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문화유산 이야기-처인구 모현읍 정몽주 묘역

정철수 애국지사까지 이어진 포은가문 터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 전경

수지구를 관통하는 포은대로, 포은아트홀과 포은아트갤러리 등 용인에는 포은으로 시작되는 지명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포은은 정몽주 선생의 호로 채마밭 포(圃) 숨을 은(隱)으로 채소밭에 숨는다는 뜻이다.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로부터 벗어나 소박하게 살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다. 필자 역시 용인시민으로 포은의 묘가 용인에 있다는 게 의아했다.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한 정몽주 묘가 왜 모현읍에 있을까. 포은의 고향 또한 용인이 아닌 경북 영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 잠들어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용인시는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정몽주 묘역에 해마다 포은문화제를 열기까지 한다. 포은과 용인의 접점은 무엇일까. 이같은 궁금증을 갖고 출발한 포은의 묘. 수지구 죽전과 가까운 모현읍에 위치해 있어 기흥역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도착하니 ‘정몽주 선생의 묘 가는길’이라고 쓰여 있는 큰 안내석이 눈에 띈다. 가는 길이나 묘지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묘지로 향하는 길목에 대형 카페 몇 곳이 자리 잡고 있으니, 포은의 묘를 둘러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정몽주 선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 이석형 선생의 묘도 같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같은 가문도 아니고 같은 시대에 활동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제법 가까운 거리에 묘지가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한편으론 얼마나 좋은 터 길래 두 선생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풀려서인지, 포은의 묘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중년부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가로운 풍경에 취해 포은의 묘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더 풀리면 가볍게 나들이 가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묘지로 가는 길에는 포은 선생의 시조 <단심가>를 새겨놓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충절의 아이콘 포은, 용인에 오기까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부른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아는 시조 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이 시조 덕에 정몽주하면 단심가 그리고 일편단심 충절의 아이콘이 됐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정몽주는 조선시대를 다룬 대하 사극드라마에 꼭 등장해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줬다. 실제 정몽주 역시 고려 말 학문 뿐 아니라 외교부터 여러 전쟁에 참가하는 등 문무겸비의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정몽주는 고려 최후의 보루로 영향력도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는 포은은 결국 새 왕조를 세우려는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됐다. 정몽주의 묘는 경기도 개성 풍덕군에 있었는데 1406년 3월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려고 옮기다가 우연찮게 지금의 묘지 자리인 이곳에 오게 됐다.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에 걸어둔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묘소 자리에 떨어져 이곳에 안장했다는 것이다. 그때 부인 경주이씨와  합장했다. 묘지는 입구에서 느긋하게 풍경을 만끽하면서 걷는다면 도착하는데 10여분이면 충분하다. 묘지는 정갈하게 정리돼 있고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석물(무덤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물건)이 있었다. 입구가 다 보일 만큼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묘소를 옮긴 이 장소에 또 얽혀 있는 사연이 있다. 선조의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가 숨져 능터를 찾던 지관은 적당한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이 정몽주의 현 묘소자리였다. 선조는 명당을 얻기 위해 무덤을 파헤칠 수 없다며 다른 곳을 찾아 의인왕후를 매장했다. 일화처럼 이곳은 알고 보니 왕릉 자리로 택지될 정도의 명당 터였던 것이다. 이같은 가설의 뒷받침이라도 하듯 정몽주 묘소 근처에 잠들어 있는 이석형 가문도 크게 번창했다. 이 묘소 역시 2000년 경기도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돼 보호·관리되고 있다. 명당이라고 알려져서 일까. 평일 오후 시간에도 제법 많은 방문객들이 보였다. 따듯한 봄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올 텐데 그때쯤이면 코로나19도 좀 진정되길 바래본다. 

정몽주 선생 묘소는 1972년 경기도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됐다.

◇독립운동가로 이어진 포은 가문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충렬서원이 정몽주 묘 근처인 모현읍 능원리 118번지에 위치해 있다. 정몽주 묘에서 차로 2분 거리로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했다. 현재 코로나19로 들어갈 수 없으니 방문하기 전 미리 문의를 구하는 게 좋을 듯싶다. 충렬서원에서 5분 거리에는 모현읍 능곡로45에는 모현읍 출신 독립운동가 정철수 애국지사 묘가 있다. 정 지사는 정몽주 24대 종손으로 광복 후 국공내전 때문에 40여 년간 귀국하지 못한 채 연변에 머물렀다. 이런 가운데 노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1986년 영구 귀국했고 4년 뒤 사망해 포은종가에 잠들었다. 정몽주 묘와 충렬서원을 방문했다면, 이곳도 잊지 말고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묘로 올라가기 전 정 지사 일대기를 담은 안내판도 있으니 지나치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희생정신 덕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니 말이다.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니 꼭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조선 중종 12년 성균관 유생들 청원으로 세워진 정몽주 선생 신도비.

우연찮게 모현읍에 잠들게 된 포은의 인연이 애국지사까지 이어지면서 이곳을 역사적인 마을로 만들었다. 코로나19로 방학을 맞은 자녀와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모현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들의 묘지를 보면서 고려 말부터 조선 그리고 광복까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대서사의 장편 드라마를 들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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