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정문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110만 특례시에 걸맞는 문화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 중 핵심으로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용인시립박물관’이다. “있다” “없다”로부터 시작돼 그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또 현재 용인시는 국가에 귀속된 지역 내 발굴 주요 유물조차 직접 보관·관리·활용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이해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SK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대형 개발사업을 앞두고 또다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용인시립박물관 건립 문제를 들여다본다.

용인시박물관

# 기부채납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의 변신= 용인시 기흥구 동백3로 79번지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용인시박물관이 있다. 그 출발은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이다. 동백지구 개발사업을 주도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현 LH)는 택지조성 과정에서 다수의 구석기문화층을 발굴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동백지구 내에 전시관을 지었다. 2009년 11월 문을 열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를 기부채납 형식을 빌어 용인시에 관리권한을 넘겨줬다. 누가 세웠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 후가 문제다.

용인시는 10여 년 동안 전시관으로 운영하다가 2018년 필요에 의해 용인시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름만 그럴듯한 박물관이 됐을 뿐 부지면적 12만7568㎡에 채 400평이 안 되는 작은 건물 규모다. 10여 년간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은 얼추 5000여 점에 육박하지만 현재 수장고 면적은 고작 206㎡(약 62평)에 불과하다.

그동안 용인시는 내부 시설 변경 등 손을 봤을 뿐 시설의 증·개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성남시와 수원시 등 인근 지자체들은 충분한 문화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립박물관·미술관 건립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 뜨거워지는 문화인프라 경쟁= 수원시가 최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문화재·미술품 국가기증과 관련해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며 수원시장을 비롯한 정치권이 발 빠르게 바람몰이에 나섰다. 삼성본사와 가족 선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원시는 이미 직영 수원박물관을 비롯해 수원화성박물관·수원광교박물관·수원시립미술관까지 운영하고 있는 앞선 문화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수원박물관은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 사운 이종학사료관을 연계해 1종 종합박물관으로 인정받아 그 위상이 높다.

이에 뒤질세라 판교박물관이 있는 성남시도 성남시립박물관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2024년 개관을 목표로 문체부 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해 이미 국비 28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2024년 말 개관을 목표로 시민워킹그룹 활동가들이 활발히 참여해 ‘시민이 짓는 성남박물관’이란 컨셉트를 구현해 가고 있다.

최근 평택시의 시립박물관 건립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미 지난 2016년부터 기본계획수립 용역, 유물 조사용역 등 준비과정을 거쳐 고덕 국제화 지구 중앙 공원에 약 2만㎡ 부지를 확보하는 등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에는 총사업비 375억 원을 투입하는 종합박물관 건립 계획까지 수립한 뒤 정부에 공립박물관 사전평가 신청을 했으나 탈락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올해 유물확보와 차별화 된 준비로 오는 7월 문화체육관광부에 타당성 사전평가를 다시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특례시 및 경기도 지자체 시립박물관 현황

# 용인시립박물관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박물관은 전시, 교육, 보존 등 전통적 기능 수행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공유하는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시대가 됐다. 박물관은 다음 세대에 오늘을 전하는 기억의 저장고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역정체성의 보루이기도 하다. 이 같은 원론적인 필요성을 넘어 용인은 절실함과 시급함이 더해진다.

우선 시설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인구 110만 용인시민의 문화욕구를 충족하기엔 동백동 소재 용인박물관 규모가 너무 협소하다. 단체관람객 이용에 필요한 대형주차공간은 아예 없고 각종 편의시설도 부족한 실정이다. 앞서 밝힌 대로 수장고 면적이 고작 206㎡(62평)에 불과해 면적 대비 유물 수장율이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새로운 유물을 기증받아도 부담스러운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전문인력은 말할 것도 없다. 단 2명의 시간선택제 학예사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현재 용인은 지역내에서 발굴한 유물이 국가에 귀속되더라도 용인에 직접 보관‧관리‧활용이 어렵다. 그 이유는 용인시박물관이 현재 국가귀속유물 위탁기관으로 지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도달하려면 시설과 인력현황(정규직 학예사), 수장고, 전시실, 관리 능력 등을 검토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지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용인은 그 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다 보니 선사시대 유적부터 삼국시대의 각축장이자 요충지를 확인해주는 귀중한 3국의 유물, 고려시대 처인성, 서리백자요지, 서봉사지를 비롯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돼도 용인시민은 용인에서 볼 수 없다. 고스란히 국가 또는 지방박물관으로 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당장 원삼 SK하이닉스 클러스터 단지와 보정동 플렛폼시티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본격화되는 시점이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경기도박물관

# SK하이닉스‧보정동 플렛폼시티 발굴 유물은 어디로= “마을이 하나 없어지면 박물관 하나를 잃는 격이다.” 문화계에서 생활문화의 보물창고인 마을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쓰는 말이다. 하물며 SK하이닉스 클러스터와 보정동 플렛폼시티 개발사업은 용인 지역사에서 그간 없었던 최대사업이다.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독성리 일원과 보정동‧구성동 등 여러 자연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게 될 운명에 놓였다.

