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교육용 프로그램을 감시도구로… 사상 최초 실형 선고

오마이뉴스 윤근혁(bulgom) 기자   
학생원격교육용 프로그램을 교사 컴퓨터에 깔아 근무 상황을 훔쳐보던 사립재단 산하 중고교 교장과 행정실장이 무더기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프로그램을 통한 노동 감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학교는 지난 해 7월 해당 감시 프로그램을 지운 교사를 파면했다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서 '징계 무효' 처분을 받는 등 말썽을 빚은 바 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판사 김주원)은 지난 5월 14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된 경기도 김포시 ㅌ중 탄아무개(55), ㅌ고 이아무개(75) 당시 교장들에 대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재단 대리인 노릇을 자임해 온 이 아무개(43) 행정실장에게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모두 자격정지 1년도 함께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전기통신 감청을 할 수 없는데도 중고교 교사 85명의 컴퓨터에 원격강의 프로그램을 일괄 설치했다"면서 "이를 통해 교사들의 근무 상황을 상시 감시하고 인터넷 통신을 감청해 범죄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전기통신을 감청하거나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해 9월 검찰에 낸 고발장에서 "해당 학교 교장은 교사들이 학교에 고용된 신분을 이용, 전자통신을 불법 감청 후 이를 이용해 교사들을 징계해 왔다"면서 엄한 처벌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재단 쪽은 이번 판결에 대해 "넷오피스쿨은 다른 많은 학교에서도 쓰는 강의용 프로그램"이라면서 "판결에 불복, 항소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25일 성명을 내어 이번 판결을 환영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은 "이번 사례는 일반 사업장으로 확대될 경우 가공할 '빅 브라더'의 정보 통제 사회로 나아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면서 "법원의 판결은 이를 '불법 감청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사용자의 편익보다는 노동자의 정보인권 보호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컴퓨터 통한 노동자 감시, 사상 최초 '실형선고'
프로그램 지운 최 교사 "학생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됐다"

▲ 넷오피스쿨 프로그램 박스.
교사 감시용 프로그램을 학교 서버에서 설치하고 이용한 학교 관리자들이 실형 선고를 받은 때는 이달 14일.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이 판결문을 입수한 때는 일주일이 흐른 지난 20일쯤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 내용이 언론에 알려진 시기는 전교조가 공식 보도자료를 낸 지난 25일이다.

판결문을 받아든 민주노총 최세진 정보통신부장은 "컴퓨터를 이용해 노동자의 근무 상황을 감시하고 송신 기록을 도청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최초의 판례"라면서 반겼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일반 회사에서 전자우편을 몰래 훔쳐보거나 송신 기록을 도청하는 일은 부지기수로 많다고 한다.

실제로 전교조엔 이번에 문제가 된 '넷오피스쿨'이란 원격교육프로그램을 여러 학교에서 교사 컴퓨터에도 깔았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자 지운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사용자 쪽의 행위에 대해 사법 당국은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다. 사용자들 또한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급한 컴퓨터이기 때문에 근무 상황을 체크하고 감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자세였다. 이에 따라 일부 회사에서는 특정 사이트 접속을 막거나 전자우편을 도청하는 일까지 벌인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은 이번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노동감시행위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을 들어 전격 실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사용자 쪽의 컴퓨터 도·감청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이처럼 단죄한 일은 사상 최초다.

감시프로그램을 지웠다가 파면 조치 후 복직된 경기 ㅌ중 최아무개(41) 교사는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교사 감시용 프로그램 설치가 불법행위란 사실을 인정해 줘 학생들 앞에서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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