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 호킨스 공연 유튜브 화면 갈무리

용인에 사는 젊은 시인 김승일은 어린 시절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동급생에게 운동장 끝 으슥한 곳에 끌려가 폭행을 당했는데, 그 현장에서 느꼈던 공포감과 수치스러움은 시인의 인생을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눠 버린 계기가 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는 폭력에 저항하고 자유로워지려고 시를 썼답니다. 그 과정을 함께 겪어보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중에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그 영화들은 교복 세대들에게는 아주 적나라한 학교 폭력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 학교 폭력의 배경에는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사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았지만, 많은 교사가 무자비한 폭력을 학생들에게 가했다는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교사들의 폭력이 너무 컸기에 학생 간에 일어났던 폭력은 그냥 자라면서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었어요. 그랬기에 학교 폭력에 대해서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피해를 본 학생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지요. 그래서 시인의 그때 상황이 이해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여렸고 약해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었겠지만, 그것을 견뎌내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됐고. 그 힘으로 치료 방법을 찾아 시를 쓴다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소개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카즈 호킨스(Kaz Hawkins)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신건강 운동가’이며, 블루스와 재즈를 다루는 가수이자 작곡가로 알려진 여인입니다. 걸음마 뗄 무렵부터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간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집 안팎에서 사랑받는 아주 귀엽고 재능있는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끔찍하게도 겨우 4살 나이부터 무려 7년간이나 함께 살던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삼촌이 ‘우리만의 작은 비밀’이라며 행했던 이 일을 겪으며 지냈던 시간을 남들도 똑같이 겪고 있는 줄로 알았답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이르러 비로소 이것이 본인에게만 있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하느님께 빌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곤 방황이 시작됐어요. 온몸에 자해를 하고 그 자해 흔적을 감추기 위해 문신을 하고 급기야 술과 마약에 의존하게 됐어요. 남편에게 당한 끊임없는 가정폭력으로 결국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게 됐답니다. 그래서 가게 된 병원의 도움으로 정신치료를 받게 되면서 비로소 자기가 겪었던 끔찍한 일에 대해 털어놓게 되고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고발하게 됐어요. 아뿔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증거 불충분으로 삼촌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됐고, 집안을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믿었던 가족들에게 버림까지 받게 된 거예요.

평생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데 가족들마저 ‘시선을 끌려고 일을 만들었다’라고 비난하며 인연을 끊자고 하니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아마도 보통 사람이었으면 좌절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었을 거예요. 그러나 카즈는 무너지기 직전에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명쾌하게 단절을 선언하고서 자기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를 줄여 나아가기 위해 교도소와 학교를 방문하고, 청소년들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기가 겪었던 일을 사례로 들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강연하기 시작했어요.

어려서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그녀였던지라 약 20여 년간 커버 밴드에서 노래하며 과거에 고통을 받을 때마다 일기장에 적어왔던 자기의 시에 곡을 붙여놓기 시작했던 거예요.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을 찾게 된 거지요.

마흔이 넘은 2014년이 되어서야 첫 앨범을 발표한 ‘카즈 호킨스’는 현재 아일랜드 출신 중 가장 재능을 인정받는 블루스 재즈 가수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녀 노래 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Because you love me’이지만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자기가 겪었던 폭력과 삼촌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녹아있는 ‘Surviving’입니다.

이 곡을 내놓으면서 카즈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나를 학대했던 가족들과 타협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이 절대 내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성적 학대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자기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불편해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나는 음악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이런 태도를 고쳐나가고 싶고, 여전히 고통 속에서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울 겁니다.

정재근

여기까지 왔다면 침묵 속에서 계속 고통받지 마십시오. 도움을 요청하세요. 자신을 스스로 망치지 않게 하세요. 그래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증거예요.”라는 말이에요.

카즈의 음악 소개보다 인생역정 소개가 더 길었네요.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아무도 나를 만질 수 없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치료다”라고 말하는 그녀 삶을 어찌 줄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노래를 ‘Surviving’을 올려놓지만, 시간이 된다면 위에 소개한 곡도 찾아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참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진 가수거든요.

‘카즈 호킨스’의 ‘Surviving’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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