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4월 8일 새벽 5시 12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뒤틀렸다. 25초의 흔들림 이후 40초가량 큰 진동이 발생했다. 전통적인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은 무너졌고, 거리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도시는 불탔다. 3000여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었다. 16세의 제이 매클레인의 가족도 모든 재산을 잃었다. 어려운 가운데도 열심히 공부했던 제이 매클레인은 1914년 버클리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미국은 서부 개척과 급격한 인구 팽창으로 많은 의사들이 필요했다. 지방정부와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의과대학을 설립해서 160여개에 졸업생은 5000명이 넘었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받을 기회가 늘어나 의료 환경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역설적으로 정반대였다. 열악한 시설에서 부실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개업을 기피하고 진료를 포기하면서 오히려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미국의사협회는 1908년 중립성을 위해 의료계와 관련이 없는 교육학자 플렉스너에게 의과대학 실태조사를 맡겼다. 2년간의 조사 후 <미국과 캐나다의 의학교육>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른바 플렉스너 보고서다. 입학자격, 학생교육, 임상실습뿐 아니라 기초연구, 교수진 등을 평가한 이 보고서는 미국 의료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다 부서저가는 건물, 악취가 나는 해부실습실, 경악할 정도로 형편없는 부속병원, 실험실 투자보다 광고가 더 많은 사실이 알려졌고 부실 의대들은 하나 둘씩 폐교조치 됐다.

플렉스너 보고서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의과대학의 표준으로 생각한 곳은 미국 동부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었다.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은 임상에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된 기초 연구에 대해서도 독립적이고 충실한 지원이 이뤄지면서 현대 의학교육 체계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플렉스너 보고서에 매료된 매클레인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 진학할 꿈을 꾸었다. 그러나 가난한 청년은 대륙을 횡단할 만한 여비도, 학비도, 생활비도 없었다. 막노동 등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면서 의대 학비를 모았다.

1년이 지난 1915년 매클레인은 존스 홉킨스에 합격할지 떨어질지도 모른 채 볼티모어행 기차에 몸을 맡겼다. 일요일 오전 여행용 가방 하나를 든 채 볼티모어역에 도착한 매클레인은 곧바로 학교를 찾았으나 낙방한 사실을 알게 됐다. 캘리포니아에서 유기화학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행운이 있었다. 입학자 중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대륙을 횡단한 이 청년에게 추가 입학의 기회가 주어졌다.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생이 된 매클레인은 기초 의학 연구실에서 조수로 일하게 됐다. 지도교수는 호웰 박사였다. 호웰 교수는 피를 잘 굳게 하는 물질을 찾고 있었다. 전쟁이나 사고로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멈추는 지혈제는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시 세팔린이라는 뇌조직에서 추출된 응고 성분이 발견됐다. 동물의 뇌조직을 물에 담가 연하게 만든 뒤에 수분을 증발시킨 후 알코올 등으로 추출한 물질이었다. 호웰 교수는 학생에게 순수 세팔린을 정제하고 효능을 분석하는 과제를 주었다.

일은 냄새가 나고 고됐다. 조직을 오랜 시간 침전시키는 과정에서 부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옷에 밴 악취로 동료들은 그를 기피했다. 뇌조직에서 계속 추출을 시도해봤지만 순도가 더 높아지지도 않았고, 효과도 신통하지 않았다. 마침 유기화학을 공부하던 매클레인은 독일에서 심장과 간에서도 혈액 응고 물질을 발견한 것을 알게 됐다.

매클레인은 곧 동물의 심장에서 황갈색 액체를 추출했다. 미끈미끈한 물질은 혈액응고를 촉진시켰지만 뇌추출물 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간에서 나온 성분도 비슷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실험 속에서 뇌조직에서 나오는 세팔린은 간이나 심장에서 추출된 것과 성격이 조금 달랐다. 뭔가 다른 성분이 함께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매클레인은 세팔린이 아닌 다른 성분들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세팔린은 불포화 지방산의 한 종류라고 추정했기에 공기 중에 방치하면 효능이 사라지면서 제거되는 것이다. 3개월 간 공기 중에 방치된 추출물을 가지고 혈액 응고 능력을 실험하자 오히려 피가 굳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하는 실험 끝에 간에서 추출된 성분이 혈전 생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매클레인은 호웰 교수에게 알렸지만 혈액 응고 물질을 찾고 있었기에 흘려들었다. 어느 날 매클레인은 혈액 샘플을 가지고 호웰 교수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혈액 샘플이 굳으면 자기를 부르라고 말하면서 나갔다. 혈액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굳지 않았다.

뒤늦게 새로 발견한 물질의 중요성을 깨달은 호웰 교수는 신 물질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했고,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새로운 성분임을 확인했다. 간이라는 의미의 ‘헤파’를 따서 ‘헤파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헤파린은 혈전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예방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고,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시작했다.

1955년 2월 8일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주 히치콕 병원에 62세 여성이 안과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3주간 안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3월 6일 좌측 사타구니에 통증이 나타났고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을 없애기 위해 의료진은 헤파린을 투여했다. 왼쪽 하지 통증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발생했다. 헤파린 사용 중에도 혈전이 발생하자 의료진은 수술을 통해 제거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환자는 회복됐다. 그런데 3월 19일 또다시 혈전이 생겼다. 이번에는 대동맥이었다.

혈전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헤파린이 기대한 효과와 반대로 다른 혈관이 막히는 환자들이 계속 발견됐다. 10명의 환자 중 6명이 사망했다. 헤파린 사용 때 발견되는 혈전은 빨간 적혈구로 이뤄진 피떡이 아닌 연한 주황색이었다. 현미경으로 보자 적혈구보다 백혈구와 혈소판들이 엉겨 붙은 상태였다.

1970년대 혈액에서 혈소판 갯수가 본격적으로 측정되면서 헤파린으로 발생되는 혈전증 환자는 혈소판이 감소하는 현상이 먼저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헤파린이 혈소판을 자극하는 인자와 결합하면서 피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원인이 밝혀지면서 치료법도 함께 연구됐다. 여러 항응고제들이 개발되면서 주의 깊은 진료를 통해 조금씩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에 의해 드물기는 하지만 일부 혈전증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헤파린처럼 백신 성분이 혈소판을 자극하면서 엉겨 붙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방 접종 전후 건강 검진을 통해 미리 대비한다면, 최근 개발된 치료방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건당국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핵심인 백신 접종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안내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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