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누구도 부럽지 않아”
영혼의 단짝 최고령 황순애·막내 유 할머니

개인적 상정으로 중학교 입학을 못한 두 노인은 3년 동안 성인문해학교 중학과정을 다니면서 행복했다며 문해학교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것”이라는 개그맨 박명수의 말이 아직까지 온라인에서 회자되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열정 만학도’ 앞에선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게 증명됐다. 배움에 있어서는 때도 나이도 의미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 황순애(85), 유모(70, 익명을 요청해 성만 표기함)씨. 오로지 공부에 대한 열정과 의지만으로 버텨낸 3년의 시간. 두 만학도는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고 기뻤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중학과정 졸업 "죽어도 여한 없어" 
지난달 24일 2020학년도 용인시 성인문해학교 중학과정을 마친 11명 노인이 졸업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중학학력에 해당하는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한 이들의 평균 연령대는 70대다. 그 가운데 황씨는 가장 고령이었고, 유씨는 막내로 3년 내내 짝꿍이었다. 띠동갑이 훌쩍 나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단다. 1930~40년대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전쟁을 겪으며 배움을 중단하게 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배움의 끈을 놓게 되면서 학교와 영영 이별한 사람도 적지 않다. 황씨도 이런 사정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단다.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곧 6.25 전쟁이 일어났어요. 중학교 입학은 했는데 못 다녔죠. 그러다 보니 결혼할 시기가 됐고 애들도 줄줄이 태어나면서 육아에 바빴어요. 먹고 살만해지니까 80대가 돼 있더군요” 

자신은 사정이 좀 다르다는 유씨. “저는 초등학교까지 마쳤는데, 중학교 갈 쯤 띠동갑 동생이 태어났어요. 언니, 오빠는 이미 학교에 다니고 부모님은 사업을 하셔서 결국 제가 돌보게 되면서 학교 갈 시기를 놓쳤어요. 같은 초등학교 다닌 친구들이 중학교 교복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고 밤새 운 적도 많아요”

이처럼 저마다의 사연으로 중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이들은 “이제 엄마의 삶을 살라”는 자녀들의 설득으로 성인문해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일주일 3번 등교해 하루 4시간씩 총 5과목을 배웠다. 적지 않은 나이에 힘들 법 하지만 오히려 활기차고 재미있었단다.

“3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연필을 들고 공부할 때면 영부인 부럽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너무 행복했어요. 집에서 숙제하고 복습하다가 기뻐서 눈물 흘린 적도 많아요. 근데 이제 수업도 못 듣고 숙제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니 허망하더라고요”

이렇듯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중한 인연은 물론이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는 두 사람은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뿌듯하고 행복하단다. 이런 이들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 문해학교 고등과정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분도 계시지만 방통고를 찾아보니까 너무 버거워 보이더라고요. 지금처럼 일주일 3번씩 나와서 공부도 하고 언니들이랑 수다도 떨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고등과정이 어렵다면 문학교실 같은 거라도 만들어져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3년의 시간이 결코 순탄하진 않았지만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새 삶을 사는 것 같았다는 이들은 앞으로도 배움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단다. 이제 막 시작된 두 사람의 봄날이 더 오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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