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분위기 사색하기 안성 맞춤
 

아직 쌀쌀하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봄내음이 가득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꽃망울을 볼 때면 봄이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이름 모를 들꽃부터 개나리, 진달래 등이 피어나며 총천연색으로 거리를 물들일 것이다. 꽃들의 향연이 떠오르니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 화백의 독특한 색감이 겹쳐 보였다. 화려하면서 통통 튀는 색감을 보면 마치 봄의 화려함을 닮은 듯하다. 

이른 감은 있지만 조금 빨리 봄을 느끼고 싶어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고택으로 향했다. 장욱진고택으로 가는 방법은 마을버스 21, 21A, 26, 26-1 등을 타고 구교통마을, 장욱진고택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처음 가보는 사람이라면 장욱진고택이 빌라, 주택 사이에 위치해 있어 찾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주변에 고택가는 길을 알리는 안내판 등이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아 찾아가는 데까지 다소 혼란스러웠다. 몇 차례 주변을 살피다가 깊숙한 곳에서 ‘장욱진고택’이라고 쓰여 있는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장욱진고택 앞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 쓰여 있는 표지석을 비롯해 2~3개의 표지석이 쭉 나열돼 있었다. 그만큼 장욱진 화백도 그리고 고택의 가치가 상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에 내려온 장 화백은 이 고택에서만 220여점의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여유롭고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가 그의 창작 활동에 기폭제가 된 듯싶다. 

고즈넉한 이곳은 경기도 민간의 전형적인 형태로 건축학적 가치가 매우 큰 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2008년 9월 국가등록문화재 제404호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같은 독특한 분위기 덕에 장욱진고택은 KBS 드라마 ‘공항 가는 길’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온 이후 이곳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아 진것 같다. 평일인데도 고택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도 그리고 궁금한 듯 불쑥 들어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 고택 전경. 4계절 내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동심과 닮은 소박한 고택 
장욱진 화백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명이다. 새, 아이, 나무, 집 등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를 간결하고 동화적 표현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그가 1986년 봄 당시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 소재의 한 고택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용인 생활을 시작했다. 

용인에 정착하기 전 장 화백은 수안보에서 생활했는데 주변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상업지역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고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 용인으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한옥의 택호는 ‘관자득재’로 스스로 보고 얻는다는 뜻이다. 과거 화가가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거주했을 때 안채의 택호를 그대로 이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잘 정돈된 풍경이 마음을 정돈시켜주는 듯했다.

전체적인 구조는 ‘ㅁ’ 구조로 초기에는 초가집이었다. 1884년에 지은 이 집은 1985년과 2004년 두 차례 고쳤으며 사랑채, 광채, 그리고 정자(관어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장 화백이 작업실로 사용한 사랑채는 조선시대 말 경기도 민가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양옥집은 장 화백이 직접 건축했다.

가옥을 보고 옛 생각에 반가워하는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안채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있는데 디딤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고무신이 눈에 띄었다. 방 안에 장 화백이 머물러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에 방을 유심히 살펴봤다. 우두커니 있다가 대문을 향해 발을 옮기려는 순간, 가옥이 ‘ㄱ’처럼 보였다. 독특한 구조가 묘한 집중력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장 화백은 이곳에서 말년의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5년 남짓한 시간을 용인에서 보낸 그는 자신의 작품 720여점 가운데 3분의 1인 220여점을 이곳에서 그렸다. 기와집을 나와 양옥으로 올라가는 길 한 쪽엔 초가지붕으로 덮인 관어당이 위치해 있다. 끝자락에 매달린 물고기 종이 바람에 따라 살짝 살짝 움직이고 있었다. 관어당은 국문학자 이희승 선생이 지어준 이름으로 관자는 눈과 귀를 그려 합성한 상형으로 귀로도 사물을 보고 파악한다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2008년 근대문화재로 등록됐음을 알리는 비석에는 장 화백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온전한 자연을 느끼기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을 듯싶다. 붉은 벽돌이 반짝이는 양옥은 50평 정도의 규모로 말년에 장 화백이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고택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양옥의 빨간 벽돌이 기와집과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이 양옥은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자료로 평가되며 현재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양옥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얼핏 본 것 같았는데, 장 화백 그림 속 집과 닮아 있었다. 화가가 부산 피란시절 광복동의 인상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 속 집이랑 비슷해 보였다. 집이 붉은 색인 것도 닮았고 아담하면서 포근할 것 같은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했다. 실제로 화가는 이 그림에 있는 서구식 집을 본 떠 마북동에 있는 양옥을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1988년 4월 집을 짓기 시작해 1989년 7월 입주한 장 화백은 1년 6개월 남짓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만든 집 앞에는 이 집의 모델이 된 ‘자동차가 있는 풍경’ 작품이 돌 위에 담겨 있다. 돌이 하트 와 닮아보였다. 그의 작품이 하트 위에 있으니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아날로그 감성 느껴지는 사진명소 
장 화백은 복잡한 도시를 피해 이곳으로 내려와 말년을 보냈다. “나는 심플하다”는 말을 종종 했다는 장 화백. 그의 말처럼 고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곳곳에서 예술적 감성이 느껴졌다. 마당에는 돌로 만든 조형물이 있어 야외 갤러리 같았다. 또 양옥으로 올라가는 길 한쪽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항아리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오래된 엽서 속에 있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파트 단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힐링 명소랄까. 사람들 방문이 적었으면 하는 욕심이 났다. 일상에서 지칠 때 이곳으로 온다면 토닥여줄 것 같고 또 기분도 차분해질 것만 같다. 

완연한 봄이 되면 곳곳에 피는 꽃이 이곳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방문하면 분위기 괜찮은 사진 한 장 정도는 거뜬히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입구 앞에 있는 찻집에서 장욱진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차 한 잔 음미하는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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