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 외길 신봉동 류행영씨

▲ 20년 가까이 전통한지를 제작하고 있는 류행영(72·신봉동)씨
# 2004년도 민족고유 기능전승자 선정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민족고유 기능을 보유하고 계승·발전시켜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2004년 민족고유 기능전승자’6명을 발표했다.

용인에서 20년 가까이 전통한지를 제작하고 있는 류행영(72·신봉리)씨도 이 중 한 명이다.

전통한지를 알리기 위해 핀란드 헬싱키공과대학에서 시연회(2001년)를 열고 국내에서도 개인전시회, 시연활동을 수차례 개최했다. 특히 전통한지를 보급하기 위해 졸업장·임명장 등을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전통한지를 만든 지 50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세월만큼 등도 굽고 무릎도 시리다. 하지만 그는 이 길만을 고집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는 전통한지 빛깔이 그의 외길인생에도 고스란히 물든게 아닐까.

# “개량 한지는 종이도 아닌 것이여”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만주에서 부모님을 여의고 한국에 들어오니 살 길이 막막했지. 학업을 포기하고 전북 완주 한지공장에 입사하면서부터 한지와 인연을 맺은 게 내 나이 열여덟이야.”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50년 넘게 한지를 손에서 뗀 적이 없는 류행영씨.

전통한지 장인 김종갑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아 오직 한 길 만 걸어온 그는 ‘장인’이란 말이 특별하지 않다. 늘 한지만 만들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계량한지는 종이도 아닌 것이여…”

“전통한지 가격이 높으니까 사가지도 않아. 끼니나 연명하는 수준이지 뭐.”

칠십 평생 살림집 하나 장만한 것이 고작이라며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담배 연기를 타고 천천히 피어올랐다.

“알아주는 사람 알아주고 몰라주는 사람 몰라주지. (돈을) 아껴 보려는 생각에 수입닥(닥나무는 전통한지의 주원료)을 섞어서 한지를 만든 적도 있었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

기계화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 값 싼 종이가 넘쳐나지만 오로지 전통하지 제조기술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산업인력공단도 높이 평가했다.

그가 만든 창호지 1장은 3000원. 시중에서 수입 창호지의 경우 400~500원이면 살 수 있지만 장인정신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전통한지를 이어가는 것은 접어두고 요즘은 원료 구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털어놓는다.

“국산 닥(나무)은 구하기도 어려워. 내가 젊으면 핀란드라도 가서 닥나무 키워 전통한지 만들고 심은 심정이야.”

기술이 있어도 ‘진짜 전통한지’는 구경도 못할 거라며 혀를 차는 그는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만큼 안타까움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 까지 해야지. 한국의 뿌리를 지켜야 하지 않겄어.”

그래서 그는 꿈을 키운다. ‘인간문화재’. 8월 말 실사를 받고 숨이 끊기는 그날까지 전통한지 기술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 도자기엑스포서 제작기법 시연

그는 몸이 아파도 문경, 예천, 제천 등지에 직접 내려가서 닥나무를 가져온다.

“전국을 다녀도 이런 종이 없지.” 그는 전통한지 만큼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한다.

고유한지연구소를 신봉동 살림집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이제 내년 가을이면 택지개발로 여기서 떠나 풍덕천동 작은 아파트로 옮기는 는 류씨.

그나마 송담대 제지과 교수들이 자주 찾아 온 인연 덕에 2000년 학교에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지만 닥종이(원료)를 삶을 수 없으니…이 또한 걱정이다.

“학교에서 일하면 깨끗하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드니 좋지. 그런데 지금은 학교 계단 오르기도 불편하고 폐수 관리 때문에 고민이야.”

하지만 류씨는 전통한지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한다. 최근엔 신나무에서 회색 빛깔을 추출해 베와 종이에 응용하고 있다.

“베에는 검은색을 내고 종이는 회색을 띄지. 더 중요한 사실은 색이 안 빠진다는 거야.”

전통한지에 매달린 결과다. 또 26일부터는 3일 간 이천 도자기 엑스포에 참여해 전통한지제작 기법을 직접 시연할 예정이다.

“진짜 한국 종이 보고 싶다는 외국인이 200여 명 정도 온데.” 생각만 해도 흐뭇한 그의 바람은 제지를 공부한 아들이 이 일을 물려받아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러면서 환하게 웃으며 (저 세상)갈 수 있다고.

닥나무를 옆에 두고 싶을 만큼 전통한지에 애정을 보이며 맥을 이어온 류씨. 평생을 일궈온 그의 정신이 수천년이 흘러도 한지에 깊게 배어나길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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