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맥닐사가 처음 출시한 타이레놀

바다와 하늘의 색깔인 파란색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빨강이나 파란 성격의 색깔을 우리가 사용하는 물품에 적용하기 위해서 염색방법이 개발되었다.

최초로 사용된 염색을 위한 물질은 식품이나 동물, 광물에서 얻어진 천연색소였다. 수천 년 전에도 쪽나무에서 파란색 물질을 얻어서 옷감에 사용했다. 그러나 식물에서 얻어낸 천연 색소는 가격이 아주 비싸기 때문에 주로 귀족들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흑백 영상보다 다양한 색깔이 구현된 컬러TV가 각광을 받은 것처럼 다양한 염색물질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조선시대 홍색 계열은 왕실의 색깔로 규제가 있었지만, 남색은 상대적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초록색 쪽 잎을 물속에 담그면 초록색 물이 형성되는데, 여기에 굴껍질을 태운 석회와 잿물을 넣으면 화학반응에 의해서 파란색 가루가 침전된다. 이 침전물을 발효시켜서 파란색소를 얻게 된다.

쪽을 이용한 파란색 염료 추출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100kg에서 겨우 300~400g만 추출되었기에 아주 귀하고 비쌌다. 쪽에서 추출한 염료는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져 인도에서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인도산 파란색 염색물질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인도에서 온 파란 물질이라는 의미로 ‘인디고(Indigo)’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인디고는 영어로 파란색을 의미한다.

중세 이슬람은 인도의 파란 염료를 유럽에 전달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파란색 돌가루가 광물이 아닌 쪽나무에서 추출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슬람 상인들이 말한 파란색이라는 의미인 ‘아닐(Anil)’을 나무 이름을 인식해 쪽나무를 아닐로 불렀다.

천연염료 성분은 대규모 농장이 필요했다. 색소 추출에도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고가의 물품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규모로 석탄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석탄 찌꺼기들을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활용 방법을 연구하던 중 1856년 독일의 호프만은 석탄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인 석탄 타르에서 여러 색소를 발견하는데, 그 중에는 파란색도 있었다. 놀랍게도 석탄 찌꺼기에서 화학공정을 얻은 파란색은 쪽나무에서 추출한 것과 같은 성분이었다. 아닐린이라고 불리는 파란색이 광물에서 합성이 가능해졌다.

값비싼 염료를 값싸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은 엄청난 이익이 발생되는 사업이었다. 기업가들은 염료 공장을 만들어 제조에 나섰다. 인디고 450그램에 6일치 급여와 맞먹는 가격이었으나 새롭게 양산된 제품들로 인해 가격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싼 가격의 염료는 의류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의학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 염색약이 사용된 부분은 현미경으로 세포나 세균을 관찰할 때 구조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 활용되었다. 우리가 피부에 물감 등이 묻었을 때 불편감을 느끼는 것처럼 세균의 외벽이 염색약으로 색칠할 경우 세균이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노폐물 배설과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염색약으로 세균을 없애는 항생물질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살바르산이라는 매독약에 성공했고, 1932년에는 빨간색 염료에서 프론토실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886년 프랑스에서 고열과 장염 등이 있던 환자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었다. 진료하던 의사는 기생충 약을 처방했는데, 약국에서 다른 약을 주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환자의 기생충은 제거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환자의 열이 떨어진 것이다. 약사가 준 약품 성분은 아세트아닐라이드라는 파란색 염료에서 개발된 성분이었다.

문제는 이 성분이 열은 떨어뜨리지만 혈액색깔도 파랗게 바꿔버린 것이다.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떨어뜨려 숨이 차게 만들 수 있었기에 사용되기 어려웠다.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해열 효과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했됐는데, 아세트아닐라이드를 먹은 환자 소변에서 하얀 가루를 발견했다. 하얀색 가루는 해열 효과가 있으면서 부작용도 없었다. 아세틸파라아미노페놀이라는 긴 이름의 성분이었다. 새로운 성분이 발견되었지만 1·2차 세계대전으로 후속 연구는 전쟁이 끝난 뒤에야 계속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에서 임상실험에서 열을 내리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품으로 출시되었다. 화학구조식이 길기에 간단한 성분명을 제시했는데, 유럽에서는 파라세타몰로 불리었고, 미국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51년 뉴욕에서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제약회사 맥닐사의 대표인 로버트 맥닐은 위장 장애가 있는 아스피린을 대체할 만한 안전한 해열제라고 확신하였다.

맥닐은 앞 글자가 아닌 화학성분의 뒷부분을 조합해서 타이레놀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했다. 맥닐사가 출시한 타이레놀은 어린이가 먹어도 안전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판촉에 나섰으며 대성공을 거두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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