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오마이뉴스 박철(pakchol) 기자
▲ 아침이슬 방울이 보석처럼 빛난다.
ⓒ2004 박철
이른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숲 속에 들어가 숨을 고르고 단전(丹田)을 하면 더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숲 속에서는 더 솔직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번잡한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하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숲 속에는 사위(四圍)가 조용합니다. 그러나 조용한 중에 들려오는 소리(音)가 있습니다. 가끔 만나는 작은 소리들이 크고 웅장한 소리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 소리, 어느 집에선가 울려나오는 피아노 소리, 가는 빗방울 소리, 그런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귀를 여는 것, 그것은 바로 작은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청각의 개방(開放)입니다.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은 <작은 것일지라도>라는 곡으로 시작됩니다. 볼프의 가곡집 중, 가장 먼저 작곡된 것이 아니면서도, 이 곡이 제일 먼저 실린 까닭은, 아무리 작은 것에도 귀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곡의 내용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란 말을 했습니다.

▲ 민들레 홀씨가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2004 박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했습니다. 작다는 것 자체로써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의 삶 한가운데 숨어 있는 신비와 침묵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리는 요란스럽게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눈에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땅 속에 묻힌 보석들이 지상에 그 흔적만을 드러내듯이 ‘작은 것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요, 초월의 세계로 향하여 빛과 생명의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애절한 기도는 인간 내면의 가장 깊고 심오한 존재의 밑바닥에서 울리는 가장 낮은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이 애원성(哀願聲)이야말로 어둠 속에 잠든 삼라만상을 첫새벽의 여명(黎明)이 되살려 내듯,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나의 내면에 생명의 빛으로 쏟아 붓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20년 농촌목회를 하면서 내가 붙들어온 삶의 표지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였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끔 사진기를 들고 자연으로 나가서 내가 대하는 피사체에 나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보는 마음’을 담으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스쳐지나가는 바람 한 점이 나에겐 다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은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지 않습니다. 자연은 아무런 가식도 필요치 않습니다.

▲ 거미줄도 처음에는 한 선으로부터 시작한다.
ⓒ2004 박철
아침이면 우리 집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습니다. 까치입니다. 어느 때는 한낮에도 찾아옵니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다롱이) 집을 찾아옵니다. 개 집 앞, 다롱이 밥그릇에 남은 밥찌꺼기를 먹으러 찾아옵니다. 다롱이와 까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까치가 자기 밥을 먹어도 다롱이는 절대로 짖지 않습니다.

까치가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까치도 다롱이를 전혀 경계하지 않습니다. 다롱이가 자기 집에서 나와 서성거려도 까치는 다롱이 밥을 먹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정겨운 아침풍경인지 모릅니다. 아침에 까치들이 “까까~”하는 소리가 들리면 까치가 다롱이 집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합니다.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졌고, 없는 자는 너무 가난해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크고, 좋고,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참 많이 있습니다. 살뜰함과 사랑스러움, 고마움을 늘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 산초 씨. 기름을 짜서 먹으면 해소천식에 좋다.
ⓒ2004 박철
내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웃과 나누지 못한 것이 불행이며, 내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의 몸과 생명마저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수중에 든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나누려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썩고 맙니다. 생명이든 재산이든 시간이든 나누지 않는 것은 썩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조그마한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습니다. 향기로운 차 한 잔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산을 지나다 무심히 피어있는 들꽃 한 송이에서도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에서도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곳에서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이지 결코 크고 많은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잠자리가 꺾어진 풀 가지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2004 박철
다롱이와 까치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고, 양보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작은 자’(小子)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나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나보다 배운 것이 적다고, 나보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거나, 천대하면 안 됩니다. 그런 편협하고 불평등한 생각이 나를 좀먹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법정 스님은 그의 <무소유>라는 책에서 집착을 버리고 삶을 관조(觀照)하는 것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허욕(虛慾)에 사로잡히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실상은 눈이 먼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작은 것을 소중히 볼 줄 아는 마음에 깃들여 있습니다.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천시하지 않고, 거기에 생명의 경외(敬畏)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기사는 동아일보 2004년 7월 13일자 ‘자연과 삶’이라는 칼럼에 실린 것을 조금 보완한 것입니다.

2004/07/13 오전 7:1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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