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를 샀다. 이때쯤이면 자주 냉이에 손이 간다. 봄나물인 냉이는 요즘이 가장 맛있을 때다. 겨울 추위를 온몸으로 이겨 내느라 애쓴 탓이리라. 태생이 시골인 나는 냉이를 볼 때마다 호미 들고 냉이를 캐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초록이 아닌 발갛던 냉이 모습과 딱딱하던 땅의 감촉이 떠오른다. 봄이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우리는 이런저런 칼을 들고 쑥을 뜯으러 다녔다. 그러면 쑥을 뜯을 때의 햇살, 공기, 바람이 함께 떠오른다. 그러다 밭둑 가득 있던 씀바귀도 캐고, 달래도 캤다. 

그러다 보면 산에 진달래가 핀다. 학교를 오가던 그 길에서 진달래 천지인 산에서 알싸한 맛의 진달래를 따 먹곤 했다. 그러다 칡을 캐보기도 하며 보냈다. 여름이 오면 강에서 다슬기를 줍고, 밤이면 엄마랑 동네 친구들이랑 강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비가 오면 혼자 뒤 툇마루에 앉아 비에 젖어가는 나무를 한없이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나 좋았다. 가을이면 과수원의 사과를 즉석에서 맛볼 수 있었고, 겨울에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그 시절 우리는 많은 것이 부족했고,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삶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자연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난 숲으로 아이들을 안내할 수 있는 일이 참 좋다.

아이들과 숲에서 만난 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3년을 함께 한 친구의 마지막 편지에는 매년 1월 숲에서 먹었던 컵라면이 제일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그 다음에는 쓰러진 나무로 아주 멋진 나무집을 지었던 추억이란다. 이 친구는 그 집을 지으면서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숲에 올수록 점점 재미있어졌단다. 자연이 주는 건강함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선생님이 계셔서 아이들이 숲과 사계절을 보내며 자연의 고마움을 배워가던 시간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 항상 함께 해주시고 자유로운 숲 생활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려요.”라는 글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일이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고, 그들이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꺼내 볼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면 좋겠다. 어린 시절 나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많으면 좋겠다. 내가 그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숲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많이 피곤하고 아프고 그런 때가 계속되던 몇 년, 난 숲 일에 회의가 들었었다. 하지만 요즘 난 숲에 정말 가고 싶고 아이들과 차가운 겨울 공기, 시리디 시린 파란 겨울 하늘, 벌거벗은 채 생명을 한가득 품은 겨울나무, 까치, 박새, 청설모, 딱따구리 소리 등이 너무 그립다. 어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나처럼 숲의 공기, 햇살, 나무들, 숲의 냄새까지 선물해 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감동의 글을 써 주신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 글이 나에게 다시 숲으로 갈 수 있는 큰 힘을 주셨음을 어머님이 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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