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잎을 모두 떨구는 겨울은 보통 새를 관찰하러 다녔다. 생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겨울에 빠짐없이 철새를 찾아 쌍안경을 메고 강변을 헤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한국의 새’라는 도감에는 북한의 새를 포함해 약 450여종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탐조인의 증가로 50여종의 텃새를 포함해 500여종의 새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후가 변하면서 또는 환경이 오염되면서 철새였던 새들이 우리나라에서 텃새화되거나 새로운 새들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보이던 새가 사라지기도 하면서 그 종류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하늘을 나는 파랑새. 실선 원안은 점선 안 파랑새 자료사진
아파트 사이에 날고 있는 파랑새. 왼쪽에 있는 아파트 오른쪽 작은 점이 파랑새다.

며칠 전부터 예쁜 새소리가 들렸다.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라고 표현하면 너무 진부할까? 하지만 딱 그런 소리이다. 봄철 내내 까치와 직박구리, 물까치의 싸우는 소리를 듣다가 정말 노래하는 듯한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산뜻해졌다. 여름 철새인 꾀꼬리다.

꾀꼬리는 이제 둥지를 짓고 알 낳을 준비를 한다. 몸 전체가 진한 노란색이니 날아다니는 동안 눈에도 잘 띈다. 한 쌍의 꾀꼬리가 나타났을 뿐인데, 숲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걸까.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는 언제 봐도 자유롭다.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다는 필자의 아이들을 보며 어릴 적 같은 상상을 했던 스스로와 만난다.

크기가 크거나 물 주변에 있는 새들은 관찰하기 쉽다. 우리가 새를 잡으러 물속까지 들어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물새들은 아주 여유롭다. 오리류, 백로, 왜가리, 민물가마우지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이다. 하지만 숲에 사는 작은 새들은 나뭇잎에 가려져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높이 날아가는 새는 사람의 맨눈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경우 새가 사는 것을 소리로 알고, 구별한다. 실제 필자는

지난 2년에 걸쳐 한 종류의 새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까치 정도 크기에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띄고 아래에서 봤을 때 양 날개에 뚜렷한 흰점이 하나씩 있는 새였다. “켁켁켁켁~ 켁켁켁켁~”하는 개구리 소리 같기도 하고, 오리 소리 같기도 했다. 동네 뒷산에서도 보이고, 옆 동네 큰 공원에서도 보이는 것을 보니 아주 보기 힘든 새는 아닌 듯한데, 높이 날아다녀 쌍안경으로 봐도 까마귀처럼 보일 뿐 알 길이 없었다. 새 도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어느 날 눈썰미 좋은 지인과 함께 그 새를 보게 되었다. 필자의 고충을 듣고 함께 나는 새를 뚫어져라 보던 차에 청색 빛과 붉은 부리를 발견했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가 보다. 함께 해야 쉽게 풀린다.

다시 한 번 새 도감을 처음부터 훑어보았다. 파랑새였다. 5월에서 7월까지 우리나라에 오는 여름 철새이다. 이름은 파랑새지만 검거나 갈색을 띄고 빛을 받아 청록색으로 보인다.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단다.

여름이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임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헤맨 것을 생각하니 아는 것이 참 쥐꼬리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하니 어릴 적 읽었던 ‘파랑새’라는 동화와 필자의 상황이 일부 겹치는 느낌이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결국 집에서 키우던 산비둘기가 파랑새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에 있어도 찾기 힘든 것, 하지만 관심을 조금만 갖는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많은 것이 같은 이치이리라. 파랑새가 준 생생한 경험이다.

이번에도 파랑새를 알지 못했다면 다음 여름까지 또 답답한 가슴을 안고 지냈을 것이다. 이젠 속이 시원하다. 앞으로 매년 찾아오는 파랑새가 기다려지겠지.

지금까지 새는 필자에게 넘어야 할 벽 같은 존재였나 보다. 이번 파랑새 사건을 통해 철새가 더 재밌게 다가왔다.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텃새 외에도 한 계절을 지내고 먼 곳으로 떠나는, 높이 나는 철새를 더 만나고 싶어졌다. 처음 마음으로, 오감을 열고 숲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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