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정맥혈전으로 추정되는 구두수선공의 다리가 치료되는 기적. The life and miracles of St. Louis(1271) (Journal of Thrombosis and Haemostasis(2011)에서 인용함)

1270년 7월 17일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1만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아프리카 튀니스 근처에 상륙했다. 8번째 십자군을 지휘한 루이 9세의 목적지는 이스라엘 지역이 아닌 북아프리카였다. 1248년 7번째 십자군을 이끌었던 루이 9세는 중동지역까지 장거리 원정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며 본인마저 포로가 되는 큰 실패를 경험했다.

비교적 가까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을 정복해 점차 넓혀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에는 루이 9세의 동생 샤를 1세가 시칠리아 왕으로 있으면서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영국 왕 에드워드도 병력을 이끌고 힘을 합치기로 했다. 막강한 십자군에 북아프리카는 금방 점령될 것처럼 보였다.

찌는 듯한 태양 속 아프리카의 열기는 프랑스군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음식은 상하기 쉬웠고, 병사들은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다. 전염병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루이 9세를 비롯한 장군들과 지휘부도 앓아 눕기 시작했다. 8월 3일 왕의 아들이 병사한데 이어 8월 25일 총사령관이자 국왕이었던 루이 9세마저 사망하고 말았다.

전염병으로 사기가 떨어진 십자군은 이슬람과 협상 후 철수했다. 루이 9세의 유해는 이탈리아를 걸쳐 프랑스로 운구됐다. 루이 9세는 십자군에 두 번이나 참가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많은 정책을 펼쳤기에 유럽 전역에 걸쳐 명성이 높았다. 루이 9세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왕을 애도했다. 이듬해인 1271년 프랑스에 도착한 그의 유해는 왕들이 묻혀있는 생드니 대성당에 안장됐다.

생전에 성자라고 칭송받던 루이 9세는 죽은 뒤에도 그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1271년 프랑스 파리의 젊은 구두 수선공은 한쪽 다리가 부어오르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지켜보자고 했으나 증상은 점점 나빠졌다. 심지어 피부에 상처가 나서 아물지 않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치료를 시도했으나 전혀 호전되지 않자 구두 수선공은 하나님께 매달려보기로 했다.

성자로 알려졌던 루이 9세의 무덤에 가서 며칠 동안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기도가 끝난 구두수선공은 무덤에 있는 먼지를 다리의 상처에 발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정말 다리의 부종이 빠지고 상처들이 나아갔다. 기적이라고 생각한 이 일화는 로마교황청이 수집해 루이 9세의 기적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1297년 성자로 추대 된 루이 9세는 영어로 세인트 루이스라고 불리고, 한국 가톨릭에서는 성 루도비코로 번역했다.

구두 수선공의 증상은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직업적 특정으로 다리 정맥 흐름이 정체되면서 혈액이 굳어져 혈관을 막아 생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정맥 중 깊은 정맥의 혈관이 피떡으로 막히면서 다리에 부종이 발생하고, 염증이 생기거나 심한 경우 혈전이 이동하면서 심장이나 폐혈관을 막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다리 통증이 있으면서 부어오르는 증상은 고대에도 있었기에 동·서양 모든 곳에 기록돼 있다. 기원전 6세기경 인도를 비롯해서 서구의 히포크라테스도 언급하고 있다. 동양에서도 각기라고 불리며 다리와 무릎이 연약해지면서 심하게 저리고, 근이 뒤틀리며 벌겋게 붓는다고 기록됐는데, 차고 습한 기운이 다리에 모여 발생한다는 내용이 동의보감에 나온다.

혈액 순환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동양에서는 나쁜 기운의 영향으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쁜 피를 뽑아내거나 대변을 소통시켜 독기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쁜 기운이 질병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나쁜 기운이 모여서 다리에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출산 후 다리 부종과 통증이 발생할 경우에는 소모되지 않은 모유가 정체됐다는 생각으로 출산 후 모유 수유를 장려하기도 했다.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한 사혈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근세까지 많이 사용돼 거머리 등을 이용하기도 했다.

나쁜 기운이 다리에 병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혈액순환 문제라는 생각은 17세기에 이르러서 시작됐다. 1628년 윌리엄 하비가 혈액이 순환된다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혈관에 혈액이 변화해서 생긴 피떡이 혈관을 막아서 생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맥 내 혈전이 이동해서 심장, 폐, 뇌 등 중요 장기의 피해를 막기 위해 환자를 고정시키고, 경우에 따라서 외과적 수술을 통해 심장으로 가는 정맥을 묶기도 했다.

혈전이 생기는 환자들은 고열을 동반하거나 출산, 패혈증 등 염증 현상이 있었기에 정맥 내벽의 염증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생각됐다. 혈전이 생기는 원인, 즉 혈액 흐름의 정체, 혈관 내벽의 손상, 혈액 응고 성향의 증가는 1856년 독일의 피르호에 의해서 정립돼 현재까지 깊은 정맥 혈전증의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심부정맥혈전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심부정맥혈전, 즉 피부에서 보이는 정맥이 아닌 몸 깊은 곳 정맥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혈전을 말한다. 심부정맥혈전은 백신 접종이 아니더라도 장시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오래 앉아 있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동반돼 있을 경우 위험성은 높아진다.

혈액검사와 도플러 초음파 등을 이용해 혈관 상태를 파악한 뒤 항혈전제 투여로 치명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막연한 공포보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 미리 대비하는 것이 안전하게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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