주민 이주대책과는 별개로 해체되는 마을공간에 대한 유물 수집, 관리, 활용에 관한 장기적 마스터플랜이 불투명하다. 특히 이런 경우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보상과 철거가 시작되기 전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용인박물관이 해야 할 역할이나 현재 학예인력 그리고 수장고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처지다.

더구나 앞서 밝힌대로 현재 용인시박물관은 용인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를 위해 대여만 할 뿐 위탁기관 지정이 안 된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나올 유물도 이전에 동백, 수지에서 발굴된 유물처럼 전부 국립박물관 등으로 보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용인시가 용인도시공사를 통해 지장물 조사와 보상문제를 처리할 인력만 충원할 것이 아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 담당 위탁기관만 선정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넘어야 한다. 당장 마을원형과 주민들의 삶터가 훼손되고 해체되기 전에 전통민속 관련 생활유물 등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작업과 보존대책이 절실하다. 전문 조사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지금도 늦다.

# 유물보관을 위한 사업자 기부채납을 기대하는가?= 생활사 유물·유실 우려에 대해 동백유적전시관과 같은 대안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우려가 앞선다. 원삼 죽능리의 경우 여준선생이 세운 삼악학교 터 비석 유물과 오광선 장군을 비롯한 ‘ 3대 독립운동기념비’ 등을 역사공원 조성 후 옮기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종합적인 전시관은 발굴조사에서 유물이 다량 나올 경우 다시 협의하고, 전시관도 커뮤니티센터 공간으로 빼놓은 곳으로 대체한다는 정도의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우 수동적이고 안이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수지개발 당시 임진왜란 전투지인 <임진산성 전시관> 활용실태가 그 예다. 2002년 삼성물산이 지난 삼성5차 아파트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현자총통을 비롯 도기류 등을 전시할 공간으로 근린공공시설 내에 지어 용인시에 기부채납했다. 각종 개발로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유물과 문화재를 있던 위치 그대로에 전시관을 둬 후대에 역사적 자취를 남긴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동백 유적전시관이 생기면서 그곳 유물을 전부 이관해온 이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다. 현재 별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생활문화센터 리모델링 사업을 국비를 받았다가 공유재산심의에서 부결돼 더 이상 진행이 멈춰진 상황이다.

수원박물관

# 용인시립박물관 추진 경로와 방안= 용인문화계 전반에 걸쳐 두루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평택시와 성남시의 최근 추진 사례를 참고하면 예산은 대략 3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전시실, 교육실, 수장고, 편의시설 등을 갖추는 대규모 예산이 수반된다. 이 때 활용할 수 방법이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이하‘균특’) 예산이다.

문체부의 사전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40%에 해당하는 국비지원이 가능하다. 문제는 통과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총 171곳에서 신청한 결과 ‘적정’ 평가를 받은 경우는 52건에 불과하다. 박물관 신축 신청건의 1/3 수준이다. 앞서 사례를 든 평택시도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재도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용인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그 시급성과 중요성에 비춰 당장 나선다 해도 2025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용인시립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 중기지방재정계획 반영, 박물관 자료수집 계획 수립과 추진, 투자심사를 거쳐 문체부 사전평가까지를 준비하는 데만 빨라야 2년이다. 올해 착수해도 실시설계와 건축허가 등 인허가를 거쳐 준공되려면 2025년에나 가능하다. 올해 3차 추경을 통해 용인시립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용역비라도 편성해야 하는 이유다.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보정동 플렛폼시티 사업 구역 내 공공청사 부지를 활용하던가 또는 보정동 역사공원 부지도 가능하다. 공공용지는 토지매입에 따른 예산 절감은 물론 주요 문화재 주변 입지로서 역사문화 환경의 최적지라 할 수 있다.

‘마을 하나가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없어지는 격’ 일진대 대대로 이어온 문화와 삶이 응축된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농경사회의 골간이었고 큰 역사흐름의 밑거름이 고스란히 떠내려가고 있다. 사라지면 끝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역사회 차원의 특단의 선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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