 한복판인 김제 땅은 과거 서울로 올려보내는 세미(稅米)가 가장 많았던 곡창 중의 곡창이니 벽골제의 존재 자체는 너무도 당연해 보입니다. 지금은 서편 둑과 수문으로 쓰였던 흔적 몇 군데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오로지 이 저수지에 기대어 목을 축였을 너른 들판은 역시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이 고장의 상징입니다.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있는 저수지 둑 주변으로 벽골제 전시관과 볏짚 공예품을 전시한 야외 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축조될 당시의 애틋한 전설을 말해 주는 단야각과 함께 수차, 용두레 같은 벼농사에 관련된 체험 시설과 그네와 널뛰기 등의 전통 민속놀이를 위한 공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벽골제는 고대 우리 나라의 농경 문화를 보여 주는 역사 유적이라기보다는 체험 활동을 곁들일 수 있는 종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 벽골제 건너편 폐교를 활용해 개관한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
ⓒ2004 서부원 |
이웃해 있는 벽골제에 들러 황금빛 들판의 지평선이 안겨 주는 풍요로움을 가슴에 담았다면, 이곳에서는 지금으로부터 한세기 전 무능한 조정과 일제의 수탈로 인해 처절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민초들의 한(恨)을 되새기며 숙연해집니다.
곡창이었기에 일제에 의한 수탈의 마수가 가장 먼저 뻗쳐 농토 대부분을 그들에게 빼앗겼으며, 이곳에 뿌리박고 살아 왔던 수많은 김제의 백성들은 고향을 등진 채 만주로, 연해주로 떠나야 했던 뼈아픈 역사를 소설의 흔적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리랑문학관은 벽골제와 황금빛 들판이 주는 풍요로움에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김제 땅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바라보고 느끼게 해줍니다. 벽골제를 찾아 왔다면 이곳을 빠뜨리고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렵사리 김제 땅을 찾아 왔다면, 지평선만 누리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황금빛 지평선에는 서산의 해가 걸린 아득한 수평선이 제격입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 김제의 서쪽 끝에 매달린 망해사입니다.
▲ 망해사에서 내려다 본 새만금 갯벌 |
ⓒ2004 서부원 |
▲ 망해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호남 평야 |
ⓒ2004 서부원 |
이웃해 있는 군부대도, 산등성이 너머 심포항 횟집촌도 망해사처럼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매립이 끝나면 군부대는 해안 경계의 임무를 찾아, 횟집촌은 막막해질 생계를 걱정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터이니 말입니다.
▲ 망해사 아래 갯벌에서 일하고 있는 어부. 그들의 모습도 곧 사라지려나? |
ⓒ2004 서부원 |
이 가을, 김제 땅에 너른 들판의 지평선을 보러 갈 요량이라면, 호남평야의 한 복판이라 볼거리도 먹거리도 모두 차고 넘치지만 망해사만큼은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보게될 현재의 모습이 추억으로 남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4/09/21 오후 10:51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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