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납은 경기 용인 석성산에 산다. 산에 살고 있는지도 30년이 지났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산에 왜 사느냐고 묻는다. 산에 사는 즐거움은 자유로움이 첫 번째로 비움 즉, 채우지 않음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시시비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지혜일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산인에게 해넘이와 해맞이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인데, 사람들은 새해가 무엇이냐고 자꾸 묻는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쌍둥이다”라는 말을 해도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새다. 바위 옆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참나무가 새해라고 좋아하고 연말이라 아쉬워하랴. 예쁜 다람쥐며 길섶의 풀조차도 “묶은 해다. 새해다”라고 달리 구별하지 않는다.

인연 따라 주어진 대로, 각기 보람을 찾으면서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하고 정해 놓은 ‘시간의 약속’이 바로 새해이다. 다시 온 해는 세상 만물이 순환하는 이치에 따라 시작하는 연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특별한 그 무엇이 있을까마는 특정한 시점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보면, 새해는 분명 다른 새날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을 기념하고, 새로운 다짐, 꿈과 희망을 이야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새해 첫인사로 나누는 덕담은 말 그대로 ‘덕이 담긴 말’이다. 새해 들머리에 우리 조상들은 보름 동안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다르게는 ‘복을 빌어주는 말’이라 한다. 좋은 말을 해주면, 그 말에 품격이 있어 좋은 일이 생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대 중국 주나라 때부터 시작된 ‘언령사상’에서 비롯된 덕담과 복담은 한해의 일이 잘 풀리고, 감사한 마음이 덕담을 나누어준 사람에게 되돌아온다는 전통과 같이 덕담은 나눌수록 더 좋은 말이다.

새해맞이에 가까운 사람들이 앞으로 잘되기를 기원하는 말인 덕담과 달리 인터넷 등의 댓글로 고통받는 이들이 생겨나는 세태가 없어졌으면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덕담이라면, 악담과 독설은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정겨운 덕담이 오가는 대화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첩경이 아닐까싶다.

새해 덕담의 유래는《논어》에 “조상을 정성스레 추모하면, 백성들의 덕성이 순후해질 것이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다. ‘곧고 바른 마음을 다정스러운 말로 나타내는 것’이 유학의 덕담이라면, 불가에서 덕담은 새해 첫 예불을 올리고 고승·대덕으로부터 사미·사미니·행자에 이르기까지 ‘통알(通謁)’할 때이뤄진다.

절에서 차 마시며 나누는 차담 또는 차복담은 평상시에도 전하는 덕담이다. 또 민간에는 정초 풍습으로 ‘징조를 듣는다’는 뜻의 청참(廳讖)이 있다. 세상 만물에 길흉의 징후가 있다고 믿던 옛 사람들이 새해 첫 새벽에 처음 듣는 소리로서 신수 보던 것을 말한다.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송아지가 울면 풍년이 들고, 까마귀가 울면 역병이 돈다는 식이다.

말과 소리 속에 신비한 힘이 담겨 있어 뭔가를 간절히 말하면, 결국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곧 ‘덕담’이라는 풍습으로 이어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예불문에 “제가 올린 청정한 물, 감로차로 변하여서”라는 첫 구절과 같이 새해에 서로 건넨 덕담으로 올 한해가 무사 무탈했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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