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원장

지중해 시칠리아 남쪽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몰타라는 작은 섬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페니키아와 로마, 카르타고 등 해양 국가들의 각축장이기도 하고, 10세기 이슬람 세력이 유럽을 압박하면서 발생한 십자군전쟁 시기에는 몰타 기사단이 활약하면서 해적들을 소탕하기도 했다. 지리적 중요성으로 강대국들의 관심을 받았던 몰타는 1798년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이 점령했다. 그러나 영국은 바로 해군 제독 넬슨을 보내 몰타를 정복하고 영토로 삼았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지브롤터 해협과 몰타 섬을 경유해서 홍해로 이어지는 경로는 영국에게 아주 중요하고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생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지원에 나선 영국은 몰타 섬에 병참 기지를 건설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장소로 활용했다. 

작은 섬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위생이 불결할 경우 전염성 질환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립된 섬이라는 환경에서 훈련받던 영국 병사들에게 고열이 발생하는 전염병이 생기곤 했다. 전염병이 순식간에 확산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쓰러졌고, 사망률이 2%에 이르렀다. 몰타 열병이라고 불리는 이 전염성 질환으로 젊고 건강한 청년들이 쓰러지자 영국 정부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발병된 병사들은 우유를 마셨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유와 환자들의 혈액에서 원인균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1886년 영국 군의관인 데이비드 브루스는 환자 비장에서 작고 동그란 병원체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동일한 병원체가 소의 젖에서 확인됐다. 브루스는 병원체에 자기 이름을 넣어 ‘브루셀라’라고 불렀다. 브루셀라는 동물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질병이었다. 1860년대 파스퇴르의 저온 살균법이 개발되면서 우유를 통한 감염은 예방할 수 있었으나, 동물과의 직접 접촉을 통한 전파는 완전하게 차단할 수 없었다. 

브루셀라는 사람에게 고열을 발생시켰으며, 동물에서는 염증 반응이 태반에 작용하면서 유산과 우유 생산이 감소됐다. 축산 농가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전염병이었다. 특히 축산업이 대형화되면서 브루셀라는 큰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면서 미국 중부의 넓은 평야지대는 소와 양들의 방목지로 활용돼 대규모 축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브루셀라 전염으로 인한 가축의 집단 유산은 큰 피해를 줬다. 수의사들은 감염된 소들을 무리에서 격리해 제거한 뒤 소독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계속 확산됐다. 이로 인해 목축업이 경제활동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 중부지역은 어려움을 겪었다. 

1910년대 수의학계에서 전염성 유산병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소떼에서 대규모 유산현상이 발생할 경우, 축산업자가 가축들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송아지를 낳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 무리의 3분의2가 유산하면 그 다음번 출산기에는 3분의1, 마지막에는 소수만 유산했다. 브루셀라에 감염돼 한번 유산을 경험한 소들은 면역력을 획득해 감염되지 않은 소를 보호하기 때문에 건강한 송아지가 늘어난 것이었다. 

대규모 예방접종 전염병 확산 낮춰

수의학계는 이런 현상을 집단 면역이라고 불렀다. 먼저 병에 걸렸던 가축 집단이 병원균 전파를 막아줘 면역력이 없는 무리를 보호해주는 효과로 보았다. 집단 면역은 사람의 전염병에도 확인됐다. 1932년 미국 헤드리히는 볼티모어에서 15세 이하에서 유행하는 홍역 유행을 연구했는데, 나이가 어린 아동에서는 홍역 환자와 사망자가 많았다. 그러나 과거 홍역을 앓은 경험이 있는 비율이 많아지는 고학년에서는 환자와 사망자가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특히 전체 아동의 68% 넘게 홍역을 경험한 아동으로 구성된 해에는 홍역 유행 자체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홍역 유행이 감소하면 역설적으로 새로 출생하는 아동들이 성장해서 면역을 가진 아동들의 비율이 줄어들자 이듬해부터 다시 유행이 시작됐다. 몇 년 주기로 홍역 유행과 감소가 반복되는 현상으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경우 전염병 예방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면역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질병에 감염되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에 1960년대 홍역 백신이 개발된 이후에서야 가능해졌다. 

대규모 예방접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면역력을 획득하면서 접종하지 못했던 소수도 감염원에 노출될 기회 자체가 줄어들면서 전염병이 급속도로 감소해 홍역을 비롯한 천연두, 소아마비 등 다양한 전염성 질환이 거의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기피해 면역력을 획득하는 사람이 감소할 경우 전염병은 다시 확산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일부 국가에서 접종이 시작됐다. 백신 접종을 할 경우 100%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접종할 필요가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면역력을 획득할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빠르게 개발된 백신인 만큼 예방접종 전후 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처음 개발된 유전자 백신과 아직 장기간 안정성을 확인하지 못한 백신들이다. 

백신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수송하고 접종현장에서 환자의 상태 파악도 중요하다. 한국의 의료비가 너무 낮게 책정된 나머지 이러한 안전관리에 대한 비용은 전혀 계산되지 않고 있다. 2020년 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건 역시 저가 입찰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보건당국은 아직까지 세부적인 상황까지 고려할 여력이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인구 110만 특례시가 예정돼 있는 용인시의 경우, 안전한 백신 접종을 위한 준비와 지원이 필요하다. 규제와 지침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지킬 수 없는 제도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닌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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