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행복한 들녘에 펼쳐진 제철 열매들

오마이뉴스 임윤수(zzzohmy) 기자
요즘처럼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 이맘 때면 보리밭 근처나 야산에 달리는 살구나 보리수(보리똥) 열매는 좋은 간식이자 계절음식이었습니다.

▲ 추억 속에 맛난 계절 간식으로 기억되는 보리똥. 빨간 보리똥이 맛있어 보입니다.
ⓒ2004 임윤수
동네를 벗어나 조금만 산 속으로 들어가면 그리 크지 않은 보리수나무엔 보리똥 열매가 빨갛게 달려있습니다. 약간 텁텁한 맛이 뒷맛으로 남지만 제법 달콤하고 맛있는 산열매였습니다. 한알 한알 따먹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나무 줄기를 훑어서 잎새만 골라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먹는 것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입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풍족감을 주었습니다.

▲ 주렁주렁 달린 떡살구. 자연 그대로 맺은 상태라 벌레가 먹은 흔적도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연산 산열매입니다.
ⓒ2004 임윤수
두툼한 살집에 달콤한 참살구가 있는가 하면 생각만 하여도 입에 침이 고이게 신맛만 나던 개살구도 있었습니다. 연분홍 살구꽃이 떨어지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 탈곡하는 초여름 시골집에서 내놓을 수 있었던 흔한 과실 중 하나입니다.

▲ 아직은 파란색을 띤 자주지만 햇빛을 조금 더 받으면 맑고 반질반질한 껍질이 빨간색을 가질 겁니다.
ⓒ2004 임윤수
자두나 옹아도 요즘 먹을 수 있는 계절 과실입니다. 아직은 파란색이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맑은 껍질에 예쁜 분홍색을 띠게 될 겁니다. 산에 갔다 우연히 산살구나 산복숭아를 발견하게 되면 셔츠를 벗어 자루를 만들었습니다.

양팔과 목 부분을 묶으면 그럴싸한 자루가 됩니다. 그렇게 만든 옷 자루에 이런저런 산과실을 담아 집으로 가져오면 칭찬은커녕 야단을 맞기 일쑤였습니다. 비록 고급도 아니고 새 옷도 아니었지만 온통 얼룩덜룩 물이 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 화려한 봄꽃들이 지고 나니 미색의 밤꽃이 산색을 장식합니다.
ⓒ2004 임윤수
요즘 들녘에 나가면 이런저런 야생과실들과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봄꽃이 끝나고 요즘엔 미색의 밤꽃이 한창입니다. 긴긴 겨울밤 좋은 군것질 거리며 가을 과일의 대표격인 밤이 지금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 마치 벌레처럼 생긴 밤꽃을 자세히 보니 밤송이처럼 많은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4 임윤수
갈색에 동글동글한 밤은 잘 알겠지만 밤꽃을 자세하게 본 경우는 드물 듯 합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밤꽃을 언뜻 보면 마치 털 달린 벌레처럼 징그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하나의 수술에 뭔가가 달려있습니다.

▲ 화려하지 않아 채밀을 위한 벌이 모여들지 않을 듯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양봉 꿀 중 하나가 바로 밤꿀입니다.
ⓒ2004 임윤수
여느 꽃들처럼 화려하지 않기에 밤꽃엔 채밀을 위한 벌이나 나비가 모여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양봉으로 수확하는 대표적인 꿀 중 하나가 바로 밤꿀입니다.

▲ 도라지 타령에 나오는 백도라지 뿐 아니라 자주색 도라지꽃도 있습니다.
ⓒ2004 임윤수
들녘에 나가면 도라지도 볼 수 있습니다. 도라지 타령에 나오는 백도라지 뿐 아니라 고운 보라색 도라지도 볼 수 있습니다. 흡사 불가사리나 별처럼 생겼습니다. 활짝 핀 꽃도 아름답지만 덜 핀 꽃들은 무슨 이야기 거리를 그렇게 많이 담고 있는지 빵빵한 복 주머니 같습니다.

▲ 이 아름다운 호박꽃을 왜 못생긴 얼굴의 대명사로 인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004 임윤수
언제부터 누가 못 생긴 것을 표현할 때 호박꽃을 들먹였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호박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시골집 돌담을 타고 뻗은 넝쿨 여기저기에 피어난 호박꽃도 요즘 들녘에서 찾을 수 있는 정겨움입니다.

▲ 자주색 꽃잎에 노란 꽃술을 가진 가지 꽃이 아름답습니다. 가지를 일년생 식물로 생각하기 쉬우나 가지나 고추 그리고 토마토 등은 다년생 식물입니다.
ⓒ2004 임윤수
밥상을 풍부하게 하는 자주색 가지나 고추꽃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가지나 고추를 1년생 식물로 알고 계신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그 수확이 끝나는 데다가 겨울엔 이미 죽어버린 앙상한 고추대나 가지대만 보게 되니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 어디에 그 매운맛이 숨어있나 모르겠다. 고추 꽃이 청순해 보입니다.
ⓒ2004 임윤수
그러나 실상 고추나 가지는 다년생 식물입니다. 가을에 내리는 서리(霜)를 막아주고 보온만 잘해주면 몇 년이고 봄이면 싹과 꽃을 틔우고 여름이면 고추나 가지 열매를 맺어줍니다. 이런 것은 고추나 가지뿐 아니라 토마토도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심산유곡 산 중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짬을 내어 눈길만 놀리면 동네어귀나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들녘에 피어난 꽃들과 먹거리에서 하루의 행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기사 속 사진들은 6월 27일(일요일) 찍은 것들입니다.

2004/06/30 오전 10:16 ⓒ 2004 OhmyNews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